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격/ 도둑 취임/ MB 하수인’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자격 검증을 위한 공개질의서에 이렇게 답했어야 했다.

- 인권단체의 공개질의서 묵살은 자질 부족을 증명하는 또 다른 예

우리 인권단체들은 지난 20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취임식 자리에서 스스로 위원장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기를 요구하며 공개질의서를 전달했습니다. 답변 시한을 넘긴 지금까지도 현병철 씨는 답변을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권단체들이 제시했던 공개질의서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이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인권감수성에 대한 질문, 당면한 인권현실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조직의 존재 이유와 독립성의 의미 등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우리가 밝힌 <국가인권위원장 자격 가이드라인>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국가인권위원장은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원활하게 협력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현병철 씨가 이 공개질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국가인권위원장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일입니다. 민감한 인권의제에 대한 입장 표명을 회피하는 사람이 국가권력에 맞서 인권을 옹호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현병철 씨가 이 인권단체의 공개질의서를 묵살한 것은 국가인권위원장으로서의 자질 부족을 증명하는 또 다른 예가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 인권단체들은 현병철 씨가 스스로 사퇴할 것을 거듭 촉구하면서, 자격있는 국가인권위원장이라면 어떻게 답변했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분명히 전하고자 합니다.

1. 현병철 씨, 인권에 대한 기본 지식이라도 있는가?

1-1. 민법 전공자로서 민법과 인권의 가치가 상충되는 예를 꼽아보라는 질문에 대해;

☞ 일반적으로 법률은 공법과 민법으로 구분됩니다. 공법의 상대 개념으로서 민법의 출발은 소유권, 계약의 자유만을 절대적으로 옹호하는 체계였습니다. 근대 민법의 기본 원리인 1)소유권 절대의 원칙 2)사적 자치의 원칙 3)과실 책임의 원칙을 봐도 알 수 있듯, 민법은 가진 자의 자유만을 옹호함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의 빈곤과 억압을 외면하는 불평등한 체계였습니다. 인권의 역사는 바로 이 소유권 절대주의를 기본으로 한 민법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업주와의 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 채권자와의 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채무자,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자녀 등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라는 요구들이 증폭되자, 비로소 민법의 기본 원리에는 수정이 가해지게 됩니다. 1)소유권 절대의 원칙⇒소유권 상대의 원칙, 2)사적 자치의 원칙⇒계약 공정의 원칙, 3)과실 책임의 원칙⇒무과실 책임의 원칙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불공정한 계약은 원천 무효이고, 산업재해의 예방과 보상 제도처럼 비록 사업주의 고의적 과실이 없다 하더라도 작업과정에서 일어난 노동자의 사고나 질병에 사업주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변화입니다. 현실의 불공평을 시정하기 위한 사회법들이 등장하고 그 영향으로 민법도 일정 부분 변화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 개별 법률로서 <민법>도 있습니다. 한국 민법에는 수많은 독소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몇 차례 대대적 개정을 통해 중대한 변화가 여럿 이루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2005년 민법을 대폭 손질하면서 자녀는 친권자에 ‘복종한다’는 무시무시한 조항이 수정됐고, 부모 이혼시 면접교섭권을 부모 일방이 아니라 자녀에게도 보장하기 시작했지요. 여성을 남성의 아래에 두었던 호주제와 여성의 재혼금지기간이 폐지됐고 동성동본 금혼 조항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민법에는 여전히 인권과 충돌하는 조항들이 남아있고 새로 삽입되기도 했습니다. 지적장애나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차이를 묵살하고 행위능력을 일방적으로 박탈하고 있는 치산제도(금치산/한정치산), ‘이혼=가족 붕괴’라는 전제하에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있는 이혼숙려제도, 아버지의 성과 본에 따르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부성주의, 故 최진실 씨 죽음 이후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친권 자동부활 제도 등이 대표적입니다.

