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 사옥 1층 로비에 장애인권활동가들이 집결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매주 금요일 오후가 되면 서울 충정로 국민연금공단 사회보장위원회 사옥 1층 로비에 장애인들이 모여든다. 30일 오후 4시30분에도 어김없이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 30여명이 운집했다.

바쁜 시간 속에서도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그린라이트 행진’에 동참해 힘을 보탤 한 가지 목적으로.

‘그린라이트 행진’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예산 쟁취, 활동지원서비스 만65세 연령제한 폐지 등을 요구하며 지난 7월 12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벌이는 대정부 투쟁이다.

사회보장위원회에서부터 서대문 로터리까지 행진하고, 다시 사회보장위원회로 돌아오며 국민과 사회에 요구의 필요성을 호소하고 정부에게는 조속히 반영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30일 서울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 앞에서 장애인권활동가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에이블뉴스

여섯 번째를 맞은 이날 장애·비장애인 활동가들은 행진에 앞서 싸워야 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었다고 말했다.

“어제 관악구에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해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여성장애인이 계십니다. 월요일 우리는 그분의 장례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할 것입니다. 그분은 홀로 집에서 아무런 보살핌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입니다. 이제 복지부가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실태 조사하겠다고 합니다. 항상 사람이 죽어나가야 합니다. 사람이 죽어야 우리의 목소리에 언론이 주목하고 법이 바뀝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마이크를 주고받으며 이어진 그들의 요구는 어렵지 않았다.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여 달라. 그 말을 듣고 정책에 반영해 달라. 그러나 정작 귀를 기울여야 하는 정부는 외면하고 있다.

이들은 장애인활동지원과 관련 올해 대비 9948억8100만원이 증액된 1조9983억42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이용자 수 8만1,000명에서 10만명, 월평균시간 109.8시간(월)에서 150시간으로 확대하고 수가 1만2960원에서 1만6570원으로 인상하기 위한 것이다.

장애인연금과 관련해서는 대상을 장애등급 3급까지 확대하고, 기초급여 30만원 일괄 지급을 위해 올해보다 8412억7900만원 증액된 1조5610억1400만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바우처 월평균시간 132시간, 방과후 돌봄 서비스 바우처 월평균 44시간에서 66시간으로 확대 등을 위해 올해보다 1856억3400만원이 증액된 2143억52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30일 서울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를 출발한 장애인권활동가들이 도로를 행진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29일 발표한 내년 예산안은 이들의 요구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은 1인당 월 평균 급여량을 109시간에서 127시간으로 28시간으로 늘리고, 서비스 이용자를 8만1000명에서 9만명으로 9000명 확대 등을 위해 1조2752억원이 편성됐다.

장애인연금 예산은 대상을 36만7000명에서 37만8000명으로 확대, 차상위계층까지 기초급여액 30만원 인상을 위해 7861억8100만원이 반영됐다.

발달장애인지원 예산은 성인 주간활동 이용자를 2500명에서 4000명, 방과후활동 대상 대상자를 4000명에서 7000명으로 확대 등을 위해 855억원을 책정했다.

사회보장위원회 앞은 원하는 대로 예산이 반영될 때까지, 활동지원서비스의 연령제한이 폐지될 때까지, 복지부 관계자들과 국회의원들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제대로 정책에 반영할 때까지, 그래서 ‘사람’으로서의 ‘생존’이 해결될 때까지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는 이들의 의지가 가득했다.

30일 장애인권활동가들이 서울 서대문 로타리 인근 횡단보도를 점거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투쟁 발언을 마친 뒤 오후 5시 10분경 본격적으로 시작된 행진. 벌써 여섯 차례 행진인 만큼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피켓을 목에 건 채 휠체어를 타고, 굳은 표정으로 출발한 그들은 반환점인 서대문로타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사회보장위원회로 돌아가야 하는 5시 30분경, 횡단보도를 건너다 휠체어를 멈추고 도로를 점거했다. 그리고 30분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점거농성으로 퇴근길 도로가 막혀 차량들이 경적을 울렸고 일부 지나가는 시민들은 욕설을 퍼부었다. 불만을 표출하며 차를 몰고 그대로 돌진하다 폴리스라인을 들이받을 뻔 한 사고도 있었다.

욕설에 한숨을 내쉬기도, 퇴근 불편에 미안함도 있었지만 힘겨운 사회의 현실에 멈출 수는 없었다.

30일 서울 서대문 로타리 인근 횡단보도에서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시민 여러분은 우리는 10년이고 20년이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우리의 인생을 저당 잡힌 채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어제 관악구에서 또 한 명의 장애인이 아무도 모르게 죽어갔습니다. 이런 죽음, 국가가 책임지고 있습니까?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이 책임지고 있습니까? 결국 우리 장애인 당사자들만이, 그 고통이 뭔지 아니까, 함께 투쟁하고자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다 같이 외치겠습니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이들은 오후 6시경 도로 점거를 풀고 다시 사회보장위원회로 향했고, 20분 뒤 도착해 여섯 번째 그린라이트 행진을 마무리했다. 다음 주 금요일 다시 만나 함께 장애등급제 진짜폐지, 활동지원 연령 제한 폐지 등을 외치기로 굳게 약속하며.

30일 오후 6시경 서울 서대문 로타리 인근 횡단보도를 점거했던 장애인권활동가들이 점거를 풀고 사회보장위원회로 돌아가고 있다.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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