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와 노동부에 이어 경찰청과 소방방재청까지 채용과정에서 나이를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 권고를 사실상 묵살하는 등 인권위의 위상 자체가 급추락하고 있다.

인권위는 12일 경찰과 소방공무원 채용 때 나이를 제한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관련 규정 개정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은 특수성을 무시한 판단이라며 연령제한 기준을 바꿀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인권위는 권고 사유로 “30세가 넘는 사람이 강한 체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없고, 건강과 체력은 개인이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청은 “범인 검거나 추적 등 위험한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신체 활동이 왕성한 연령대를 채용해야 한다”며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소방방재청도 “위험에 대한 부담과 24시간 긴급 출동에 대비하기 위해 체력은 필수”라며 인권위 권고를 반박했다.

이에 앞서 지난 달 말에도 행정인턴 응시자격에서 나이와 학력 제한이 차별이라는 인권위 권고조치를 노동부와 행정안전부가 공개적으로 묵살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행정기관들을 견제해왔던 독립기관인 인권위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인권위 조직 축소를 비롯해 정부 부처들이 인권위를 대하는 태도가 비뚤어졌다”며 “인권위의 권고는 헌법과 국제인권규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 만큼 뚜렷한 불수용 근거가 없다면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배여진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도 “정부가 인권위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분위기가 각 부처에도 퍼진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 부처들이 자신들의 입장과 상반되는 입장을 갖는다고 인권위 권고를 무조건 반박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아직까지 해당 기관들로부터 직접 답변을 직접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해당 정부부처들이 권고 내용을 신중히 검토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CBS 사회부 최인수 기자 apple@cbs.co.kr / 에이블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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