☞ 현병철 씨가 민법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이 민법이 가진 문제점을 어떻게 인식하고 인권과 접목시켜 왔는지가 참으로 궁금한데, 그간 발표해온 연구물에 관련 내용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1-2. 퇴거 위기에 놓인 세입자 가족에게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와 대책에 관한 질문에 대해;

초등학교 5학년인 동수는 할머니와 초등학교 2학년 동생과 함께 셋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동수의 어머니는 동수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몇 해 전 직장에서 해고된 뒤 전국을 떠돌며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정말 가끔씩 생활비를 부쳐주시지만 그걸로는 세 식구 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할머니가 근처 시장 노점에서 국수를 팔아서 세 식구가 겨우 먹고 삽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동수가 살고 있는 동네에 재개발을 한다면서 집주인이 이달 말까지 방을 비어달라고 합니다. 시장도 철거된다고 하고요. 동수네는 모아둔 돈도 없고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동수네 가족이 원한다면 ‘살던 집에서 계속 살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주거권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는 ‘점유의 법적 안정성’으로서, 이는 주거권에 관한 국제인권기준이 연거푸 강조하고 있는 핵심입니다. 집주인인지 세입자인지 관계없이,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살고 있던 집에서 안정적인 삶을 일구어나갈 권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집은 공간(삶터)일 뿐만 아니라 시간(추억과 오늘과 꿈이 함께 존재하는)이기도 합니다. 집은 친밀성과 관계와 문화가 깃들여진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서 살던 집을 바꾸도록 요구하는 일에는 최대한 신중해야 하고 정당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집이 갖는 의미를 충분히 공감할 때, 집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무너져버리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이해할 때, 동수네 가족에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와 대책도 나올 수 있습니다.

동수네는 충분하고 포괄적인 ‘재정착’ 대책을 받아들이겠다고 스스로 결정할 때까지 내쫓기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개발의 목표와 과정, 속도, 결과에 대해 세입자인 동수네도 참여해서 의견을 표명할 수 있어야 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재정착이 이루어지는 과정 동안 동수네의 생활권과 교육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도 물론입니다. 적어도 '개발‘ 사업 이후 생활 조건이나 수준이 내려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재정착하지 못하고 부득이하게 이주를 해야 하는 경우에도 주거 수준이나 생계수단이 저하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노점과 같은 지역성 짙은 생계수단에 의지하고 있는 동수네의 경우에는 이주 이후에도 생계수단이 계속 확보되고 있는지 엄밀히 따져봐야 합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용산참사 현장, 전 국토 곳곳 재개발현장에서 울부짖고 있는 세입자들의 목소리에 직접 귀를 기울여보는 일입니다. 인권활동가들이 공들여 번역한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의 <개발로 인한 퇴거와 이주에 관한 기본 원칙과 지침들>(인권운동사랑방 자료실 참조)도 꼭 읽어보셔야 합니다.

1-3. “차이를 인정하면 차별 없는 사회가 열립니다.” vs. “차이가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 두 문장을 이용해 차이와 차별의 관계를 설명해보라는 질문에 대해;

☞ 일반적으로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편견과 고정관념 때문에 차별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어떤 차이는 수용되는 반면 어떤 차이는 차별로 연결될까요? 위아래가 있는 차이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 차이는 자연적인 것들인가요, 아니면 역사적?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일까요?

☞ 가만히 살펴보면, 차이 자체가 차별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권력(특정한 권력관계나 권력자의 정치적 목표 등)이 차이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고 그 차이에 위계를 만들어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근대에 들어서서야 획일적인 노동력을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이라는 집단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나치즘에 의해 유대교라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유대인’이라는 민족으로 구분되기 시작했고 인종차별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여성과 남성처럼 자연적인 차이라고 생각되는 것들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차이가 얼마나 사회적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차이를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내고 고정시키는 권력까지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1-4. “한국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성차별, 연령차별, 장애차별은 무엇입니까?”라는 유엔인권기구의 질문에 어떻게 답하겠느냐는 질문, 그리고 현병철 씨가 재직하고 있던 한양대학교 내의 인권문제를 말해보라는 질문에 대해;

☞ 이런 질문에 대답하려면 문서에서 얻은 지식과 주어들은 말로는 역부족일 것입니다. 답은 ‘인권현장’에 있습니다. 관련 국제인권조약과 국내법을 들춰보는 일, 관련 실태조사보고서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권현장에서 당사자들의 삶을 몸소 살펴보고 목소리를 듣는 일입니다.

☞ 그런데 현병철 씨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이들의 삶과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여본 적이나 있는지 의문입니다. 한양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한달 평균 노동시간과 임금이 얼마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들의 쉼터는 어디에 있습니까? 한양대학교의 평균 등록금 인상률은 어떻게 됩니까? 등록금을 내지 못해 휴학하거나 빚을 내는 재학생 수는 몇 명입니까?

