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 광장으로 올라오는 계단.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아 휠체어 이용자는 이 계단을 통해 광장으로 올라올 수 없다. ⓒ정현석

대전역을 출발한 고속열차가 목적지인 부산역에 닿기까지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역에 내려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계산해 볼 때 조금은 빠듯한 감이 있긴 했지만,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어렵지 않게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하철 부산역이 휠체어 장애인에게 어떤 장소인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는 11월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 간 2단계 개통에 맞춰 확장 공사를 하고 있는 부산역의 승강장은 공사 전의 절반 가량으로 넓이가 줄어들어 휠체어로 이동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역 광장을 나선 다음이었다.

엘리베이터 하나 없고, 휠체어 리프트 뿐

비장애인이나 홀로 보행이 가능한 장애인의 경우, 부산역 광장에서 지하철 부산역 입구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 정도다. 몇 달 전 새로 설치한 거대한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바로 옆에서 바라보면서, 여유 있게 걸어 내려가면 된다. 혹시 난간을 잡아야 하는 장애인의 경우라면, 난간 대신 문고리로 연결된 중간 부분만 조심하면 동행인이나 보호자 없이 열차 이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휠체어 장애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앞서 이야기한 분수대 옆 출입구는 물론, 맞은편 횡단보도 인근에 있는 출입구도 엘리베이터가 없어 눈으로만 보고 지나갈 뿐이다. 휠체어를 타고 부산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려면 역 맞은편 횡단보도를 건너 약 2분 정도 휠체어를 타고 간 뒤에야 어렵게 휠체어 리프트와 만날 수 있다.

수원, 화서역 장애인 추락 사고를 비롯해 얼마 전 서울 노량진역 사고까지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정말 타고 싶지 않은 리프트이지만, 이 리프트를 타지 않으면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는 방법 말고는 이동할 길이 없기에, ‘제발 무사하게 내려야 할 텐데’라는 마음을 안고 휠체어와 자신을 맡길 수밖에 없다. 어렵사리 매표소에 도착하더라도 승강장에는 휠체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긴 하지만, 역사 내 공익요원들에게 도움이라도 받아 열차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리프트를 타야 하는 것이다.

분수대 만들 돈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는 없었을까

어렵사리 부산역에서의 일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역 광장으로 올라왔을 때, 부산역 분수대 앞은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으며 현란한 조명으로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었다. 비장애인들이 그곳에서 웃고 떠들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때,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그곳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며 지루해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40억 원짜리 분수대에 장애인 편의시설은 없어도 된다.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삶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다르다. 비장애인들에게는 그저 편리하기만 한 도구일지 모르나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삶과 삶을 연결시켜 주는 일이다. 지하철 역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그만큼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고,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회사가 많아질수록 일할 수 있는 장애인은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 되지도 않는 장애수당에 희비가 엇갈릴 이유도 없다.

서울행 고속열차 안에서 문득 학창시절에 배운 시 한편이 생각났다.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몽룡이 남루한 차림으로 변사또의 생일잔치에 나타나 즉석에서 지었다는 그 시 말이다.

금동이의 잘 빛은 술은 많은 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안주는 만백생의 기름을 짠 것이라.

촛불의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을때, 백성들 원망의 소리 높구나

어쩌면 부산역 앞의 분수대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엘리베이터 하나 없이 휠체어 리프트에 생명을 걸어야 하는 장애인들의 눈물이며, 분수대를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감탄사는 장애인들의 절규인지도 모른다. 부산역의 장애인들은 언제까지 목숨을 걸고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해야 하는 것일까?

부산역광장 건너편 지하보도 계단 출입구. 이곳에도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엘리베이터는 설치돼 있지 않다. ⓒ정현석

40억원 짜리 분수대를 설치하면서 부산역 주변 계단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정현석

횡단보도로 가는 길목에도 화단 등 각종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정현석

*이 글은 현재 경기도 광명시에서 살고 있는 독자인 정현석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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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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