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A씨의 어머니 이 모씨가 발언하고 있다.ⓒ에이블뉴스

“사건 이후 우리 딸은 밤에 잘 때도 경련을 일으키고 총 맞아 죽을 거라고 말하는 등 공포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건이 엄밀하게 밝혀져서 장애아도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부모로서 바램입니다.”

마이크를 든 A씨의 어머니 이 모 씨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결연했다. A씨의 가족은 지난 6월20일 이후 3달여를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다. 딸이 지적장애라는 이유로 누구도 A씨의 가족에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없단다. 이제 갓 스물, 곱디고운 딸의 꿈도, 일상도 완전히 무너졌다.

6월20일 오후, 서울 소재 지적장애 특수학교에 다니던 A씨는 옆 반의 담당 사회복무요원 B씨에 의해 성폭력을 당했다. 학생들만 남아있던 점심시간에 교실로 들어온 B씨는 A씨를 성추행한 것. 놀라 달아나는 A씨를 뒤쫓아 폭행하고 손으로 처녀막까지 파열시켰다.

사건을 전해 들은 이 씨는 놀란 가슴을 부여 안고 산부인과를 방문해 A씨의 처녀막 파열에 대한 진단서를 증거로 확보했다. 또한 지적장애를 가진 딸이 진술에 어려움이 있어 진술조력인과 몇 시간에 걸쳐 경찰 수사도 진행했다.

하지만 지난 8월29일, 경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검찰에 불기소의견을 제출했다. A씨의 진술에 신뢰도가 떨어지고, 목격자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사건 이후 A씨의 일상은 완전히 망가졌다. 자다가 일어나 구석에 숨고, 식은땀을 흘렸다. 깨어있는 시간에도 뜬금없이 “그러지 말라”며 눈물을 쏟았다.

반면, B씨는 무죄임을 연신 주장하며, 학교를 떠나 전근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혐의 없음’에 학교에서도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보호막이 없는 상황 속에서 망가져가는 A씨와 A씨의 가족만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씨는 “처녀막 손상 진단서를 제출했지만 증거로도 채택되지 못했다. 우리 아이는 지적장애 아이로서 진술을 조작할 수 없다. 사건 이후 밤에 잘 때도 경련을 일으키고 전기파도 너무 확산돼 항경련제를 두 배 이상 처방받고 있다”며 “매일 공포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이 씨는 “B씨의 경우 현재 전근 근무를 임명받았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경우가 있냐”며 “사건이 엄밀하게 밝혀져서 장애아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꼭 검찰에서는 재수사해서 끔찍한 피해를 받았을 경우 동등한 입장에 서 있어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에이블뉴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김남연 회장은 “피해자가 정확하게 가해자를 지목했음에도 가해자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하며, 처녀막 파열 결과는 자기가 그랬다는 증거가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며 “지적장애 2급은 있는 사실을 서투르게 표현할 뿐이지,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회장은 “피해자는 매일 밤 고통을 호소하는데 가해자는 매일 평범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지적장애 여성들이 언제까지 성피해를 받아야 하냐”며 “지적장애인은 성추행을 당해도 변론을 해도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다면 지적장애 여성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 사건을 절대로 좌시할 수 없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재조사를 해달라”고 촉구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는 “장애인 인권침해와 성폭력의 대상의 80%가 발달장애인이다.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학대와 폭력을 당하고 살고 있지만 사법기관에서는 명쾌하게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며 “2000년대 이후 가해자 처벌 조항이 생긴 이후 10여년이 넘었지만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이어 박김 대표는 “지적장애 성폭력은 폭력보다도 은밀한 곳에서, 증거를 충분히 증언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범죄의 특성이다. 발달장애인은 더더욱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증언”이라며 “비장애 중심으로 하던 조사를 발달장애인 중심으로 해달라는 것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검찰에서 분명하게 재수사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특수학교부모협의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장애를 고려한 전면 재조사를 요청하는 2303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했다.

1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이후 재수사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러 가는 모습.ⓒ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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