또 다른 예로 당장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11층만 하더라도 탈시설과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시설 장애인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취임 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그 현장을 한번이라도 방문해본 적이 있는지요? 바로 그곳에 답이 있습니다.

2. 현병철 씨, 정권에 맞서 인권을 지킬 용기가 있는가?

2-1. 국가인권위원회가 촛불집회 과잉진압, 집시법 개정안, 비정규직법 개정안에 대해 내놓은 의견에 대한 견해, 최근의 언론의 자유 후퇴, 용산참사 관련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검찰 태도, 농성중인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에 대한 단전·단수·강제해산 조치 등에 관한 견해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대해;

☞ 국가인권위원회는 정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인권을 위해 존재하는 기구입니다. 진행중인 인권침해 사안이나 인권을 심각하게 후퇴시킬 수 있는 입법·행정·사법 조치들에 대해 준엄한 인권의 목소리로 꾸짖고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인권침해가 발생한 뒤 책상에 앉아 판단과 대책을 내놓는 기구로 안주하지 않고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현장에서 인권침해를 중단시키기 위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국가인권위원회는 존재 의의를 인정받고 시민으로부터 격려와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앞서 질문한 사안들은 국가폭력으로 인해 다수의 피해자가 이미 발생했거나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사안들입니다. 경찰, 검찰, 노동부 등 거대한 골리앗이 정권과 기업 편에 서서 휘두르는 뭇매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다윗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짓밟고 정부를 비판할 자유마저도 빼앗은 사안들인 것입니다. ‘펜을 꺾는 자, 책을 불태우는 자, 기어코 사람마저 불태우리라’는 진실을 떠오르게 만드는 위험한 사안들입니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는 정권의 경비견이 아니라 매서운 감시견이 되어 대정부 발언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 현병철 씨의 조직 관리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모르겠으나, 정권에 맞설 용기가 아니라 분수에 넘치는 자리를 탐하는 만용을 가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취임식 당일 국가인권위원회 바로 건물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침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을 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흔드는 대통령의 발언을 얌전히 듣고만 있었을 때, 쌍용차 사태와 관련하여 음식물과 물이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원’만 할 뿐 직접 음식물과 물을 들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을 때, 인권 기준이 아니라 고작 경찰규정을 언급하는 정도로 경찰의 살인 무기 사용의 길을 재차 터주었을 때, 노동자들의 저항을 촉발한 근본 책임을 더불어 묻지 않았을 때, 현병철 씨의 용기 없음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2-2.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폐지되어야 할 국가보안법을 옹호하는 제성호 씨의 인권대사 직 수행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해;

☞ 현병철 씨는 취임사를 통해 “국제인권법에서 출발한 국가인권기구로서, 또 모범적인 국가인권기구로서의 국제적 위상과 책임에 걸맞게 국제적으로 승인되고 약속된 국제인권규범의 국내 이행 또한 중요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현 씨가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 국제인권기준을 무시하는 인사가 현 정권의 인권대사 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한 정치적 효과를 지닙니다. 국제인권기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인사가 ‘인권’대사 직을 수행하는 것은 국제인권기준의 국내 이행을 더욱 어렵고 더디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국가인권위원회는 명확히 짚어야 하고 교체를 요구해야 합니다.

3. 현병철 씨,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 의의를 알고 수호할 수 있는가?

3-1. 국민권익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차이에 대해;

☞ 국민권익위원회가 ‘신문고’라면, 국가인권위원회는 ‘권력에 대한 감시견’이자 인권기준을 수립하고 대책을 내어놓는 ‘준 사법?입법기관’입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행정부 안의 ‘AS센터’라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해 입법·사법·행정 등 모든 국가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통제장치’입니다.

☞ 국무총리 산하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008년 이명박 정권에 의해 구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 세 조직이 무리하게 통합되어 출발한 기관입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직자 부패 방지, 불합리한 행정절차에 대한 민원처리, 부당한 행정처분에 대한 심판을 중심으로 하는 기관으로서, 인권 관련 업무를 일부 수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민원’은 피민원기관에 대한 사법처리를 전제로 하지 않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국민권익위원회는 행정부의 잘못을 시정하기 위한 기관인데도 국무총리 산하에 있음으로 인해 행정부의 잘못을 견제할 수 없는 치명적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이 생깁니다. 지난해 6월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을 향해 경찰이 돌 등을 던지는 것을 본 한 네티즌이 서울경찰청에 민원을 제기하려 하자 경찰이 민원 접수를 거부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에 네티즌이 이 사실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넣자, 국민권익위원회는 ‘서울경찰청에 문의할 사항’이라는 기가 막힌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 참고 : 다음 아고라 정치토론방 게시글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1970680)

