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김진 씨는 그동안 부산점자도서관 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강사로 일하였다. 얼마 전 부산점자도서관은 그만 두었으나 교육 강사는 그대로 하고 있다. 대부분은 김진 강사 혼자 1~2시간 정도의 강의를 하는데 6월 2일 장전중학교에서의 강의는 좀 달랐다. 강의 앞뒤로 피아노 연주회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박송이 초청 연주회 팸플릿. ⓒ이복남

장전중학교에서 피아노 연주를 할 사람은 부산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드레스덴(Dresden) 국립 음악대학에서 공부를 한 시각장애 1급 박송이 씨다. 장전중학교 신애련 교장은 좀 일찍 와서 연습도 하고 점심도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는데 김진 강사는 필자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2일 아침, 학교는 자그마했다. 장전중학교 현관을 들어서는데 신애련 교장이 보고 있었는지 현관으로 나와 반갑게 맞았다. 신애련 교장은 단발머리의 소녀풍이었는데 정년을 앞 둔 60대라고 해서 놀랐다. 물론 김진 강사와 박송이 연주자는 볼 수 없었지만……. 김진 강사도 목소리가 젊다고 하였다.

교장실에서 신애련 교장과 오늘 연주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신 교장은 이번 행사를 담당한 문화부장을 불렀다. 아, 베토벤! 필자와 박송이 이모는 동시에 탄성했다. 신 교장도 처음 봤을 때 베토벤이라고 했다며 웃었다. 문화부장은 박성수 음악선생이었다. 이번 행사를 총괄하고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혹시 성악이나 피아노를 전공했을까. 콘트라베이스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 연주를 위해서 피아노도 조율하였다고 했다.

인사하는 신애련 교장. ⓒ이복남

신 교장과 함께 교직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뷔페식 식단인데 오늘의 메뉴는 국수와 치킨 등이었다. 행사는 2시 30분부터여서 점심을 먹고도 약간의 시간이 남았다. 장전중학교는 학교가 작아서 강당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장전교회를 빌려 쓰는데 장전교회 이우식 담임목사도 언제든지 사용하라며 흔쾌히 승낙했단다. 장전중학교는 전교생이 530명인데 이번 행사에는 1학년과 3학년, 2학년(외부 강사 수업 받는 학생 제외) 일부 그리고 학부모 등이 참석하는데 500명 쯤 될 거라고 했다.

시간이 되어 장전교회로 향했다. 대강당은 은혜홀이었다. 박송이 연주자는 오늘 연주할 곡들을 연습해 보았다. 박송이의 피아노 소리가 교회 안과 밖을 고요히 울리며 주변 환경과 어울려 청아하게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 같았다.

김진 강사가 초대한 김석주 음악치료사와 윤한민 배리어프리 영상포럼 부회장 등 10여명의 방청객이 도착했고, 이어서 학생들이 들어 왔다.

박송이 피아노 연주자. ⓒ이복남

신애련 교장은 이번 행사를 하게 되어서 기쁘다고 하면서 세 가지 정도의 목적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것, 둘째는 이번 피아노 연주를 통해서 교양도 쌓고 수준 높은 관람 태도도 키울 것, 셋째는 장애인 인식개선으로 장애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교장 선생이 장애인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니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문화부장이 김진 강사와 박송이 연주자를 소개했다. 그리고 박송이의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곡은 쇼팽의 연습곡 25-6(Chopin Etudes Op.25 no.6)이었다. 첫 번째 곡의 연주가 끝나고, 박송이 연주자가 피아노 레슨을 받는 모습이 영상으로 나왔다. 박송이 연주자는 악보를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므로 음을 외어서 연주를 하는데 레슨 강사가 박송이의 오른쪽 어깨를 손바닥으로 치는데 따라서 강약이나 속도를 조절한다고 했다.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강사 김진. ⓒ이복남

다음은 김진 강사의 ‘시각장애인의 이해’에 대한 강의였다. 우리나라의 시각장애인은 252,874

명(2015년 말)인데 그 중에서 5% 정도는 선천성이고 나머지 95%는 후천성이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의 기준은 불빛도 볼 수 없는 전맹(全盲)과 빛은 보이는 준맹(準盲) 그리고 저시력인(低視力人)이 있는데 박송이 연주자는 전맹이고 자신(김진 강사)은 준맹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문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중학생들이라 영어 공부도 시킬 겸 차이(differentiation)와 차별(discrimination)과 배려(consideration)에 대해서 설명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특히 시각장애인의 차이를 알고, 차별이 아닌 배려를 할 줄 알아야 된다는 내용이었다. 끝으로 학생들에게 시각장애인 국제변호사 김현아 씨 사례(김현아 씨와 그녀를 도와준 자원봉사자 영어 유학 추천서)를 들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함께하는 사회 실현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된다는 것을 파워포인트를 통해서 설명했다. 어떻게 파워포인트를 준비했을까. 보는 사람들은 파워포인트를 통해 화면으로 보지만 자신은 시각장애인 점자노트북(정식 명칭: 점자정보단말기)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학생회장과 대담하는 박송이 연주자. ⓒ이복남

다시 이어진 박송이의 피아노 연주는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다장조 60 1~3악장이었다. 어쩌면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곡일 수도 있기에 중간 박수가 나왔다. 클래식 연주에 있어서 1악장부터 3악장까지의 연주일 경우 3악장이 다 끝나고 나서야 박수를 쳐야 되는데 중간 박수가 나오는 바람에 연주자가 당황하지 않았을까 염려되었는데 다행히 박송이 연주자는 무사히 넘겼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 박송이 연주자에게 그 부분을 물어 보니 약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다음은 노규백 학생회장이 나와서 박송이 연주자에게 피아노는 어떻게 배우게 되었으며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는 지 등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박송이 연주자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피아노를 좋아해서 자연스레 배우게 되었으며 악보를 보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피아노를 치는 순간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쇼팽의 피아노 발라드 1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 3악장이 연주되었다. 연주가 끝나자 "누나!"라는 환호성과 함께 뜨거운 박수가 연주홀을 울렸다. 마지막으로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박송이의 연주에 맞추어 박성수‧이용규 두 음악 선생이 1절을 노래 부르고 2절은 3학년 학생들이 오카리나로 합주했다.

노래 부르는 박성수·이용규 선생. ⓒ이복남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는 시크릿 가든의 Serenade to Spring에 한경예 작사가 가사를 붙인 것인데, 봄의 노래가 우리나라에 와서는 가을노래가 되고 만 것이다.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은 노르웨이의 음악 그룹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불렀는데 특히 바리톤 김동규가 불러서 더 유명해 졌다.

‘~창밖에 앉은 바람 한 점에도 사랑은 가득한 걸, 널 만난 세상 더는 소원 없어 바램은 죄가 될 테니까,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지금은 가을도 아니고 노래를 부른 사람이 바리톤 김동규도 아니지만 박송이 피아노 연주에 맞춰 6월에 부른 노래도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웠다.

연주회가 끝나고. ⓒ이복남

이번 행사에 대해서 김진 강사는 “장애인 인식교육이 장애인의 인권이나 장애인을 대할 때의 에티켓만을 강의하는 한 방향 인식교육이 아니라 상호 소통하며, 공감하는 인식교육으로 장애인 인식교육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뤄진 특별한 인식교육이며, 이러한 인식교육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아무튼 획일적이고 장애인 당사자 중심적인 인식교육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의 연주 등 장애인의 삶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교류하고, 공감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의 모델을 보여 줄 수 있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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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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