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폭소비디오총집합.

두둥실 쟁반 같은 보름달이 솟아오르면 "더도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아라" 라며 제각기 서원을 비는 즐겁고 풍성한 추석이 지나갔다.

즐겁고 풍성한 이라니. 추석연휴 연례적인 한민족의 대이동 시기에, 매미의 아우성이 할퀴고 간 상처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태풍 매미의 상륙을 알리는 태풍경보가 발령되었다. 텔레비젼에서는 매미가 오고 있다며 귀가 길을 서두르는 차량행렬을 매 시간마다 보도했다. 그리고 매미가 왔다고 실시간 특집방송을 한다며 채널을 00에 고정시키라고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매미가 들이닥치니 기계화 정보화가 다 무슨 소용 있으랴. 이곳은 매미의 오른쪽 날개에 해당되는 부산이다. 우르릉 쾅쾅 천둥 번개 비바람이 몰아치고 하늘엔 온갖 쓰레기와 간판들이 휙휙 날아 다녔다.

가로수 전신주가 쓰러지고 몇 백톤 크레인도 맥없이 나둥그러진 그 시간. 사람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숨죽이며 매미가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아침을 맞았다. 간밤에 무슨 일이었었는지 아랑곳하지 않는 듯 쨍 하고 해가 떴다. 태풍 매미가 휩쓸고 지나간 상처는 참혹했다. 누가 이런 참상을 예측이나 했으랴.

인재인가 하늘의 재앙인가 가슴졸이며 텔레비젼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마주친 화면에 '바보 대행진'이라는 자막이 눈길을 끌었다. 재방송인 모양인데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저런 제목을 붙였을까 호기심이 발동했다.

'KBS2 TV 추석특집 폭소 비디오 총집합'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바보 대행진'이 아니라 외국 사람들의 실수 사례 모음 비디오였다. 이 글을 쓰면서 KBS 2TV를 검색해보니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전화로 확인을 해 보니 외국 것이라서 다시보기가 안된다나.

저 프로그램의 제작 담당자들은 '실수 대행진'이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바보 대행진'이라고 한 저의는 무엇일까. 실수라는 단어보다는 바보라는 용어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더 발동시킨다고 생각한 것일까. 저들은 바보라는 말의 의미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국어사전을 찾았다.

바ː보[명사]

1.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

2.‘어리석고 멍청한 사람’을 얕잡아, 또는 욕으로 이르는 말.

1항은 당연히 장애인 즉 정신지체를 일컫는 말이고 2항은 욕이라고 나와 있어 1항이나 2항이나 방송용어로는 부적절한 것 같은데 어쩌다 저런 제목을 붙인 것일까.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외교를 두고 한 국회의원이 '등신외교'라고 했다가 곤혹을 치른 일이 있었다. 그 국회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사과함으로써 그 일은 일단락이 된 것 같은데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은 장애인 외교였다'쯤 이었을까.

'등신외교'의 의미가 칭찬이 아니라면 그것은 국가 원수에 대한 모독이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모독일텐데 왜 장애인들에게는 사과를 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아닐까 싶은데 이런 사람들이 '바보'의 뜻도 모른 채 무심코 사용했다면 일반 사람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수준은 어떻겠는가.

태풍 매미가 휩쓸고 간 상처로 나라 한쪽이 쑥대밭이 되어도, 한편에서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그네들이 장애인을 이렇게 놀려먹어도 우리는 나아갈 것이다. 완전참여와 완전평등의 그날까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올테니까.

삼가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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