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주관한 접근성, 이동권 소그룹회의 모습.

유엔 워킹그룹 리포트-④

'장애인 권리보장과 증진을 위한 광범위한 포괄적 조약(Comprehensive and Integral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and Promotion of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이하 '국제장애인권리조약")'에 대한 실무그룹(working group)회의의 조항검토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번 회의는 멕케이 의장(뉴질랜드)이 제안한대로, 각종 세부조항에 대한 검토를 우선하고 세부조항의 내용과 정신을 담아내야 할 전문(Preamble)검토는 후반부로 미뤄져, 첫 주부터 조항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를 해오고 있다.

검토하고 있는 조항은 당초 특별위원회 의장에 의한 제안된, ‘목적’, ‘일반원리’, ‘정의’, ‘일반 국가의무’, ‘평등과 차별철폐’, ‘삶의 권리’, ‘법 앞의 평등’, ‘개인의 자유와 안전’, ‘고문, 학대, 비인간적 취급과 처벌로부터의 자유’, ‘폭력과 비난으로부터의 자유’, ‘주장과 표현 및 정보접근의 자유’, ‘사생활, 가정, 가족의 보호 와 결혼의 권리’, ‘지역사회에 살고 참여할 권리’, ‘장애아동의 권리’, ‘교육권’, ‘정치적 그리고 공공의 생활’, ‘접근성’, ‘이동권’, ‘건강과 재활의 권리’, ‘직업의 권리’, ‘사회보장과 적절한 수준의 생활 권리’, ‘문화생활과 여가생활에 참여할 권리’ 등 20여 가지에 이른다.

자립생활조항 조문반영 가능성 높아

이중 '지역사회에 살고 참여할 권리'는 지난 9일에 제안된 대로 '자립적인 삶과 지역사회 통합(Living independently and being included in the community)'로 조항명칭이 바뀌었다.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이 아니고 '자립적인 삶(living independently)'으로 된 것에 대해 이익섭 한국대표는, "자립생활이 하나의 서비스모델로 이해될 수 있어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 아태지역안을 다룰 때도 나왔던 얘기인데,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익섭 대표는 이 조항에 '활동보조(Personal Assistance)'가 지역사회 생활과 참여에 긴요한 조건이므로 그 내용을 추가하자는 제안을 해 각국의 지지를 얻는 개가를 올렸다. "원칙적으로는 찬성하지만 저개발국가에게는 비용이 문제다"라는 태국의 의견과 "활동보조는 자원봉사를 활용할 수도 있으므로, 저개발국가에게 꼭 비용부담을 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세계시청각장애인연맹(World Federation for the Deaf-Blind)의 주장, "국제법에서 자원봉사문제까지 책임질 수 있겠는가?"라는 아일랜드의 의견 등 비용문제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원칙적으로는 동의가 되는 분위기여서 조문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통합교육에 반발하는 일본

교육은 이번 회의 중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인 주제 중 하나. 통합교육을 지향한다는 기본방향에 강력한 이의제기가 있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일본. 일본은 다른 주제토론 때와는 다르게 가장 먼저 발언신청을 하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일반통합교육이 생산적인 교육성과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유일한 대안으로 얘기되는 것은 문제가 있고, 유연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일본은 주장했다. 특수교육시스템이 견고한 일본의 입장에서는 그 시스템을 바닥에서부터 흔들 수 있는 안이 만들어지는 것에 강력히 반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주장에 시각, 청각장애인관련 NGO 단체들이 보수적인 입장으로 가세했다.

점자와 수화가 교육되는 특수교육시설이 관련 장애인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일반통합교육은 그 장애인들의 문맹률을 오히려 높이고 사회적인 적응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제재활협회(Rehabilitation International)는 교육에서 통합은 권리이자 기본전제이므로 그것을 지향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고, 국제통합협회(Inclusion International)는 분리된 교육이 계속적으로 분리된 교육을 낳고 분리된 삶을 낳는다고 항변했다.

