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을 원하는 중증장애인 100명이 오세훈 서울시장님께 드리는 편지

2009년 6월 17일

자립생활을 원하는 중중장애인 100인 일동

- 고병재, 김기정, 김남기, 김도연, 김동림, 김동수, 김문주, 김복자, 김선심, 김성진, 김용남, 김운호, 김정, 김정선, 김진수, 김진우, 김탄진, 김태일, 김현수, 노백현, 모경훈, 목미정, 문명동, 문애린, 박경미, 박동수, 박민호, 박정혁, 방상연, 방수현, 배덕민, 서기현, 서성남, 서은미, 성승욱, 송병준, 신경수, 신인기, 안신일, 양영희, 양해윤, 오명진, 오영철, 오재석, 우동민, 유명자, 윤수미, 이규식, 이기훈, 이동진, 이라나, 이미자, 이미정, 이승연, 이영애, 이정신, 이정열, 이제희, 이준수, 이준애, 이태규, 이홍철, 이흥기, 임영채, 임영희, 임은영, 임창욱, 임형찬, 장대영, 정대훈, 정상혁, 정은주, 정지숙, 정진희, 정헌민, 정희선, 조건수, 조병찬, 조은경, 조재현, 조한나, 주기옥, 지영, 최강민, 최송환, 최우준, 최진영, 하기돈, 하상윤, 한규선, 한승철, 허정, 홍미숙, 홍석준, 홍성호, 홍혜경, 황인준, 황인현, 황정용, 황철호 (이상 가나다 순 100인)

오세훈 서울시장님께

저희는 시설생활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얼마 전 석암 베데스다 요양원을 떠나 온 사람들입니다. 나오긴 했지만 집이 없어서 마로니에 공원 한켠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노숙한 지도 벌써 2주가 되었네요.

저희는 작년에 시장님께서 탈시설과 자립생활에 대한 대책을 세우겠다고 하신 약속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내년 6월중에 한번 더 만나 논의하자고 했던 그 약속을 기억합니다. 그 약속에 저희의 삶 전부를 걸고 시설에서 나왔습니다. 시장님께서 자립생활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저희는 노숙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설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기로 모두 마음먹고 나왔습니다. 장애인 몇 명의 귀찮은 요구라 생각하지 마시고, 저희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진심으로 고민해주십시오. 우리가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을 하니, 종로구청 직원들은 노숙인 쉼터로 가거나 장애인시설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장애인이 자립하겠다고 시설에서 나왔는데 노숙하거나 다시 시설로 돌아가야 한다니......저희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저희는 자립을 원합니다. 저희들은 정말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시설에서 나왔습니다.

탈시설 자립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은 저희만이 아닙니다. 함께 편지를 작성한 중증장애인 100명, 수십년의 세월을 시설에서 집안에서만 갇혀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울시를 장애인이 행복한 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히신 시장님의 의지가 꼭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원하지 않는 시설생활을 수인(囚人)처럼 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늙으신 부모님 밑에서 가족의 짐으로 고통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기억해 주십시오. 바꿔주십시오.

장애인의 행복은 추상적인 패러다임으로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자립생활을 원하는 장애인들에게 시급한 주거의 문제가 해결되고, 시설에서 나오고자 하는 장애인에 대한 계획이 수립되고, 장애정도에 따라 필요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만큼 활동보조서비스가 제공되어야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생존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부나 어느 지자체나 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하면 예산부족으로 변명합니다. 수십년의 세월을 기다려온 중증장애인들의 삶 앞에서 언제나 기다리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님, 사회적 약자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 사회 인권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며, 그들을 소외하고 배제하는 사회라면 우리는 더 이상 장애인의 인권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라는 어느 신부는 인종차별에 저항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주인이 식탁에서 던져 주는 자선의 빵조각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완전한 권리의 메뉴를 원한다.' 지금 우리 장애인의 현실이 이런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보호와 자선이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권리는 덮어지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진정으로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서 시장님께서 이 문제를 빠르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9년 6월 17일

석암 베데스다 요양원에서 나온 8명을 포함해

지역사회에서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는

중증장애인 100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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