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11일 장애인 탑승을 거부한 에버랜드를 상대로 지겨운 법정 싸움을 이어간 끝에 승소한 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에이블뉴스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놀이기구 탑승을 거부당한 시각장애인들이 에버랜드를 상대로 3년 4개월간의 지겨운 법정 싸움을 이어간 끝에 결국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7부(김춘호 부장판사)는 11일 시각장애인 김 모 씨 등이 에버랜드를 운영하는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차별구제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놀이기구 이용을 제한한 것은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 김 씨 등 시각장애인 3명에게 1인당 200만원씩 총 6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지난 2015년 5월 15일 여자친구를 동반한 채 친구들과 에버랜드를 찾은 김씨는 놀이기구인 티엑스프레스를 탑승하려다가 안전상의 이유로 거부당했다.

티엑스프레스는 시속 104km의 엄청난 속도와 낙하각 77도의 아찔함으로 에버랜드 인기 시설 중 하나로,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티엑스프레스를 탄 채 ‘짜장면먹기’ 게임까지 진행했다.

김 씨는 “만약 놀이기구에서 긴급정지를 하면 어떻게 탈출하실 거냐”고 묻는 직원의 말에 물러서야 했다. 스릴 넘친다는 롤링 엑스트레인, 더블락 스핀 등의 놀이기구도 모두 타지 못했다.

이에 같은 해 6월 19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김재왕 변호사 등 4명의 도움을 받아 에버랜드(삼성물산)를 상대로 차별 구제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며, 3년 4개월의 지겨운 법정 싸움을 이어왔다.

그 기간 동안 에버랜드 측은 ‘시각장애인의 놀이기구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안전을 위한 적절한 조치’임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또 위험을 입증하겠다는 의도로 단순히 놀이기구의 안전성을 체크하는 기관인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에 탑승한 사람의 위험도를 측정해달라는 검증을 신청하는 등 불필요한 소송 기일을 끌어왔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2016년 1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에버랜드 안전 가이드북 시정을 요청하는 진정을 제기했다.ⓒ에이블뉴스DB

이날 재판부는 "에버랜드 직원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놀이기구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장애인 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된다"며 “시각장애인들이 놀이기구 이용에 있어 비장애인과 비교해 안전상 큰 위험을 초래한다고 하는 삼성물산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는 위험 정도에 있어 별 차이가 없고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신적, 신체적으로 이용이 부적합하다거나 본인 또는 타인의 안전을 저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차별 행위가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발생한 것일 뿐 시각장애인을 의도적으로 차별할 목적으로 탑승을 거부한 것은 아니라는 점, 일부 놀이기구에서 장애인 우선 탑승 제도를 운영하는 등 장애인 편의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 점 등을 고려했다"며 위자료 산정 배경을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시각장애인 탑승 금지를 규정한 에버랜드 내부 가이드북을 시정할 것을 명했다.

재판부는 “안전 가이드북에는 객관적인 근거 없이 특정인에 대한 탑승을 제한하고 있다.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시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정한 시력, 양손과 다리를 정상적으로 사용’ 등의 문구를 모두 삭제하라”고 판시했다.

만일 60일 이내에 가이드북을 삭제, 변경에 응하지 않으면 그다음 날부터 시정하는 날까지 시각장애인 3명에게 각 10만원씩의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2015년 6월 19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김재왕 변호사 등 4명의 도움을 받아 에버랜드(삼성물산)를 상대로 장애인 차별 구제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모습.ⓒ에이블뉴스DB

한편, 이날 선고 이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기자회견을 갖고 “객관적 근거 없이 막연한 추측만으로 탑승을 못하게 한 것을 차별행위라는 것을 밝혔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법원의 판단을 환영했다.

소송대리인인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김재왕 변호사는 “우리는 처음부터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데 있어 큰 차이가 없다. 장애를 이유로 이용을 제한 것은 차별이라고 주장했다”면서 “재판부에 상당 부분 받아들여진 것에 기쁘고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김 변호사는 “어떤 것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판단과 그에 따른 책임 역시도 장애인 본인에게 있다. 자기결정권을 확인한다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면서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문제제기 하겠다”고 덧붙였다.

시각장애인인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오병철 소장도 “사고가 나는 문제는 시설을 관리하는 안전요원의 문제이지, 개인의 장애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사고가 더 나는 것은 없다”면서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사법부도 장애 감수성이 한단계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판결을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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