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이여 오라! 지난 4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장애인차별금지법 설명회에는 45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에이블뉴스

‘시혜에서 인권으로’ 장애인 인권보장의 양대 축이라 불리는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이하 권리협약)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이 드디어 세상과 만납니다. 장차법이 조금 빨라서 오는 11일부터 시행됩니다. 바로 다음 주 금요일이랍니다. 가슴이 떨려오지 않으시나요?

권리협약은 지난 4월 3일자로 20번째 비준국이 나와서 30일 뒤인 5월 3일부터 발효가 됩니다. 물론 선택의정서도 함께 발효됩니다. 선택의정서는 10개국 이상 비준하면 발효 조건이 갖춰지는데, 현재 13개국이 비준하면서 권리협약과 함께 세상과 만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장애인 입장에서는 인권을 확보할 수 있는 두 가지 쓸만한 무기를 갖게 되는 셈인데요. 꼭 아셔야할 것은 권리협약도 국내에서 장차법과 똑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는 점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권리협약은 “또 하나의 장차법”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습니다. 바로 어제 진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설명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최경숙 상임위원이 이 표현을 썼는데, 제가 옮겨봅니다.

장차법과 권리협약은 그 목적과 방향이 유사하면서도 서로 다른 면도 존재합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장차법은 장애인 차별금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장애인 정책 전반에 대한 방향성까지 제시해주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장애인권리협약에는 장애인 정책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정책의 방향성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팀장이 된 조형석씨는 지난해 4월 12일 열린 한 토론회에서 “장차법은 권리협약의 국내적 이행에 있어 중요한 핵심 법 규범으로 작용할 것이며, 권리협약은 국가의 장애인 정책 전반에 걸쳐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며 이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즉 이 둘은 서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떠한 부분이 같고 다른지 감이 잘 안오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립니다. 당시 본지 주원희 기자가 정리해 보도했던 장차법과 권리협약의 닮은 듯 다른 특징을 다시 옮겨보겠습니다.

장차법과 권리협약, 닮은 듯 다른 특징

장애인권리협약에도 자유권적 성격과 차별금지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장차법과 대부분 중첩되어 있으나, 차별금지에 관한 세부내용은 장차법이 좀 더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두 법안이 담고 있는 세부 내용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①장애의 개념=먼저 권리협약에서는 ‘장애’에 대해서, 장차법에서는 ‘장애인’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다. 내용적 측면에서는 두 안이 거의 유사하다. 먼저 권리협약은 장애인의 개념을 ‘장기간의 신체적, 정신적, 지적 또는 감각적인 소상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했으며, 장차법은 장애의 개념을 ‘신체적·정신적 소상 또는 기능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②차별의 개념=차별의 개념은 어떻게 다를까? 먼저 권리협약은 각 분야별로 장애인에 대한 당사국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차별에 관해서는 제2조와 제5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차별의 범주는 직접차별, 간접차별, 합리적 편의제공의 거부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장차법에서는 제4조에서 직접차별, 간접차별, 정당한 편의제공거부, 광고에 의한 차별로 나누고 있다. 즉, 두 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차별의 대상과 범위는 매우 흡사하다.

③편의제공의 의무=장애인에 대한 편의제공 의무에 대해 권리협약은 ‘합리적 편의(제2조)’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장차법은 ‘정당한 편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권리협약의 ‘합리적 편의’는 상황별로 필요한 곳에 과도한 부담 없이 적절하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며, 장차법의 ‘정당한 편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경우 차별로 판단하는 것이다.

장차법에서 ‘정당한 사유’는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 등을 의미하므로 이 같은 사정이 있는 경우는 차별이 아니다. 권리협약의 ‘과도한 부담’ 역시 부담정도를 합리적 수준에서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장차법처럼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는 제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협약과 법이 모두 과도한 부담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지는 않다.

④차별금지의 영역=차별을 금지해야 할 대상영역에서 권리협약과 장차법은 거의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장차법은 모두 6개영역으로 지정했으나,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권리협약의 대상영역을 다 포함하고 있다. 장애여성 및 장애아동에 관하여 별도의 장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흡사하다.

장차법은 ‘차별금지’에 중점을 두는 반면 권리협약은 인권전반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장차법은 가족·가정·복지시설에서의 차별금지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뛴다. 반면 권리협약은 생명권(제10조), 개인의 자유와 안전(제14조), 고문 또는 잔혹, 비인도적 대우로부터의 자유(제15조), 사생활 존중(제 22조) 등의 규정을 별도로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장차법에 비해 권리협약의 영역이 좀 더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다.

