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인권의 날’ 기념식에 수화통역사가 제대로 배치되지 않아 청각장애인들의 인권이 침해받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 청와대>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이후 최초로 진행된 ‘인권의 날’ 기념식에서 수화통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청각장애인들이 차별을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는 10일 오후 3시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1, 2부로 인권의 날 기념식을 열었으나 노무현 대통령 축사와 김창국 인권위원장 인사말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에 대해 수화통역사를 배치하지 않았다.

이날 기념식에는 한국농아인협회 주신기 회장을 비롯해 한국농아인협회 관계자, 에바다학교 학생 및 교사 등 50여명의 청각장애인이 초청됐다. 특히 이날 행사는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참석하는 행사로 인권위측은 이미 보름 전에 초청자들의 신원조회를 마친 상태로 청각장애인의 참석에 대해 이미 인권위측에서 파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인권위는 행사 이틀 전 에바다학교측에 대통령 축사와 김창국 인권위원장의 인사말에 대한 수화통역만을 요청했으며 실제 이날 행사에도 이 부분에 대한 수화통역만이 진행됐으며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수화통역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행사에 참석했던 한국농아인협회 김철환 과장은 “인권위 직원들에게 ‘왜 수화통역사를 배치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지만 ‘미안하다’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농아인협회는 10일 성명서를 내고 “인권의 날 기념식과 관련해 농아인들이 섭섭하고 분한 마음을 참을 수 없다”며 “이날 행사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낭독한 세계인권선언 제2조에는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 언어, 종교, 출생 등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도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라고 되어 있었지만 이날 행사를 보면 일반 언어와 구별되는 수화 언어를 사용하는 농아인들의 인권이 무시됐다”고 밝혔다.

특히 농아인협회는 “이날 행사에서는 식전 행사는 물론 본 행사와 2부 행사에까지 수화통역사를 제대로 배치하지 않아 참석한 농아인들이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멀거니 앉았다 와야 했다”며 “행사 중간에 수화통역이 있었지만 그 통역은 인권위원장의 기념사와 대통령의 축사가 전부였으며, 그나마 자리에 대한 배려가 없어 뒷줄에 앉은 농아인들이 너무 멀어서 수화가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농아인협회는 또 성명서를 통해 “우리 협회에서 제기하는 이 문제점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실수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우리 농아인의 입장에서는 농아인의 언어인 수화가 차별을 시정할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차별받았구나 하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에바다학교 권오일 교감도 “인권위에서 학교 측에 대통령 축사와 인권위원장 기념사만 수화통역을 부탁하길래 이미 다른 수화통역사가 배치돼 있는 줄 알았다가 행사장에 수화통역이 배치돼 있지 않아 의자에 앉은 채로 몇몇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수화통역을 해줬다”며 “인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몰라도 정말 모른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수화통역사 섭외를 담당한 인권위 공보담당관실 관계자는 “인권위가 큰 행사를 처음 치르는 가운데 경황이 없어서 실수를 했다”며 “뭐라고 지적해도 할 말이 없으며, 지적에 대해 달게 받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해 농아인협회와 에바다학교측은 인권위 직원에 대한 장애인 이해교육과 수화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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