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함창 공갈 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따 주마 우리 부모 모셔다오

-중략-

고초 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만 못하더라

나도야 죽어 후생 가서 시집살이 안 할라요’

이 노래는 ‘상주 모심기 노래’ 또는 ‘상주함창 연밥 따는 노래’라고 하는데 상주 함창에는 공갈못이 있다. 공갈못에는 예전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었다.

상주함창 공갈못 기념비. ⓒ상주시청

저수지는 함창 사람들의 고단한 부역으로 쌓은 것이다. 그런데 공갈이네 집에서는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부역에 나오지 못했다. 그러자 어린 공갈이를 잡아다가 산채로 둑 속에 묻었다는 것이다.

저수지는 함창 사람들의 피와 땀, 눈물로 얼룩진 곳이기에 공갈이의 죽음은 함창 사람들의 분노이자 서러움이었기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저수지를 공갈못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관아 서류에는 공검지(恭儉池)라고 되어 있단다.

아무튼 상주 함창 공갈못에는 연꽃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연꽃 지고 난 뒤 연밥을 따면서 부르는 노동요에서 고초당초보다 맵다는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노래하고 있다.

전통사회에서 여자는 유순과 복종만이 미덕이라 일컬어 왔다. 삼종지도(三從之道)라 해서 여자에게 강요된 복종은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삼종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랄까. 문제는 남편인데 그 남편의 뒤에는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버티고 있었다. 요즘은 이들을 일컬어 ‘시월드’라는 신조어까지 생길정도라지만 아무튼 시집살이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겪어야하는 시련이었다.

밥하고 빨래하고 김매는 하루의 일상도 고달팠다. 그러나 시집살이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다른 가정에서 자라온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 또는 시누이의 다른 관습 다른 문화에서 오는 입방정이었다.

시집온 새 애기는 행주치마 자락이 마를 날 없이 눈물지어야 했고 때로는 칠거지악으로 소박을 맞기도 했다. 더구나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입방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말 안하고 3년, 귀먹고 3년, 눈멀고 3년으로 석삼년 동안은 보아도 못 본채, 들어도 못 들은 채, 알아도 모른 채 입을 닫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나타내는 시집살이요(謠)에서는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으로 석삼년을 살고 나니 배꽃 같던 요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네.’라고 넋두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집살이하는 며느리는 보아도 못 본 채 해야 되고, 들어도 못 들은 채 해야 되며, 알아도 모른 채 하면서 9년은 그렇게 지내야 한다는 것은 전통사회의 시집살이였다. 설사 전통사회가 아니라하더라도 최소한은 30년 전 즉 1981년 이전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1981년에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공영방송에서 ‘벙어리로 사는 며느리’이야기를 하다니…….

언어장애인에게 벙어리라고 한다면 욕이 될까 아닐까?

말하는 사람에게 벙어리라고 하는 것은 욕이 될까 안 될까?

KBS 2TV 여유만만의 ‘벙어리 며느리’. ⓒKBS

2012년 5월 17일 KBS 2TV ‘여유만만’에서는 부부클리닉 5탄으로 고부갈등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이혼의 위기에 와 있는 어느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갈등이 심했는데 한 번은 시어머니와 맞대결(?)을 했었다.

그 후 시어머니는 시누이들에게 그 얘기를 했고, 시누이들은 남편에게 얘기를 했고, 며느리는 남편에게서 그 얘기를 다시 들어야 했기에 그 때부터는 ‘벙어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유만만’은 녹화방송일 텐데 작가나 피디 등 관계자 아무도 ‘벙어리’를 몰랐단 말인가. ‘벙어리’라는 말은 몇 번이나 반복되었고 친절하게도 자막으로까지 기재를 해 주었다. 그들은 항변할 것이다. ‘무심코’라고 말이다.

그들은 뜻하지 않고 무심코 그랬다고 하겠지만 사실은 ‘무심코’라는 것이 가장 무서운 말이다. 무심코 그렇게 했다는 것은 그들의 뼛속 깊이 이미 그 말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저절로 그런 말이 나왔던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나 쓰이던 말이, 장애인복지법의 제정으로 ‘벙어리’가 언어장애인으로 바뀐 지 3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서는 말 못하는 언어장애인이 여전히 ‘벙어리’로 통용되고 있다니 이것이 과연 우리의 현실이란 말인가.

적어도 공영방송이라면 장애인복지법에서 규정한 ‘언어장애인’을 ‘벙어리’라고 비하해서는 안 된다. 설사 아직도 ‘벙어리’가 현실사회에서 통용이 되고 있다 손 치더라도 방송에서는 ‘말 안하는 며느리’ 또는 ‘입을 닫은 며느리’ 정도로 순화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드라마나 소설도 아닌 녹화방송 토크쇼에서 ‘벙어리’라는 전통사회의 시집살이 용어를 그대로 내 보냈으니 정말 이 일을 어찌 해야 하오리까.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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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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