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식 전 유엔장애인권리위원.ⓒ에이블뉴스

얼마 전 호주의 맥콰리(Macquarie)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하는 싱가포르 학생의 논문 심사를 요청받았다. 제목은 ‘1980년대 완전통합을 지향하는 싱가포르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At the Margins of Society: Disability Rights and Inclusion in 1980s Singapore)’이다.

“언제 부터인가 싱가포르는 완전통합사회라는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했는가? 과연 그런가, 어떻게 해서?” 하는 것이 연구자의 첫 문제 제기다. 여러 형태로 완전 통합을 누누이 언급하지만 실상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완전통합’의 의미를 진지하게 논의해 본적도 없다는 이 논문의 주장이다. (김형식 외. 유엔장애인권리협약 2019. 참조).

이번 기고문은 심사한 논문을 발췌하는 형식이며, 박사학위 논문인데도 미국이나 한국처럼 통계 기반의 실증적 방법이 아니라, 다분히 논리적·합리적 방법론이다.

칼 마르크스, 하바머스, 칼 폴라니가 통계처리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철학적 사고가 탁월했던 것 아니던가? 물론 실증적 연구의 중요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이 논문에도 지배적 담론인 '정상', '능력주의' 등에 대한 대안적 가치인 '장애인 권리' '시민적 권리' '인권' 이라는 이데아(idea), 이념이 어떻게 싱가포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 동력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입증해 준다.

물론 심사자로서, 논문의 문제점을 모두 다 수용하는 것은 아니나 한 국가의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과 관련된 장애운동의 노력을 보면서 늘 주장하듯 한국에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주제로 한 논문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의 주장은 장애인 복지는 2차 대전 후 까지 식민지 정부인 영국이 모체가 되었고 장애인 복지는 완전히 의료화된 것이었다. 한센 병 환자를 포함한 장애인 보호 사업은 그야말로 완전 격리를 통한 사회질서의 유지에 있었고, 장애인들을 전혀 평등한 시민으로 인정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 후 싱가포르는 장애인에 대한 의무를 제대로 하는 변변한 복지국가도 못되었고, 겨우 가족과 개인들이 장애인을 돌보는 책임이 모두 주어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 어떻게 싱가포르가 최근 세계적으로 일기 시작한 완전통합의 도전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는지 추적해 볼 의미는 있다.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1980년대를 필두로 싱가포르에 일기 시작한 정치적 지각 변동이다. 1968년부터 모든 지역을 석권하던 정당 'People’s Action Party'이 1980년대 선거에서 종전과 같이 압승하지 못함으로 많은 경제, 사회정책의 변화, 그 중에도 장애계의 여러 가지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기 시작했고 1988년에 겨우 ‘장애 자문위원회Advisory Council for the Disabled’ 가 부 수상을 의장으로 설립되었다.

이 위원회는 싱가포르는 장애인들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대처하여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이루려 했다(여기에서 사용한 용어 integration 은 inclusion이 아니라 동화적 사회통합“ 필자 注).

그 외에도 ‘청소년 체육·여가’ ‘노인 위원회’ ‘문화와 예술’, 가족 및 지역사회 사회 생활위원회‘등이 설립되었다. 이것은 People’s Action Party가 보다 더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는 모습으로 변화되는 과정임을 나타낸다.

1980년대 말 ‘장애 자문위원회’는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수용하여 국가 차원의 장애인 문제를 논의하기에 이르렀고, ‘장애인들도 다른 국민들과 평등하게 사회적 대우를 받아야 함’을 천명했다.

아마도 이때부터 싱가포르 사회는 장애에 관한 서구권의 인식을 대거 수용했다.(이 논문에서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설명, 입증하기 위하여 싱가포르의 지하철 (MTR) 활용 정책이 ‘장애인은 너무 동작이 늦어서’ 장애인을 수용할 수 없다는 등등의 여러 가지 난제를 거듭하며 드디어 정책을 변경하게 된 치열한 투쟁의 사례를 분석한다).

장기 집권당의 선거 압승 실패와 아울러 싱가포르의 장애운동은 1980년대 유럽, 특히 영국의 장애운동과 때를 같이하여 싱가포르에서 DPI 국제대회가 열려 최초로 싱가포르인이 초대 회장으로 위촉되었고 장애인들도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수용하면서라는 주장이다.

