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장애인계 최대 이슈는 장애등급제 폐지이다.

표면적으로는 인권과 철학을 언급하지만, 그 동안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의 서비스를 받아 온 장애인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장애등급제(이하 등급제)가 폐지되면 자신이 받아 온 서비스의 양이 줄어들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장애인단체들은 단체들대로 등급제 폐지로 인해 소속 유형별·기능별 장애인의 서비스 양이 어떻게 될 것인가 골몰하고 있으며, 정부는 정부대로 서비스 양을 급격하게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서비스 배분의 합리성과 전달체계의 효율성만을 원칙으로 한 등급제 폐지 후의 대안을 장애인계가 받아들일 지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동안 각 지자체의 특화된 서비스 외에 전국 단위의 장애인 관련 서비스는 중증(1,2,3급)과 경증(4,5,6급)으로 구분하여 제공되었거나, 최중증(1,2급), 중증(3,4급), 경증(5,6급)을 구분하여 제공되었으나, 2007년도에 시행된 활동보조 서비스(1급)는 지원규모도 큰데다 확보된 예산의 부족으로 지원 기준이 종전과는 달리 더 세분화되었다.

이 같은 지원 기준에서 제외 된 등급의 장애인들이 반발하는 과정에서 활동보조 서비스의 확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등급제 폐지가 논의되었고 확산되었다.

이런 논의 과정에서, 등급제 폐지 후의 대안도 없이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의 여·야 후보들의 선거공약이었고, 현 정부가 2016년 말에 중, 경증 가릴 것 없이 전면 폐지한다고 발표했다하여 장애인계는 현 상황을 제3자인 양 수수방관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는 돌팔매질을 각오하고 장애인계에게는 등급제 폐지 후의 대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을 촉구하고 정부에게는 형식적인 시한에 쫓겨 등급제 폐지 후의 대안에 대한 장애인계의 합의 없이 등급제 폐지를 추진하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물론 장애인계가 등급제 폐지 후의 대안을 만들어야 할 주체도 아니며 의무도 없지만, 내부 논의 과정에서 유형별, 기능별 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고, 서비스 총량에 대한 우선적 배분이나 효율적 전달체계 수립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며, 최소한 장애인계의 대안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만들 수 있고, 만들어진 가이드라인에 대한 장애인계의 내부 반발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할 것이다.

등급제를 완전히 폐지할 경우 첫째, 중증과 경증으로 구분. 중증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던 장애인 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장애인연금, 장애인활동보조, 고용장려금, 중증장애인 고용 더블카운트제, 우선구매제도 등 우리나라 장애인제도는 대부분 중증장애인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설계 및 시행되어 왔는데, 국가나 사회는 이를 허물고 어떻게 중증장애인을 보호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만약 이런 논의나 보완 없이 무작정 등급제를 폐지한다면 목소리 큰 장애인의 욕구 중심으로 서비스가 편중되고, 욕구마저도 표현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 입장에서 보면 등급제 폐지는 제한된 재화와 서비스를 놓고 보다 많은 서비스를 차지하려 다투는 무한경쟁의 불과하며, 사회가 장애인을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철학적 단초를 장애인계 스스로 잘라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둘째, 중증과 경증으로 구분, 중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현 감면할인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전화, 휴대폰 등의 통신요금, 항공료 철도 지하철 등의 교통요금, 전기요금, 도시가스, 고궁 이용료, 테마파크, 놀이기구 등 우리나라의 장애인 대상 감면할인제도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막론하고 등급제를 바탕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장애인의 소득 보전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법적인 의무 이행이 아닌, 회사의 내규나 장애인의 요구에 의해 정착된 민간부문의 장애인 감면할인제도는 등급제 폐지에도 불구하고 존치될 것인지, 어떻게 시행될 것인지 우려스럽다.

좋든 싫든, 자의든 타의든 우리나라 대부분의 장애인 서비스의 지원 기준이 되어 온 현 장애등급제는 우리나라 장애인 서비스의 양적 부족에도 불구하고 경증장애인보다 중증장애인에게 더 많은 혜택과 권리가 돌아가도록 하는 배분의 원칙적 지지선이 되어 왔고, 장애인 당사자들도 등급간 이해와 양보를 바탕으로 자기 욕구를 어느 정도 자제하는데 일조케 해 온 점에서 볼 때, 등급제의 순기능도 있다 할 것이다.

이 같은 묵시적인 관행 속에서 우리나라 장애인제도의 근간이 되어 온 등급제가 일본을 제외한 외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갖가지 철학적 사유로 등급제 폐지 후의 대안에 대한 논의나 장애인계 합의 없이 폐지부터 하자는 식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등급제를 폐지한다 해서 엄연히 존재하는 장애인간 혹은 장애정도 간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미래를 급격히 바꿀 수도 있는 중차대한 사안을 형식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가치만으로 접근하여 밀어부친다면, 폐지 후의 대혼란은 명약관화하며 어떤 대안이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유형간, 등급간 갈등을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

등급제와 관련된 인간 중심의 철학적 가치를 간과한 측면은 있으나, 장애인계가 막연하게 미래지향적이고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 등급제 폐지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때는 늦은 감은 있으나 이제부터라도 등급제 폐지 후의 대안 마련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기를 바라는 충정임을 널리 밝히는 바이다.

2015년 4월 3일

(사)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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