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선 씨가 자택에서 등급판정과 관련된 서류와 복용약을 보여주며 기자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설명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내가 아들을 잘못 낳아놓아서 이 고생이야. 어디 멀리라도 간다하면 길바닥에 쓰러져서 집으로 기별 올까 불안하고…. 여하튼 한시도 편히 살지 못해.”

선천성 심장기형을 안고 살아가는 권혁선(52) 씨의 칠순 노모(75)는 나지막이 이렇게 내뱉었다. 기자를 마중 나온 곳에서 자택 현관으로 가는 10미터 남짓한 거리를 걷고 난 권 씨는 노모 옆에서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92년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기까지 권 씨는 어릴 적부터 하루에도 까무러치기를 여러 번했다. 병원으로 실려 간 후에야 선천성 심장기형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의사는 수술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라고 말했다.

“숨이 가쁘고 자주 쓰러지고 해도 이 정도로 (심장이) 나쁜 줄은 몰랐어. 그때야 촌구석에 병원 갈 엄두도 못냈지. 쓰러졌을 때 가는구나 했는데 그 뒤로 약을 달고 살고….” 노모의 탄식은 계속됐다.

지난 96년 주치의로부터 처음 심장장애 2급 진단을 받은 권 씨는 오른쪽 손가락 4개가 절단으로 인한 지체장애 4급 판정을 합해 중복 합산으로 지난 2001년부터 1급 장애인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현재 권 씨는 지체장애 4급으로만 등록돼 있다. 지난해 받은 장애등급심사에서 심장장애 2급이 ‘등급 외’ 판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기도한 권 씨는 저소득 중증장애인에게 지급되는 장애수당 13만원도 끊겨 경증장애수당인 4만원과 기초생활보장 수급비 24만여 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권 씨는 “날씨 변화에 민감하고 특히 요즘 같은 폭염에는 바깥출입이 곧 생명의 위협”이라고 전했다. 무더운 날씨에 더욱 호흡이 가빠져 한 달에 한번 처방약을 타기위해 병원을 찾을 때에도 새벽시간을 이용한다는 권 씨는 요즘 두통과 가슴통증으로 두문불출하고 있다.

가벼운 집안일과 집 주변을 산책할 정도로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는 권 씨에게 어떻게 심장장애 등급 외 판정이 내려질 수 있었을까.

“언제 죽을지 몰라” VS “규정상 해당 없음”

지난해 4월 장애등급 재판정 당시 주치의는 권 씨가 팔로증후군(Tetralogy of Fallot-TOF)으로 인한 심방실연결과 대동맥의 선천기형, 심부전으로 진단 내렸다.

팔로증후군은 가장 흔히 오는 선천성 심장장애로 알려져 있는데, 산소가 풍부한 피가 몸 전체에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오는 증상으로 피부가 푸른빛을 띤다해 일명 청색성심장장애로도 불린다.

심부전은 심장의 구조적 또는 기능적 이상으로 심장이 혈액을 받아들이는 이완기능이나 짜내는 수축 기능이 감소해 신체 조직에 필요한 혈액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해 발생하는 질환군을 말하며 흔히 호흡곤란 증상을 동반한다. 주치의는 또 소견서에서 “정기적인 약물투여와 향후 심부전 악화로 호흡곤란 및 심장통증은 계속 악화될 것이며, 객혈도 발생되리라 사료된다”고 밝혔다.

권 씨는 “올 겨울에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난 뒤에는 막힌 혈관을 뚫어준다는 약을 먹는데 두통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의사 선생님이 올 것이 왔다고 말하더라. 수술을 하려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하고 심장이 언제까지 버텨줄지 알 수 없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권 씨의 주장과 주치의가 내린 심장장애 2급 판정에 대해 국민연금 장애심사센터의견해는 명확하다. 평가항목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는 권혁선 씨의 상태가 장애등급판정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에이블뉴스

현행 장애등급판정기준에 따르면 심장장애는 7가지 임상소견과 검사결과를 점수로 환산한 것을 바탕으로 1, 2, 3급 및 5급(심장이식)으로 나누는데 1~3급에 해당하려면, 42점 만점 중에 최소 20점은 얻어야한다.

운동부하검사 또는 심장질환중등도(5점), 심초음파 또는 핵의학검사상 좌심실구혈율(5점), 검사소견(10점), 수술병력(5점)과 최근 6개월 이내에 입원병력(10점), 입원횟수(5점), 치료병력(2점) 등이 기준이다.

이 기준표에 의하면 좌심방 좌심실이 없고, 6개월 이내 입원병력과 수술병력이 없는 권 씨는 25점을 제해야한다. 나머지를 모두 만점을 받아도 17점으로 등급 외 판정을 받은 것이다.

당시 권 씨의 채점결과는 15점인 것으로 확인됐는데, 권 씨를 담당했던 장애심사센터 심사원은 “채점표와 함께 전문의의 자문을 얻어 종합적으로 심사한 것이다. 권 씨의 경우 심장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상황이 있지만 기준표에 따르면 수술병력이 없어 점수를 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한 심사원은 “(권씨가) 수술을 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수술이 필수적이지 않다는 의미라고 우리는 판단한 것이다. 6개월간 입·퇴원 기록이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3급이상에 해당하려면 기준표에 나와 있듯이 가정 내에서 가벼운 활동정도만 가능한 상태여야 하는데, 권 씨의 경우는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현행 장애판정기준은 수술조차 할 수 없는 상황과 수술이 필요 없는 상황이 결과적으로 동등하게 판단하고 있는 셈이다.

올해 개정 적용된 장애등급심사판정기준에는 ‘적절한 시기에 수술하지 못했거나 완전교정이 불가능한 복잡 심장질환인 경우에 한해 좌심실 구혈율의 정도를 증상에 따른 중등도 점수로 판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지난해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은 권 씨는 새로 개정된 기준으로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지 않았다. 규정에 따라 이의신청을 했을 때도 새로운 기준을 적용받지 못했다.

권 씨는 지난해 장애등급심사를 위해 검사비용으로만 약 400만원을 지출했는데, 빚을 내서 비용을 댔다고 한다. 권 씨는 새 규정에 따라 장애등급 심사를 받는다면, 턱걸이로 장애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권 씨는 “그 비용은 누가 대주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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