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회의에 참석중인 김형식 위원. ⓒ이광원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한 나라는 협약 발효 2년 경과 후에, 그리고 그 다음 매 4년마다 국가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하게 되어있는데, 그 국가보고서를 심의하는 기구가 바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Committee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이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지난번 인터뷰 기사를 통해 소개한 바 있는 호주 출신의 로널드 맥컬럼(Ronald MC CALLUM)씨가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유엔 회원국들로부터 추천을 받은 장애인 인권 관련 전문가들 중에서 선거를 통해 뽑힌 18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활동 중인 18명의 위원 중에는 한국 출신의 김형식 위원이 있다.

김형식 위원은 현재 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인데, 호주의 모나쉬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호주 모나쉬대학교, 호주 퀸즐랜드대학교 및 중앙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한 바 있었다.

김형식 위원은 지난 2010년 9월 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 선거에서, 각국에서 후보로 나선 23명 가운데 당선됐으며, 임기는 4년으로, 2014년 12월 31일까지 유엔장애인권리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필자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8차 세션을 참관 중이던 지난 9월 20일, 제네바 시내의 한 식당에서 김형식위원을 만나, 유엔장애인권리위원으로서의 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회의장 풍경(사진 왼쪽의 위원석 중 좌측 맨 끝에서 두 번째가 김형식 위원). ⓒ이광원

다음은 일문일답.

이광원 :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김형식 :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장애인복지의 패러다임을 깨트렸다. 장애인 문제의 대안은, 이제 더 이상 ‘복지’가 아니다. 복지, 의존 그리고 보호의 시대에 더 이상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우리에게 주는 강력한 메시지다.

이광원 : 유엔장애인권리위원의 주된 역할은 무엇이고,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나?

김형식 :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34조에 근거하여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는 우리 위원들은, 국가보고서를 심의하며 현안목록과 최종견해 채택 등을 통해, 해당 국가에게 적절한 피드백을 주는 등, 비준국이 협약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선택의정서를 비준한 국가로부터 들어오는 개인·집단 진정에 대응하는 일도 한다. 더불어 필요한 경우에는, 이슈가 되는 문제를 검토하기 위하여 분과를 만들거나 심도 있는 국가 조사를 하는 등 매우 전문적인 활동을 하기도 하는데, 현재는 위원회 밑에 접근성 분과, 여성 및 아동 분과 그리고 선택의정서 분과, 이렇게 세 개의 분과가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광원 : 위원마다 전문분야들이 있을 텐데, 김위원의 전문분야는?

김형식 : 내 전문 분야는 고용, 교육 그리고 국제협력이다. 이들 분야에 대해서는 위원들로부터 내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이 분야들과 관련된 이슈가 나올 때는, 다른 위원들이 대체로 내 의견을 듣고 싶어 한다.

다른 위원들과 함께 심의 중인 김형식 위원(사진 맨 앞쪽). ⓒ이광원

이광원 : 이번 8차 세션에서 중국 국가보고서 심의가 있었고, 중국 국가보고서에 대한 특별보고관(rapporteur)의 역할을 맡으셨던 걸로 아는데,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김형식 : 각 국가보고서를 심의할 때마다, 위원 중에서 한 명을 특별보고관으로 지정한다. 특별보고관은 다른 위원들 보다 더 집중해서 심층적으로 보고서를 검토하고, 질문을 개발하게 된다.

특별보고관은 그 나라의 지역적 정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적절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인근 국가의 위원이 맡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중국의 경우 내가 특별보고관이 되었다.

중국은 하나의 나라지만, 중국 본토, 홍콩-차이나 그리고 마카오-차이나, 이렇게 세 개의 국가보고서가 제출되었기에 분량이 많아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에 나는 중국 국가보고서의 특별보고관으로서, 중국 30개, 홍콩 14개, 마카오 9개의 질문을 만들어서 위원들과 공유했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데에는 NGO을 통해 알게 된 정보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 8차 세션 회의에는 중국 본토의 NGO들은 참석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특별보고관 활동 중에 중국 본토 NGO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서, 그들과 여러 차례 이메일과 전화통화 등을 나눴고, 실제로 1시간 이상이나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었다.

이광원 : 위원으로서 활동하면서 갖는 개인적인 소감이 있다면?

김형식 : 2010년 9월에 당선된 후, 작년부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상당한 도전을 받고 있다.

