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정 방향을 놓고, 아태지역과 유럽연합, 정부와 엔지오, 선진국과 후진국이 극단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

유엔 워킹그룹 리포트-①

지난 5일 개최돼 오는 15일까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워킹그룹 실무회의를 참관하고 있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 김동호(정립회관 기획팀장) 초안위원이 현지의 생생한 소식을 에이블뉴스에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는 회의가 끝날 때까지 김 위원이 보내오는 유엔 워킹그룹 리포트를 연재합니다.<편집자주>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1월 5일부터 16일까지 유엔본부에서 열리고 있는, '장애인 권리보장과 증진을 위한 광범위한 포괄적 조약(Comprehensive and Integral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and Promotion of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에 대한 실무그룹(working group) 회의에서 국가발전 수준 또는 정부와 NGO 사이의 입장 차이가 크게 드러나고 있다.

아태지역 VS 유럽연합

특히 아태지역안과 EU(유럽연합)안이 크게 대립하고 있는데, 아태지역안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그리고 보다 실질적인 내용을 담아내자는 입장인데 반해, EU는 각종 구체적인 지원제도에 관련한 사항을 반영하기 시작하면한이 없으므로, 차별금지의 원칙을 기초로 조약을 최대한 간편하게 만들자는 주장이다.

EU는 장애인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담아내는 수준에서 조약을 만들자는 입장을 펼치며, 다양한 장애인의 욕구에 대응하는 구체적인 지원제도들을 담아내는 새로운 형태의 조약안에 대해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EU의 이러한 입장은 주제별 조정안 검토 때 사사건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예를 들어, 수화나 점자에 대한 조항도 모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말고 `선택가능한 대안(alternative way)'같은 표현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자고 EU는 주장하고 있다. 수화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언어임을 명시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EU는 다국어가 사용되고있는 유럽에서 각기 다른표현방식을 하나의 수화로 통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담된다고 주장하며 이에 반대 하고 있다.

이해관계 따라 입장차 확연히 드러나

접근권(Accessibility)에 대한 논의에서도 첨예한 입장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개발도상국은 접근권의 향상을 위해서 국제협력을 통한 기술이전을 보장하는 규정을 만들자고 요구하는데 반해, EU는 그 필요성 자체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NGO는 개발도상국의 주장에 지지발언을 하는데 반해, 정부대표들은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후진국과 선진국, NGO와 정부간의 미묘하고도 복잡한 역학관계가 각종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입장들의 차이는 장애인권리조약의 기본 성격을 차별금지 모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사회개발모델로 갈 것인가라는 조약의 기본성격에 대한 선택의 문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차별금지 모델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금지를 중심으로 시민적 자유권을 포괄적으로 보장하는 것으로 인권모델이라고도 한다. 이에 반해, 사회개발모델은 시민적 자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각종 제도와 정부차원의 조치를 명시하는 것으로 발전모델이라고도 한다.

유럽 등 선진국과 정부대표들은 차별금지모델(인권모델)을 선호하고 있으며, NGO는 사회개발모델(발전모델)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이 참여해 온아태지역안은 두 모델을 모두 포괄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형태의 법률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인데, 정부의 조치나 제도적 장치마련에 대한 부분들이 유럽지역 국가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워킹그룹 첫 주 엔지오 고전

선진국과 정부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DPI(세계장애인연맹), WBU(세계맹인연합), WDF(세계농아인연맹), RI(국제재활협회) 등 NGO들은 첫 주간에는 다소 고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번 실무그룹회의가 NGO로서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마지막기회라고 생각하고, 두번째 주간에는 보다 활발한 활동과 협력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한국대표로 참가하고 있는 이익섭 한국DPI 회장은 "EU가 의외로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EU의 명료한 입장에 아태지역안과 같은 사회개발요소를 많이 담고 있는 안이 크게 도전을 받고 있다. 특히, 선진국들은 사회개발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포괄적인 차별금지모델을 선호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번 회의가 각국에서 공식적인 정부대표가 참가하고 있어 그러한 분위기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나마, 국제 NGO 단체들이 장애인들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요구를 주장하며 그에 맞서고 있는 정도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번 실무그룹회의는 각종 주장을 충분히 수렴하는 자리로, 합의된 안을 만드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번 회의에서 제기된 각종 주장은 오는 5월 특별위원회에서 다시 다뤄져 합의와 결정의 과정을 밟게 된다. 차별금지냐 사회개발이냐, 아니면 그것을 어떻게 절충하느냐. EU안과 아태지역안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정부와 NGO간의 입장을 어떻게 접근시킬 것인가. 개발도상국의 각종 요구와 한편으론 여러 가지 제약을 어느 정도 감안할 것인가. 이러한 난제들로 인해 앞으로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의 갈 길이 매우 험난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