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번의 경우, 80% 가량이 저상버스로 교체됐다. 이 버스를 타고 대학로를 나가봤는데,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식당, 공연장 등이 없어 실망 그 자체였다. ⓒ에이블뉴스

시골에서 오신 어머니께서 형님 집에서 주무시고 다시 내려가신다고 해서 국립재활원 앞에서 151번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가서 어머니를 배웅해드렸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시내 나왔는데 데이트나 할까’하며 다시 151번 버스를 타고 성균관대 앞에 내려서 대학로 구경 길에 나섰다.

근 24년 전 내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이후 처음 와보는 대학로, 한마디로 별천지였다. 아내는 그래도 몇 번 와 본지라, 아내의 안내를 따라 여기저기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며 식사를 할 만한 어디 좋은 식당이나 카페가 없나 기웃거려 보았다. 한식, 일식, 중식, 이태리식, 미국식, 퓨전음식 등 식당은 무지 많은데 이게 웬일인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이 없었다. 거의 모든 식당이 입구에 턱이 있어서 무거운 전동휠체어가 들어 갈 수 있는 곳은 몇 십군데 식당 중 하나가 있을까 말까했었다. 그나마 한군데 그런 곳이 있으면 우리가 원하는 음식이 아니었고.

결국 우리가 밥을 먹은 곳은 한 조그마한 식당이었다. 그 식당도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메뉴가 맘에 들어 식당 주인에게 부탁해서 식탁을 하나 밖으로 옮겨달라고 하여 밖에서 먹었다. 너무 많이 헤매고 다녀 거의 인내력의 한계를 느낄 때쯤, 그래도 맘씨 좋은 식당주인을 만나 묵은지 김치찌개와 뚝배기 불고기로 허기진 배를 채우니, 그 포만감으로 화를 달랠 수 있었다.

‘대학로에 왔으니 연극이나 한 번 볼까’하며 좀 여유 있는 마음으로 다시 왔던 길들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내가 ‘웃찾사’와 ‘개콘’을 실제로 보여준다는 티켓 판매원에게 낚여 흥정을 하고 있었다. 이제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법한 그 알바생은 ‘한 건 하게 되었다’싶어 아내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극장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냐고 물어보자 그 알바생은 휴대폰으로 전화까지 해서 물론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면 휠체어석도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왕 대학로에 왔으니 좀 비싸지만 재미있는 라이브 코미디를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돈을 지불하고 알바생을 따라서 극장으로 향했다.

그 극장은 5층짜리 건물의 지하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지하로 가는 버튼을 누르려니 아예 지하로 가는 버튼이 없었다. 황당해서 그 알바생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하면서 어디로 황급히 가더니 지배인 같은 분을 모시고 왔다. 그래서 나는 특별히 열쇠로 열어서 엘리베이터를 작동하면 지하로 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나를 보더니 지배인 왈 ‘휠체어가 너무 무거워서 힘들겠다’고 한다. 수동 휠체어면 나를 업어서 내려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황당해진 나와 아내는 두말 하지 않고 티켓을 환불해서 그 건물을 나왔다.

151번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가서 어머니를 배웅하고 다시 151번을 타고 아내랑 룰루랄라 대학로로 데이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야~ 우리나라도 살만하네~’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었는데, 대학로를 나오며 옛날에 한국에서 느꼈던 좌절감이 다시 밀려 올라왔다.

재활공학을 제대로 배워서 한국의 장애인 재활복지 환경을 개선하는데 일조해 보겠다고 8년 전 무작정 미국으로 박사과정 유학을 갔을 때에 비하면 지금의 한국은 확실히 장애인에 대한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 서울시는 2013년까지 시내버스의 50%를 저상버스로 배치할 계획으로 현재 일부 버스를 휠체어를 타고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로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근무하는 국립재활원은 휠체어장애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가관인지라 국립재활원 앞에 서는 151번 버스는 대략 80%는 저상 버스로 배치되었고, 버스 노선이 대학로를 거쳐 창경궁, 종각, 명동, 서울역 등으로 소위 ‘황금 노선’이라, 시내를 나갈 때는 전철을 타기보다 이 151번 버스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 가장 좋았던 것 중 두 가지를 꼽는다면, 언제나 모든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던 것과 하루에 7시간 활동보조인이 집과 사무실로 와서 나를 도와주었던 것이다. 이런 서비스와 환경이 있었기에 나는 4년 만에 박사 학위를 마치고 미국대학에서 교수로 일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8년 만에 귀국을 해보니 한국도 많이 변해있었다. 방금 말한 것같이 일부이지만 저상 버스도 있고, 아직도 지뢰와 같이 여겨지는 리프트들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지하철 역에도 엘리베이터가 많이 설치되었고, 특히 최고 한 달에 180시간까지 활동보조인 서비스도 제공되고 있었다.

어제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비리장애인수용시설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다가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고자 시설을 뛰쳐나온 8명의 장애인이 서울시 측에 탈 시설·자립생활 정책 마련을 촉구하며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나마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환경이 좋아진 것은 이와 같은 장애인들의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지만 장애인 당사자들 편에선 항상 부족해서 욕을 먹지만 보건복가족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장애인 복지를 담당하는 일선 공무원들의 공도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장애인의 천국이라는 미국도 이렇게 장애인 복지환경이 좋아진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1997년에 미국 의학의 최고 기관인 의학원(Institute of medicine)은 Enabling America라는 보고서를 통해서 미국의 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학적인 접근으로는 한계가 있음으로 재활과학기술을 발전 시켜서 사회적 물리적 환경을 개선해야지만 장애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결론지었었다.

물론 장애를 의학적 관점이 아닌 사회적 관점에서 보는 소위‘사회적 모델’에서 장애를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은 장애인인권 운동과 함께 그 이전부터 있어왔다.

늦기는 했어도 우리나라도 이제 장애인복지법에 자립생활센터가 명시되어 있고 정부의 장애인 정책이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장애인 인권을 신장하는 쪽으로 방향이 많이 바뀌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도 아직 미국전역을 대상으로하는 활동보조인지원 연방법안이 3년이 넘게 미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는 활동보조인 제도가 공론화 된지 불과 몇 년 만에 시간이 제한되어 있지만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늦게 출발해도 IT,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주요 산업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실력을 갖게 된 대한민국은 스스로 한번 마음먹고 하면 다른 나라보다 몇 배 빠르게 세계 수준으로 성장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장애복지 분야도 활동보조서비스를 보면 이럴게 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식당, 미용실, 등 대중 상업시설의 접근성은 과연 언제나 좋아질까? 새로 만드는 가게들도 전혀 휠체어사용자를 고려할 기세가 없어 보인다. 일반인과 함께 버스를 탈 수 있음으로 느끼는 행복감, 이런 행복감을 대학로에서도 느낄 날은 아직도 요원해보인다.

한번 마음을 먹으면 누구보다 잘 하는 게 대한민국의 저력이라는데,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휠체어장애인을 고려하는 마음을 한번 먹게 할 수 있을까? 이 미력한 글로나마 국민들이 그런 마음을 먹어서 151번 버스에서 느끼는 행복을 대학로, 신촌, 명동 아니 우리 동네 가게들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 날이 신속히 다가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 대한민국의 저력을 믿어보고 싶다.

*이 글은 보건복지부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에서 재활보조기술연구과장으로 일하는 김종배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누구나 기고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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