유럽장애포럼(European Disability Forum), 캐나다, 라틴아메리카계열국가들은 통합이든 분리든 선택의 원칙을 지향하고 선택할 수 있는 각종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이러한 논란이 일자 멕케이 의장은 교육방식을 유일하게 정해 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다양한 의견이 있음을 표시해서 특별위원회에서 추가로 논의하게 하겠다는 말로 일단락을 지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이익섭 대표는 "통합은 교육의 목적과 기본정신이다. 분리된 교육은 겉으로 보면 분명한 성과가 있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사회에 결합해 들어가는 길과 능력이라는 가장 중요한 지점을 개발시켜주지 못한다. 장애인권리조약에 이 점이 들어나지 못하고 장애부문과 국가의 이해로 희석되고 묻혀버리는 것이 안타깝다"고 평가했다.

이동권 조항 또 다시 풍랑 맞아

▲ 회의장에서 이익섭대표와 김동호위원.
한편, 순항을 할 것 같은 이동권 조항이 다시 풍랑을 만나고 있다. 지난 9일 접근성 조항과 합쳐질 위기에서 벗어났던 이동권 조항이 12일(월) 실무그룹회의에서 다시 논의가 되자, 뉴질랜드의 멕케이 의장은 소그룹 회의에 회부할 것을 제안하고, 회의를 진행할 나라로 한국을 지명했다.

13일(화) 점심시간을 이용해 진행된 접근성과 이동권에 대한 소그룹회의에서는 에콰도르와 인도가 이동권 조항을 접근성 조항과 결합하자는 의견을 내기는 했으나 원안대로 분리하자는 한국 등의 의견이 우세한 분위기였고 주로 구체적인 조문작업을 위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14일(수) 오후 전체회의에서 소그룹 회의 결과에 대한 조문검토가 다시 진행되었다. 한국의 이익섭 대표는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이동권 조항에 기본전제를 보완하자며 '언제든, 어디든 원하는 대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이 하나의 인간적 권리이므로, 이에 대한 표현을 조항에 추가하자고 제안하였다. 이에 대해 세계시청각장애인연맹등 NGO 단체 등은 대개 지지의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등이 기술적 지원 내용 외에 조문의 특성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문제제기를 했다. 캐나다는 조항의 명칭을 '이동권(Mobility)'에서 '개인의 이동권(Personal Mobility)'으로 변경하자는 의견을 냈다. 계속적인 논란에 멕케이 의장은 결론을 유도하지 못하고 다른 조항검토로 넘어가며 종지부를 찍었다.

이동권과 접근성은 분리된 채로 추가의견들을 달아 오는 5월 특별위원회에서 다시 다뤄지게 됐다. 이익섭 대표는 이에 대해 "인도 등 이동권의 기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한 나라들의 문제제기로 깨끗한 결말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며, "당초 예상한 대로 조문 자체가 취약한 부분이 있어 논란의 여지를 만들고 있다. 조문 전체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워킹그룹 실무회의 곧 폐막

회의는 매일 오전회의가 10시부터 1시까지, 오후회의가 3시부터 6시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회의일 뿐, 세부조항 검토에서 의견조정이 되지 않는 사항은 의장직권으로 소그룹 회의가 열리게 되고, 소그룹 회의는 오전 9시에서 10시, 점심 샌드위치회의로 1시 15분부터 3시, 저녁 6시 30분부터 그 이후로, 이러한 시간을 활용하고 있어, 사실상 종일 회의로 강행군이 계속되고 있다. 14일 현재까지 소그룹 회의에서 다뤄진 조항은 모두 19개에 이른다.

국제 장애인권리조약을 위한 실무그룹회의는 오는 16일 오후 6시(한국시간 17일 오전 8시) 2주일간의 열띤 토론을 마치고, 특별위원회에 회부할 제안서를 채택한 후 폐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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