☞ 반면 국가인권위원회는 설립 취지부터 국민권익위원회와 다릅니다. 국가(정부?공공기관 포함)에 의한 인권침해와 국가?사인에 의한 차별 사건에 대한 조사와 구제 기능, 공무원·시민을 상대로 한 인권교육과 홍보 기능, 인권정책 기능, 인권 지침의 선포 기능, 인권현황에 대한 실태조사 기능, 국내외 인권협력 기능 등을 아울러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피해자나 제3자의 진정이 없더라도 주요 인권사안에 대한 직권조사에 나설 수 있고 긴급구제조치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인권침해가 인정될 경우, 책임자를 고발하고 소속기관에 징계를 권고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인권위원회는 맡고 있는 역할에서나 조사?시정 권한에서도 국민권익위원회와 큰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 이처럼 국민권익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는 설치 목적도, 업무의 성격도 다릅니다. 그럼에도 행정안전부가 국가인권위원회 조직규모를 축소하면서 국민권익위원회와의 업무 중복을 근거로 내세운 것은 무지몽매한 일일 뿐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부러 사실을 오도하는 악의적인 태도였습니다.

*<참고> 국가인권기구의 존재 의의와 특성

(1) 국가의 인권 보장 책무를 더 잘 이행하기 위해 내부에 마련한 반성?견제 장치

(2) 기존 ‘국가’로부터 지위와 권한이 독립된 국가기구

(3) 국내법에 따라 설치되는 기구이면서도 국제인권규범의 국내화를 이끌어내는 준국제기구

(4) 신속하고 접근이 쉽고 저렴한, 준사법적 권리 회복 기구

(5) 현행법상 명백한 범죄행위로 보기 힘든 ‘회색영역의 인권침해’에도 개입하여 인권의 논리를 확장하는 기구

(6) 교육과 홍보 등을 통해 사회의 인권의식 향상을 이끌어내는 기구

3-2. 국가인권위원회 조직 축소를 통한 독립성 훼손, ‘소속 없는 국가기구는 위헌’이라는 트집에 대한 입장에 대해;

☞ 국가는 인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갖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는 주범입니다. 이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 내부에 둔 일종의 반성과 견제 장치가 바로 국가인권위원회입니다. 입법·사법·행정부를 향해 날선 비판을 하라고 만든 것이 국가인권위원회입니다. 게다가 실제 국가인권위원회 출범 이후 접수된 진정사건의 80% 이상이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였습니다. 따라서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권력을 향한 매서운 감시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인권기준을 제시하고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의 독립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인권침해 주범의 발 아래 납작 엎드린 신하가 국가권력을 견제하기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특별검사제도 등 소속 없는 국가기관은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직 축소는 컹컹컹 사납게 짖어야 할 감시견을 짖지도 못할 애완견으로 바꾸려는 속셈에서 비롯됐습니다. 또한 무자격자인 현병철 씨를 국가인권위원장에 앉히고 특정 업무 내용까지 대통령이 지시하는 일은 그 애완견을 다시 충실한 정권의 경비견으로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현병철 씨가 취임사에서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 원칙을 확고하게 지켜나가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4. 현병철 씨, 인권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지 않았는가?

우리 인권단체들은 지난 20일 전달한 공개질의서의 첫 질문으로 ‘초등학교에서 특강을 의뢰받았다고 가정하고 인권의 의미를 쉽게 소개해 보라’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인권의 의미를 알기 쉽게 전달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내공이 필요한 일입니다. 국가인권위원장으로서 어린이들과 교감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것은 화려한 언변이 아닙니다. 발언하는 사람의 존재가 지닌 무게와 청중인 어린이의 인권에 다가가려는 마음, 이 두 가지가 필수적입니다. 인권의 가치를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왜 존재하는지를 자신의 삶을 통해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인권을 말할 때, 그 말은 어린이들을 매료시키는 울림을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현병철 씨에게서 그런 울림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인권시민사회의 반대에도 경찰을 방패막이 삼아 도둑취임을 강행한 것 자체가 인권의 가치 훼손입니다.

국가인권위원장 자리를 스스로 물러난다면, 그것이 인권 실현에 기여하는 당신의 첫 행동이 될 것입니다.

2009년 7월 27일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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