위원이 되기 전에는, 사실 이 분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하나의 구체적인 이슈에 부딪히면서 더 많은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함께 활동하는 동료위원들 중에는 매우 훌륭한 분들이 많아, 내게도 큰 자극이 되고 있다. 어떤 분은 협약의 내용을 거의 암기하고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분은 협약과 연관된 다른 국제법 조항들에 근거해, 매우 전문적으로 논지를 전개하기도 한다.

이런 전문가들과의 활동을 통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뿐만 아니라 내 자신도 큰 도전을 받고 있으며, 위원으로서 더욱 큰 책임감을 갖게 된다. 항상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레오나드 체셔 디서빌러티(Leonard Cheshire Disability)에서 나온 유엔장애인권리협약 해설집을 늘 가지고 다니며, 생각하고 메모한다.

(필자 주 : Leonard Cheshire Disability는 영국의 장애 관련 자선단체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해설집 소책자를 발간했는데, 김 위원은 그 해설집 소책자를 항상 휴대하며 연구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김 위원이 보여준 그 소책자에는 정말 깨알 같은 메모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한국참관단과 만찬 중인 김형식 위원 ⓒ이광원

이광원 : NGO 보고서 작성에 조언이 있다면?

김형식 : 먼저 전문가들을 모시고, 본 협약을 심도 있게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통 국가보고서를 심의하기 6개월 전에, 위원들이 NGO 보고서를 받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NGO의 적극적인 활동이다. 이번 8차 세션에서 참가한 한국 NGO 참관단처럼, 회의를 참관하고 위원들을 만나며, 국제장애인연맹(IDA ; International Disability Alliance)과 같은 국제조직들과 유대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에 앉아 말로만 듣는 것과, 직접 와서 보고 듣는 현장의 내용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더불어 무엇보다 장애계의 주인의식이 요구된다. 한국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한 만큼, 그 이행과 모니터링에도 NGO들, 특히 장애인 당사자 단체 DPO(Disabled People's Organizations)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야한다.

그리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보다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각국의 자료를 정리하여 최근의 쟁점들을 다루는, 별도의 조직이 국내에 만들어지는 것이 좋겠다. 한편, 정부 당국의 입장에서도 잘 준비해야 한다.

튀니지의 경우에는 관련 부처별로 6명의 장관이 와서 보고하고 질문에 답했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 분야에 책임이 있고 지식이 풍부한 정부 대표가, 많이 참석해야 할 것이다.

이광원 : 마지막으로, 한국의 장애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김형식 : 불자가 불경을 보듯, 기독교인이 성경을 보듯, 장애인 당사자들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자주 읽고 공부해서, 매우 친숙해졌으면 한다.

한국에 이미 유엔장애인권리협약 해설서들이 나와 있으니, 그것들을 구해서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여 유엔장애인권리위원이 되겠다는 꿈을 꾸는 장애인들이, 많이 나와 줬으면 좋겠다.

내 임기는 2014년이면 끝난다. 그 이후의 빈자리를 다른 나라 위원이 차지하지 않고, 또 다시 한국의 위원이 차지하게 하려면, 이런 일들을 잘 감당해낼 수 있는 유능한 장애인 당사자들을 양성해야 한다. 그저 유능한 장애인이 언젠가는 나타나겠지 하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조직적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애인들을 길러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점에 대한 중요성을, 한국의 정부와 장애계가 인식했으면 좋겠다.

김 위원의 마지막 말이, 긴 여운으로 필자에게 남았다. 한국이 올림픽에서 상위에 랭크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힘은, 스포츠 발전을 위한 연구와 분석, 정책 개발과 투자 등에서 나오는 것이다. 단순히 선수 개인의 뛰어난 능력만을 바라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스포츠 강국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 한국은, 장애인 분야에 있어서도 세계의 흐름을 이끌고 나아가야할 위치로 점점 다가서고 있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만들어지기까지 한국의 NGO가 보여준 열정적인 기여는, 많은 나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또한 내년부터 시작될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을, 한국이 이끌고 나아가 주기를 기대하는 나라들도 많다. 그런데 그러한 기대에 부응해서, 국제적인 활동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한국의 장애인 당사자 리더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사람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공감하며, 제네바 현지에서의 김형식 위원 인터뷰를 마쳤다.

한편 이번 인터뷰에서는 한국 참관단의 일원인 윤재영(기록)씨가 도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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