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이하 윤 후보)는 지난 1월 19일 장애인정책 공약으로 ①시외·고속·광역버스에 저상버스 투입, 장애인 콜택시도 확대 ②주어진 액수 안에서 장애인 스스로 복지 서비스 선택하는 ‘개인예산제’ ③ 4차산업형 인재 육성 및 장애인 고용 기회 확대 ④장애학생의 예술 교육 및 장애예술인 창작 활동 지원 강화 ⑤발달지연·장애 영유아를 위한 국가 지원 강화를 발표했다.

윤 후보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윤석열의 다섯 가지 약속”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정책 공약을 내놓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장애인과 함께 하기는커녕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시혜적 장애인정책에 대한 성찰도 없고, 예산의 구체성도 없는, “윤석열의 깡통 다섯 개 선물세트”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장애인정책은 장애등급제와 장애인거주시설로 대표되는, 시혜와 동정으로 치장된 떡고물이었다. 개인의 욕구와 관계 없이 장애등급에 따라 주는대로 받아먹어야 했고, 선택권이라고는 감옥 같은 거주시설에 살지, 집구석에 쳐박혀 갇혀 지낼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돈 한 푼이 아깝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1842일 광화문역 농성투쟁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탈시설 로드맵을 만들겠다고 공약했지만,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예산을 담보하지 못 한 채, 사실상 공약을 파기하고 말았다. 공약 파기 주범은 기획재정부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도 대통령도 아닌 기획재정부였던 것이다. 그 어떤 정책도 결국 기획재정부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면, 모양만 다른 깡통일 뿐이다.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이후 도입된 “서비스지원종합조사”는 중증장애인의 권리를 기획재정부가 정해둔 실링(ceiling) 예산까지로 잘라버린 대표적인 병폐다. 정부는 최중증장애인의 24시간 지원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필요성을 제도 내에 담지 않고 하루 최고 16시간 까지만 보장한다.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조작된 점수표에 의해 서비스 급여량이 판정되는 상황에서 당사자의 서비스 필요도가 충분히 반영될 리가 없다.

윤 후보가 들고나온 “개인예산제”라는 것도 다양한 서비스가 없고, 급여량 판정 과정에서 당사자의 자기주도성도 없는 국내 상황을 감안하면, 서비스 간 칸막이를 허물어서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논리는 매우 허구적인 발상이다. 가령 식당을 갔는데 메뉴판에 공기밥과 김치만 있다면 선택권을 보장해준다고 해봤자 다른 반찬은 못 먹는 상황인 것이다.

윤 후보가 개인예산제로 선택 가능한 서비스 예시로 나열한 활동지원 서비스 이용, 보조기기 구입, 재활서비스 이용, 교육비용, 교통비용 등에 대해서, 이 중에 필요한 것을 골라 담게 해주는 것 보다, 당사자의 필요와 권리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쌓아나가는 접근이 필요하다.

장애인 노동 정책 역시 중증장애인 노동의 기준에 맞추어진 일자리가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직업훈련 위주의 정책을 해봤자, 고용률은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특히 장애정도에 따른 비장애인구의 비율이 전체 장애 62.7%, 경증 장애 56.7%, 중증 장애 78.2%라는 점을 볼 때, 기업의 수요에 맞춘 직업훈련 정책이 필요한 게 아니라 최중증장애인의 기준에 맞추어진, 최중증장애인이 참여 가능한 일자리를 늘려야 하지만, 윤 후보의 공약 내용에서 최중증장애인의 고용 대책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장애인콜택시의 경우, 차량 도입대수를 늘려도 운영비에 대한 국비 지원 책임을 통해 운행률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실질적인 대기 시간을 줄이기 어렵다. 이처럼 윤 후보의 장애인정책은 현재 장애인정책의 문제점을 개선할 방향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대부분 실효성 없는 정책에 머무를 것이 뻔하다.

장애인 당사자가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의 변화는 예산의 책임 있는 반영 없이 불가능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예산 없이 권리 없다! 장애인권리예산 기획재정부 책임 촉구!”라는 외침으로 매일 아침 8시 혜화역에서 출근 선전전을 진행 중이며, 오늘로 35일차를 맞이한다. 윤 후보를 비롯한 모든 제20대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고한다.

장애인권리를 주어진 예산으로 가두지 말고 기초적 권리를 보장할 최소한의 예산 책임부터 전제하고 장애인 정책을 논하길 촉구한다.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장애인복지가 그 나라의 복지 수준이다.”라는 말만 팔아먹지 말고, 진정으로 국격을 올릴만한 진정성 있는 장애인정책 공약을 들고 “장애인권리예산 기획재정부 책임 촉구” 출근 선전전이 이루어지는 아침 8시 혜화역으로 찾아오길 바란다.

2022. 1. 2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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