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장애청년드림팀 호주팀 '가온누리' 팀원 변영은씨. ⓒ변영은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서 주관하는 2009년 장애청년드림팀의 호주팀 ‘가온누리’가 호주연수 일정을 마치고 지난 1일 한국에 도착했다. 가온누리팀의 호주연수에 동행한 에이블뉴스가 연수 막바지인 지난 8월 30일부터 1일까지 호주 현지에서 가온누리 팀원들과 진행한 두 번째 인터뷰를 전한다.

②변영은(숭실대학교 사학과 4학년, 중어중문·국제통상 연계전공, 청각3급)

크고 예쁜 눈과 환한 미소가 매력적인 변영은씨는 청각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팀 내 서기역할을 자진해 맡았다. 변영은씨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 많은 시간 집중하느라 종종 피로를 느끼는 듯 보이다가도, 금세 활력을 되찾아 밝은 웃음으로 가온누리 팀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호주연수기간동안 변영은 씨와 얘기를 나누며 긍정적인 자세와 강한 의지, 공부에 대한 욕심 등 좋은 에너지를 가득 전해 받을 수 있었다. 호주의 청각장애인 지원제도에 특히 많은 관심을 보인 변영은씨에게 호주연수 소감을 물었다.

-DHCS(Department of Disability, Housing and Community Services)를 방문했을 때 함께 참석한 청각장애인지원기관 관계자에게 청각장애인 보청기 지원 정책 등에 자세히 묻던데, 어떤 점이 새로웠나요?

“한국은 보청기를 자체적으로 개발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기술을 수입해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보청기 가격이 굉장히 비싸요. 양쪽에 400만원이거든요. 건전지도 수입제품이라서 4개에 4,000원인데 5일에 한 번씩 갈아야 해요. 그런데도 정부는 5년에 1번 보청기를 바꿀 때 30만원밖에 지원해주지 않아요. 게다가 그 돈을 받으려면 대학병원 등에 가서 검사를 해야 하는데, 검사비만 해도 10만원이 넘어요. 그래서 전 한 번도 받지 못했어요. 문제가 있다고 봐야죠. 돈 없는 청각장애인들은 듣지도 말라는 얘기와 같아요. 듣지 못하면 일도 할 수 없으니까 결국 악순환이죠. 보청기 가격을 내리거나, 아니면 정부에서 청각장애인의 취업을 위한 지원을 해주거나 하는 실질적인 방안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호주는 20살까지 정부에서 보청기를 무료로 지원해주고, 그 이후에는 청각장애인들도 각자 직업이 있기 때문에 보청기를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있대요. 굉장히 부럽죠.”

-변영은씨는 비장애인들에게 뒤쳐지지 않고 사회생활을 잘 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굉장히 큰 것 같아보였어요. 장애인들을 적자생존의 사회에 그냥 내던지지 않고, 교육·직업 등에서 다양한 지원을 해주는 호주의 장애인제도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저는 이제까지 청각장애인인데도 불구하고 아닌 척하고 살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이 잘 없어요. 그냥 농아인으로 분리돼서 수화를 배우거나, 아니면 비장애인과 똑같은 수업을 들어야 해요. 그래서 저는 아무런 노하우도 없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교육을 받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어요. 그런데 호주에는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세심한 복지서비스가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따로 교육을 시켜주고, 직장을 잡으면 통역자가 와서 보조를 해준대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통역자라는 개념을 생각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어요. 설령 있었다고 해도 제가 몰랐다는 건 그런 정보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거죠. 한국에도 그런 서비스가 있다면 제가 그렇게 독하게 살지 않았을 거고, 스트레스도 덜 받았을 거예요.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더 가질 수 있었을 거예요.

