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과 갈등을 극복하고 장애인 복지사회를 만들자

이번에 제24회 장애인부모대회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24년 전에는 우리나라에 장애인 복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정부에 장애인 문제를 담당하는 전담부서조차 존재하지 않아서 장애자녀를 둔 우리 부모들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하소연할 곳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장애인복지 암흑기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 장애인 부모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시작한 행사가 이 부모대회입니다.

우리는 암흑기를 지나 여명기에 들어섰습니다. 우리도 장애인복지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장애인 복지사회’로 가는 길은 아직 멀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총 예산 대비 장애인복지 예산의 규모는 복지선진국의 1/8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국가의 장애인 복지예산의 규모가 크게 신장되지 않으면 장애인 복지사회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년간 경제성장이 위축되어 왔습니다. 청년실업자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수준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간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해 왔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평가도 받습니다. 이 ‘한강의 기적’은 사회복지를 방치한 불균형 경제 성장이었습니다. 이제는 낙후된 사회복지를 향상시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사회복지의 신장이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행정부 관료들과 의회의 정치인들도 이러한 현실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노력하면 장애인복지 예산규모가 매년 크게 신장될 것이라 믿습니다.

사회복지는 문화입니다. 우리 사회는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이웃사랑 정신이 크게 부족합니다. 이웃사랑 정신의 사회풍토는 사회복지의 기반입니다. 더구나 불신과 갈등, 분열과 대립의 사회풍토 속에서는 온전한 사회복지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인심이 메마르고 경쟁만이 존재하는 삭막한 사회에서는 사회적 약자일수록 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현재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불신과 갈등, 분열과 대립의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풍토에서는 온전한 사회복지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부예산 집행의 효율성도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 치료해야 할 사회적 질병입니다만, 쉽게 치유되기 어려운 병입니다.

그러나 이 질병과 관련된 몇 가지 구체적 증상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데모 만능주의’정신입니다.

우리사회에는 공공기관을 상대로 일할 때 ‘데모를 하면 안 될 일도 되고, 데모를 안 하면 될 일도 안 된다’고 하는 믿음이 보편화 ??오래되었으며, 아직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데모 현장마다 나타나는 데모 전문가도 있으며, 가두시위, 불법점거농성, 기자회견 등을 이벤트 사업으로 치밀하게 기획하는 데모 전문가도 있습니다.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데모를 통하여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모 전문가도 있습니다. 이러한 ‘데모 만능주의’풍토의 조성에는 정치·사회적 영향을 무시할 수 없으나, 공직자들의 업무태도가 직접적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직자들의 행정편의주의적, 탁상적, 소극적 업무처리 관행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원인이 합리적, 합법적 절차를 통하여 자기의 요구사항을 공직자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고 공직자가 민원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적극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서 반면에 불법적 절차를 통한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는 행정을 지속한다면 ‘데모 만능주의’는 사라질 것입니다.

한국장애인부모회는 ‘데모 만능주의’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앞장서겠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절차를 통한 우리의 합리적 주장이 불합리하게 무시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정치인들과 행정부, 사법부의 공직자들이 적극적으로 노력해 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데모 만능주의’를 불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사회의 ‘불신과 갈등, 분열과 대립’의 고질병을 치유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사랑 정신을 우리사회에 확산시키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우리사회의 ‘불신과 갈등’의 고질병을 치유하여 건강한 장애인 복지사회를 만듭시다.

2008년 9월 29일

한국장애인부모회 회장 이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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