“제가 이 다리를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기꺼이 장애 2급 받고 살겠습니다. 하지만 제 다리는 40년 간 전혀 움직이지 않아요.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움직이지 않는단 말입니다.”

김주연(가명·46·전남 여수시) 씨의 다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3살 때 소아마비가 온 김 씨는 이후 스스로 다리를 들거나 오므리고, 곧게 펴본 적이 없다. 타인의 도움 없인 이동도 불가능하다. 그런 그는 장애등급심사 결과 1급에서 2급으로 하향 조정돼 1급 장애인에게만 제공되는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한다.

발가락 '겨우' 움직이면 활동보조서비스 못받는다?

양쪽 다리의 기능장애는 물론 척추측만증으로 척추가 완전 내려앉은 김 씨는 바닥에 앉을 때 마다 갈비뼈와 골반뼈가 맞닿는 고통을 느껴 집에선 거의 누워있기 일쑤다. 그런 그에게 활동보조서비스는 생활의 활기를 넣어준 ‘선물’이었다.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으며 직장도 생겼다. 그런 그에게 지난 6월, 시청으로부터 ‘활동보조서비스 추가 시간 지원’ 공문이 날아왔다. 기쁜 마음에 추가시간 지원을 받기로 하고 병원에서 장애 1급 진단을 받았다. 40년 간 꼼짝도 않던 다리였기에 당연한 진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김 씨는 추가시간 대신 ‘장애 2급’ 심사결정서가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로부터 날아오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김 씨의 양측전경골근(정강이 뼈 앞에 있는 근육)에서 운동유발단위가 관찰돼, 두 다리를 각각 겨우 움직일 수 있는 2급에 해당된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난 아예 다리를 움직이지 못한다. 있는 힘껏 다리에 힘을 줄때만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 하나가 겨우 움직이며, 근전도검사를 받을 때 전기충격으로 오른쪽 네 번째 발가락이 틱 장애처럼 ‘탁탁’ 움직였던 게 전부”라며 울분을 토했다.

하지기능장애의 등급기준에서는 ‘두 다리를 완전마비로 각각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사람(근력등급 0, 1)’을 장애 1급, '두 다리를 마비로 각각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사람(근력등급 2)'을 장애 2급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씨는 “발가락을 ‘겨우’ 움직이는 게 활동보조서비스를 안 받아도 될 만큼 내 삶을 변화시켰느냐”고 토로했다.

혼자 휠체어에 오를 수 없어 활동보조인의 도움으로 휠체어에 올라 출근을 하는 등 업무, 가사, 모든 영역에서 도움을 받아 온 김 씨. 활동보조서비스가 끊기면 당장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 결국 김 씨는 2급 판정에 불복,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다시 제출한 의사소견서에서 김 씨는 '양하지 기능 전태와 신경근전도상의 미세한 전경근의 근전도흐름은 의학적 검사에 근력(mmp)에 0포인트로 의미가 없을 것으로 사료되며, 척추측만후만이 심하고, 타인의 개호, 이송이 없으면 일상생활이나 휠체어 타는 것이 아주 거의 곤란한 상태'라고 진단됐다.

하지만 김 씨는 다시 ‘장애 2급’으로 판정됐다. 심사결정서에는 ‘근전도검사지결과상 오른쪽종아리뼈 부위 운동신경의 수치가 잘 측정된 점, 근육의 위축이 심하지 않은 상태로 완전마비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두 다리를 마비로 각각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인정, 2급에 해당한다’고 명시됐다. 김 씨는 “이 결정은 말도 안 된다”며 결정서를 찢어버렸다.

김 씨는 "판정기준에선 내 다리의 기능적인 부분을 두고 말하는데, 난 양쪽 다리 없이도 살 수 있다. 그 정도로 내 다리는 어떠한 기능도 하지 못하는 다리"라며 "누가 나더러 두 다리 자르는 대신 활동보조서비스 주겠다고 한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 장애등급심사센터 관계자는 "근전도검사, 사진 등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운동신경과 관련된 수치들을 종합해 볼 때 완전마비에 의한 수치가 아니라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나온 판정"이라며 "장애등급은 복지부가 제시한 판정기준에 맞게 공정하게 정하고 판정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관계자는 "등급이 1급에서 2급으로 조정돼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민원이 들어온다"며 "등급심사가 공정하게 되고 있더라도 활동보조서비스처럼 장애인이 진짜 필요로 하는 서비스는 보호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현실적 방안도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김 씨는 활동보조서비스 추가시간을 받겠다며 엄격하다고 소문난 장애등급심사에 신청한 자신이 후회된다고 했다. 그는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기 위해 장애 1급을 받는 게 자격증을 따기 위한 시험처럼 느껴지는 이 현실이 비참할 뿐”이라고 심정을 전했다.

복지부로부터 "근전도 검사를 정밀하게 하여 두 다리의 근력이 정상인의 10% 이하라는 것이 확인되면 1급을 판정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답변을 받은 김 씨는 현재 9월부터 끊기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지키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근전도검사 등을 다시 받았으며, 지난 10일 해당 주민센터에 장애등급 조정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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