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우대권(좌)과 최근 도입된 시니어패스(우). ⓒ노컷뉴스

장애인과 노인용 '종이 무임승차권'의 번거로움을 없애려고 시니어 패스(어르신 교통카드) 제도가 도입됐지만 장애인 보호자는 쓸 수 없거나 돌려쓰기 등의 부작용이 속출하는 등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시행 2달째가 넘도록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종이 무임승차권이 완전히 사라지는 오는 5월부터 혼란이 발생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가족끼리 카드 '돌려쓰기'

시니어 패스 제도는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들에게 일종의 '지하철 전용' 교통카드를 나눠주는 제도. 일일이 신분증을 제시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종이승차권 발행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작됐다.

서울시는 오는 5월부터는 종이무임승차권을 완전히 없애고 시니어패스를 사용토록 조치할 예정이다. 그러나 제도 도입 2달째를 맞아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가장 흔한 부작용은 가족끼리 '돌려쓰기'.

지난달 5일, 서울지하철 영등포구청역에서 한 노인이 공익근무요원에게 부정승차로 적발됐다. 동행인에게 자신의 시니어 패스카드를 넘겨주고 자신은 종이 무임승차권을 사용한 것이다.

이를 적발한 공익요원은 "예전에는 50대 여성이 시니어패스를 이용하다 적발된 적도 있다"며 "가정에서 가족끼리 카드를 돌려쓰거나, 아예 다른 사람이 빌려 사용하는 경우도 몇 차례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사정은 다른 역도 마찬가지. 19일 종각역에서 만난 역무원 윤태성 대리는 "조금 전만해도 39년생 할머니가 손녀로 보이는 여성에게 자신의 시니어패스를 건넨 것을 목격하고 단속했다"고 전했다.

윤 대리는 "하루에도 몇 건씩 '시니어패스 돌려쓰기'가 벌어진다"며 "우리가 다 단속을 못해서 그렇지, 지금보다도 부정사용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로 3가역에도 최소 하루에 한 차례 꼴로 시니어패스를 돌려쓰는 '얌체족'들이 적발되고 있다.

종로3가역 김용진 역장은 "일주일에 보통 10건 정도의 시니어패스 부정승차가 적발된다"고 밝혔다. 물론 시니어패스를 쓰면 '우대권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개찰구에서 흘러 나오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개찰구마다 감시를 위해 3-4명 이상의 공익요원을 하루 24시간 내내 배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니어패스를 사용하면 매표소 컴퓨터에 '우대권'사용을 알려주는 시스템 비슷한 것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 장애인 편의는 외면…종이승차권 사라지면 더 '막막'

시니어패스 광고물. ⓒ서울시

허술한 시스템 탓에 장애인들의 편의가 무시되는 경우도 벌어진다.

지체장애인들에게는 동행인이 필수인데도, 정작 시니어패스는 동행인에 대한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니어패스 재사용시간이 5분인 탓에, 지체장애인들은 동행인을 위해서 5분을 멍하니 개찰구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지체장애인 박모(40) 씨는 "부당하고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씨는 "가뜩이나 휠체어리프트 한 번 타는데도 엄청나게 시간이 걸리는데, 탑승하는데도 또 개찰구에서 기다려야 한다면 이는 시간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체장애인 박모(39) 씨 역시 "카드가 너무 불편하다"며 "현재는 병행사용기간이라서 개찰구에서 동행인이 종이승차권을 받을 수 있지만, 승차권이 사라지는 5월부터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지하철역의 부역장은 "2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지체장애 여성이 역무실로 찾아와 카드가 너무 불편하다고 상담을 하고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반드시 동사무소를 방문해야 시니어패스를 받을 수 있는 현행 제도도 장애인들에게는 여간 부담이 아니다.

만약 카드가 고장이라도 나면, 지하철역이 아닌 동사무소를 다시 방문해 수리를 받아야 한다.

영등포구청역 변희관 부역장은 "지하철역에서 직접 카드발급이 이뤄지는 편이 좋다"며 "카드고장 등 여러 민원을 지하철역에서 곧바로 해결하면 훨씬 편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종이 무임승차권이 사라지는 5월부터 1회용 RFID카드를 발급할 예정이다. 장애인 동행자를 위한다지만, 지금까지 무료로 이용해왔던 장애인들에게 예치금 500원을 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다시 돈을 돌려받기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 카드 매매 가능성 '논란'

장기적으로는 시니어패스의 매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의 시니어패스는 쉽게 말하면 사망할 때까지 '평생'사용이 가능하다. 거꾸로 누군가 시니어패스를 얻어내기만 하면, 평생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현재 시니어패스에는 이용자와 카드등록자가 일치하는 지 여부를 확인할 아무런 방법이 없다. 물론 지문인식 등의 대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서울시는 '부정사용이 적발되면 1년 동안 카드사용이 정지된다'고 밝혔지만, 정작 적발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매매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는 실정이다.

◈ "양심의 문제일 뿐" 대책마련은 미흡

사정이 이렇지만 제도를 시행한 서울시는 '큰 문제가 없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서울시교통과는 카드를 돌려쓰는 문제에 대해 "전 역사에 (직원이) 모두 나가서 지킬 수는 없지 않느냐"며 사실상 돌려쓰기를 막을 방법이 없음을 인정했다.

서울시 교통과는 이어 "장애인 보호자 동반 문제는 제도개선을 준비하는 중"이라며 "현재 모니터링 등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책이 무엇인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다.

CBS사회부 강현석 최인수 기자 wicked@cbs.co.kr/에이블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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