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 ‘서울지역장애인소비자연대’(이하 ‘소비자연대’)는 ‘장애인 개인예산 제도 및 정책’을 촉구하기 위해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1인 시위에 돌입하였다. 소비자연대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장애인 ‘개인예산제’를 사람 중심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제도라고 주장하였다.

소비자연대가 하나의 원칙으로 제시한, 장애인이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또는 결정권)’을 가져야한다는 것은 장애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으로부터 유래하는 헌법상의 권리이다.

그 헌법상의 권리가 실현됨에 있어 장애인은 역사적으로 주류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었고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보장받지 못 하였다. 특히나 소위 자기결정권(더 정확하게는 자기결정‘능력’)을 사회적으로 부정당하는 발달장애인을 언급하며 그 필요성을 강조한 것에 대해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소비자연대가 주장하듯 장애인의 삶에 대한 통제권과 자기결정권을 실현하는 방법이 ‘개인예산제’라는 주장은 환상에 불과하며, 이 땅의 장애인들의 고통스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주장에 불과하다.

소비자연대가 주장하는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사람 중심이 아니라 시장 중심적이며, 시장의 사적이윤 추구에 장애인의 권리를 팔아먹는 것이기에 신중한 접근을 권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예산의 문제이다. 한국에서 ‘개인예산제’를 논할 정도로 사회서비스의 종류가 다양하며 서비스 양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가?

개인예산제를 논하면서 ‘개별적 유연화’를 실현하기 위해 서비스의 양과 종류가 충분해야 함은 아마도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의 GDP 대비 장애인복지지출은 OECD 평균(2.11%)의 1/4 수준인 0.61%이며, 현물급여 비율도 OECD 평균(0.40%)의 절반 수준인 0.22%이다.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받는 사회서비스는 사실상 활동지원서비스 하나이며 그마저도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예산제’ 도입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서비스의 종류와 양은 결국 예산의 문제이며, 그 예산은 OECD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두 번째, 장애인의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인 자기선택과 결정의 핵심은 바로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결정’할 수 있도록 장애인에게 권한이 보장되는 것이다.

자기결정의 권한은 장애인서비스 종합판정단계에서 장애인 개인의 필요와 욕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별 자기주도 사정’의 권한을 쟁취하는 것이다. 한정된 예산 칸막이에 막힌 가운데 필요와 욕구가 반영된 자기결정권한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사회서비스 다양화 및 절대적 양의 확대 투쟁과 함께 집중해야 할 것은 장애인당사자의 필요와 욕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서비스 결정 권한이 장애인에게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장애인 개인의 욕구와 필요에 따른 서비스 지원’(개인별 지원)은 기존의 의학적 기준(장애등급)에 의한 획일적 사정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와 욕구를 반영하고 환경을 고려하는 사정이 핵심이다.

그래야만 실제로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했지만 장애등급 3급이라는 이유로 신청조차 하지 못 했던 故송국현,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가 필요한데도 독거가 아니라는 이유로 충분한 서비스를 받지 못 했던 故오지석과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박근혜정부 시절부터 추진되어오던 장애등급제 개편에서 정부가 내세우는 방향은 ‘맞춤형 지원’이며, 이를 서비스종합판정을 통해서 이뤄내겠다는 것이 현재 정부의 계획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장애인예산에서 서비스 종류와 양의 확대, 그리고 예산의 확대 없이 총량에 가둬진 ‘서비스 간 자기주도 조정’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조삼모사를 현실에 맞게 각색해서 설명하면 이는 마치 아침에 3개 받고 저녁은 굶었는데, 아침용 3개를 저녁에도 나눠먹을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다.

세 번째,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개별유연화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서비스 통제권을 주장하는 것은 사적이윤시장에 권리를 무장해체하는 주장이다.

소비자연대는 장애인 개인의 의사와 필요에 따른 서비스 제공이 ‘개별적 유연화’의 핵심이라며, ‘개별유연화 서비스’를 위해 ‘장애인 개인예산’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주장의 근거로 ‘서비스에 대한 통제권이 장애인이 아니라 기관 등 공급자에게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개인예산에 따라 ‘자금이 장애인 개인에게 간다면’ 자신에게 꼭 맞는 서비스를 이용할 권한이 장애인에게 생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개인별 지원의 전제가 어째서 ‘개인예산제’인가? ‘개인예산제’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서비스 전 영역을 대상으로 일정한 사정 절차를 거쳐서 총량이 금액으로 산출되면 장애인 개인이 ‘서비스 간 조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는 시장의 자유가 극대화된 미국 또는 영국 중심의 논쟁이다. 이것이 과연 중증장애인들의 삶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인가? 사회서비스 공공성이 강조되는 스웨덴의 방식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현재 문재인정부의 사회서비스 정책방향은 ‘사회서비스공단’으로 대표되는 공공성 강화 및 공공인프라 확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존 사회서비스가 민간주도의 경쟁적 시장시스템으로 이뤄지면서 많은 폐해를 발생시켰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방향을 잡은 것이다.

사회서비스는 기본적으로 공공재이며, 누구나 평등하게 접근 가능해야 하고, 공급체계를 민간이 아닌 공공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시장주의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개인예산제’는 이러한 문재인정부의 정책방향과도 완전히 상반되는 정책방향이다.

사회서비스는 전자제품, 자동차 등과 같은 상품처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 때까지 반납하거나 기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가 적절하지 않다고 해서 중단할 수 없는 필수적인 것이며, 그렇기에 사회서비스 선택권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권리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민간주도의 시스템, 그리고 공공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자금에 대한 통제권을 장애인이 갖는 것은 자칫 서비스 구매를 위한 장애인끼리의 경쟁만 강화되어 서비스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자립생활운동은 지역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조건들을 만드는 것이었다. 장애인의 존엄하고 능동적인 삶은 비장애인과 차별 없이 적어도 동등하게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

즉 삶의 수준을 구체적으로 높일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존엄한 삶의 필수 조건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소비자연대의 ‘개인예산제’ 도입 주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서비스 인프라 상황에서 선택권 및 통제권만 장애인이 가져옴으로 인해 시장경쟁만 강화되고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기에 우려스럽다. 개인예산제는 환상이다!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주장해야 할 것은 서비스 종류와 양을 확대하고 그에 따른 예산을 확대하는 것이며, ‘서비스별 자기주도 사정’에 따라 장애인의 필요와 욕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활동지원서비스를 포함하여 장애인의 다양한 필요에 따른 사회서비스는 우리의 소중한 권리이며, 우리는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2017년 9월 1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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