이동 권, 고용, 교육, 대중매체 활용 등 여러 가지 운동을 통해 당면한 문제들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권리와 사회적 모델이 여러 형태의 국제적 장애운동과 맥을 함께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도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등장과 ‘2013년 아·태 장애 10년 선포’되면서 ‘장애인의 인권의 실질적 구현 Make the Right Real’ (UNESCAP, 2012)과 ‘인천전략’이 선포하면서이다.(마침 필자는 당시 한국 대표로 에스캅에 참석 중 이었다).

위 두 가지 선포는 실제적으로 싱가포르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구체적으로 완전통합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싱가포르 정부가 2017~2012 5년간 완전통합 이행을 위한 ‘로트 맵’을 제시하면서이다.

이 ‘로트 맵’ 이행을 위해 정부는 이 주장과 함께 Purple Parade, 지역사회 대상의 Enabling Village, 동시에 정치인들은 완전통합사회의 구현을 위해 'The True Me'라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이러한 전면적인 캠페인은 대중매체와 일반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의 장애운동이 극복해야 될 과제는 설령 싱가포르가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해도 실제적으로는 '경제국가'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회 문제에 관한 정책 결정 과정은 시장의 원리에 의해서 해결하려 한다는 문제이다.

이것은 집단적 생존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어 교육을 필두로 생산성 향상이 우선이다. 장애인에 배제 정책도 이러한 관점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소수의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는 효율적이지 못하며 장애인들에게 지하철-MRT 이용을 허락하는 것은 너무 비싸며 생산성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오랜 투쟁과 설득 끝에 장애자문위원회의 의장인 부 수상이 아래와 같은 입장을 수용했다. 즉, “많은 장애인들은 실제로 납세 의무자들이며, 더욱 저렴하고, 편하며, 접근 가능하고 빠르고 안전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면 직장까지 출근도 할 수 있고 여가를 즐길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 동시에 MRT 는 최대의 고객을 유치할 수 있게 된다.”

능력 중심주의 사고?

지하철-MRT에 대한 사고나 결정이 반갑기는 하나 장애인의 권리가 아닌 다분히 경제와 시장 논리로 일관하는 것을 본다. 사회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 인가? Snyder and Mitchell (2010)이 지적한 ‘능력주의의(ablenationalism)’ 논리로서 시장과 정상이라는 사회적 규범에 순응해야 되는 대가로 인정받는 시민의 권리이다.

장애인의 완전통합을 신 자유 이념에 예속시키는 행위는 과거에 장애인을 얽어매던 전통적 사회적 통념과 다를 게 없다. 한발 더 나가서 서구 세계를 바탕으로 전개 된 Mitchell and Snyder(2015)의 이론은 '소위 정상이라는 것도 비장애인의 규범에 준한 것이고 이성애 규범성(heteronormativity)'에 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싱가포르사회에 용납 될 수 있는 장애인은 아주 예외적인, 능력 있는 소수의 장애인이어야 한다. 위 두 학자의 주장에 응답한 호주의 Soldatic(2015)은 상황적으로 호주도 다를 게 없다고 한다. 다소 궤를 달리 하지만, Soldatic는 호주의 원주민들이 백인 식민주의자들에 당하는 모든 인종차별, 편견의 문제와 연결시키며 장애인들의 권리, 시민적 권리 투쟁과 동일선상에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를 힙 쓸고 있는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BLMF와 장애인의 시민적 권리투쟁이 무엇이 다른가?

마치면서, 두 가지를 언급한다. 우선 한국에는 아직도 완전통합 이행을 위한 ‘로트 맵’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당연하다. 더 중요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위한 ‘국가전략 (National Action Plan)’이 없으니!

다른 하나는 한국 정부가 주도했던 ‘인천전략’은 분명히 아·태 장애계의 기대를 모았었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이행부족으로 예산 지원도지지 부진했고, 고위층 관료와 공무원들이 주도와 장애계의 무지와 무관심, 무력으로 자문이나 참여도 전혀 없었고, 체계적인 모니터링의 결핍,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원칙과 목표중심의 아·태 각국의 법령과 제도와의 조정도 소홀히 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현장의 한 전문가와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래와 같은 제안을 한다. 즉, ‘전국에 정부, 지자체의 보조금을 받는 단체, 복지관 등의 평가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원칙과 목표에 부합하는 평가지표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재구조화하여 3년 마다 평가하여 서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 및 실천위원회가 학계, 민간 등에서 더 심도 있게 이행할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한번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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