전 아직도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이 두려워요. 사회생활을 잘 해보자는 생각에서 미리 연습 삼아 레스토랑, 호프집, 사무보조, 학원 강사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취직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직장에서 일하려면 상사의 말을 잘 듣고 실행해야 하는데, 혹시나 잘 못 알아들을까봐 하는 걱정이 되거든요. 다른 사람한테는 듣는다는 것이 스트레스가 아닌데, 저한테는 듣는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에요. 또 전화업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반 업무를 할 때도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면 입모양이 파악이 안 돼서 듣는 데 어려움이 있는데, 전화업무는 더더욱 발음도 파악이 안 되고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전화업무가 없는 업종이 어디 있겠어요. 또 그렇게 항상 긴장하면서 일할 수는 없잖아요. 호주와 같은 복지서비스가 있다면 이런 두려움이 없을 거예요. 한국은 그렇게까지 복지가 발달돼 있지 않아요. 보청기 지원금도 그렇게 작은데…. 저는 거기서 미리 포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내가 스스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진 것 같아요."

-호주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통역지원제도가 있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은데, 진로 문제를 고민하는 대학생으로서 한국에 어떤 서비스가 빨리 시행되길 바라고 있나요?

“청각장애인들은 특히 듣기평가 때문에 외국어 시험을 볼 때 높은 점수를 얻기가 어려워요. 저는 수능 시험의 듣기평가 문제가 지문으로도 나온다는 것을 수능 몇 달 전에야 알았어요. 선생님이 그 때 얘기해주신 거예요. 선생님들도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잘 모르시더라고요. 수능 외에도 중간, 기말 고사 때마다 영어 듣기평가를 보는데 저는 듣기평가에서 반도 못 맞으니까 영어가 하기 싫은 거예요. 지필평가에서 어느 정도 잘해도 듣기평가 때문에 점수가 안 나와요. 만약 수능의 듣기평가 부분을 지문으로 풀 수 있다는 것을 일찍 알았으면 포기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1학년이었을 때 선생님이 그 정보를 알려줬으면 준비를 했겠죠. 토익의 경우에는 올해부터 듣기평가가 없어졌는데, 물론 굉장히 고맙지만, 역으로 차별받을까봐 겁나기도 해요. 취업할 때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니까요.

저는 중국어와 일어도 공부했어요. 중국어능력평가 시험인 HSK의 경우에는 모든 영역에서 점수가 골고루 나와야 고득점을 받을 수 있어요. 헤드셋을 쓰고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요청해서 이 시험을 한 번 본적이 있어요. 청각장애인이 시험보겠다고 한 사례가 처음이라면서 당황스러워하더라고요. 그런데 원했던 만큼 점수가 안 나올 것 같아서 다음에도 헤드셋을 끼고 시험을 볼 수 있는를 물어보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직원이 모자라서 해 줄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북경 어언대학교의 경우에는 모든 응시자가 헤드셋을 끼고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헤드셋 착용이 특혜가 아니에요. 그런데도 그걸 못해주겠다고 하니까 화가 나죠. 그런데 사실 듣기평가는 라디오 소리라서 못 알아듣는 것뿐이지, 저는 중국에서 연수를 했기 때문에 중국인을 만나면 입모양을 보면서 대화할 수 있거든요. 그런 청각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서 듣기평가를 지문으로 풀 수 있게 해주거나 빼주는 게 필요해요. 그래야 청각장애인이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실력을 키울 수 있죠. 이런 제도가 뒷받침 돼야 청각장애인이 실력도 키우고, 취업도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2주 전에 이 문제에 대해 복지부에 민원을 넣었어요. 이 부분은 정말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또 한국에는 아직 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은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저랑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장애인에 대한 감수성이나 특별한 배려를 기대할 수 없어요. 그게 현실이에요. 제가 학원강사로 일할 때도, 청각장애인이라고 말을 했으면 아마 저를 뽑지 않았을 거에요. 학원측에서 제가 맡은 반 아이들의 학부모들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전화를 하라고 했는데, 학원 전화로는 하나도 안 들려서 제 핸드폰으로 하나하나 전화를 했고, 그나마도 잘 들리지 않아서 제 얘기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전화가 오면 다른 선생님한테 받아달라고 부탁 할 수밖에 없었고, 어쩌다 제가 전화를 받으면 식은땀이 났어요. 그런데 저처럼 사회생활을 하면서 늘 자신의 장애를 숨겨야 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빠른 시일 안에 이런 분위기나 인식이 변화될 것 같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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