⑤권리구제 방안=장애인권리협약은 선택의정서상의 개인통보 및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조사권을 통해 규범력을 행사하는 반면 장차법은 권고 및 시정명령, 형벌과 벌금 등을 통해 차별금지에 대한 시정조치를 실현하게 된다.

이상 장차법과 권리협약에 대해 맛을 좀 봤는데요. 장차법과 권리협약만 있으면 장애인 문제가 다 풀릴 수 있을 것 같고, 우리나라도 정말 많이 좋아졌다라고 잠시 생각하신 분들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가 않은 같습니다.

장애인당사자의 힘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당사자들의 길거리 투쟁으로 만들어진 법입니다. ⓒ에이블뉴스

장차법 단계적 적용은 진정성 담보돼야 만이…

좀 현실적인 얘기를 꺼내보면, 장차법의 경우 오는 11일부터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과연 이 법이 얼마나 제대로 발효될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벌써부터 사건 하나가 터졌습니다. 지난 1일 시행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기 전, 사법·행정절차와 관련한 정당한 편의제공 범위가 대부분 삭제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3일이 지나서야 장애인계에서 파악하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데요. 조항으로만 치자면 7개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입니다. 정부의 마무리 작업 과정에는 장애인계가 전혀 참여할 수 없는 구조라서 장애인계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장차법 시행령은 모법에서 정하고 있는 정당한 편의제공의 범위를 설정하고, 단계적 시행계획을 정리한 것이라고 보면 되는데요. 사실 ‘고용’(1절), ‘교육’(2절),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3절), ‘모·부성권·성 등’(5절), ‘가족·가정·복지시설, 건강권 등’(6절)에서 각각 명시하고 있는 ‘정당한 편의제공’ 시행계획을 보면, 대부분 법의 적용이 2009년 아니면 2010년부터 시작됩니다.

시작이 이렇다는 것이고요. 규모에 따라서 적용되는 시점은 더 늦어질 수 있습니다. 고용분야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상시 300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2009년 4월 11일부터 법의 적용을 받게 되고, 상시 100명 이상 30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은 2011년 4월 11일부터 적용을 받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이 많이 일하고 있는 상시 30명 이상 100명 미만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은 오는 2013년 4월 11일부터야 적용될 수 있습니다.

사실상 곧 바로 적용되는 분야가 바로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4절)이었는데, 이 부분의 시행령이 사실상 거의 삭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법무부에서는 법의 구조상에서 충돌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만,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를 이제야 발견한 것인지 의문이 남습니다.

어쨌든 오는 11일부터 법이 시행된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할 것 같습니다. 단계적 시행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장차법이 범죄자를 양산하는 법이 돼서는 안 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갈라놓는 법이 돼서도 절대 안 된다는 것은 너무 분명합니다. 다만 장차법을 준수하고자 하는 진정성과 진지함이 담보될 때 말입니다.

18대 국회 첫 과제는 권리협약 비준안 처리

이제 권리협약으로 화제를 돌려보겠습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떠오릅니다. 저 멀리 미국 뉴욕 유엔본부까지 날아가서 권리협약에 서명을 하던 유 전 장관. 서명의 의미는 바로 권리협약을 비준하겠다는 약속이었고, 실제 당시 보건복지부는 보도자료를 내서 비준안이 상반기 중 국회에서 처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유 장관의 서명도, 복지부의 약속도 결국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엔지오가 세계장애인대회를 개최하면서까지 비준을 촉구했지만, 참여정부는 듣지 않았습니다. 장애인 인권의 역사적인 한 획을 긋는 주인공으로 남을 기회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이제 공은 이명박 정부에게로 넘겨졌습니다. 비준국 20개국 안에는 들지 못했지만, 18대 국회가 개원하는 동시에 처리될 수 있도록 비준안을 준비해 놓아야합니다. 장애인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할 때입니다.

“2008년 4월 3일 에콰도르가 비준을 함으로써 20개국의 서명으로 장애인권리협약이 정식 발효되었다. 이는 5년여의 장애인당사자들의 피나는 노력과 각국 정부의 장애인인권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접근의 결과로 전 세계 6억 5천만 장애인과 함께 축하를 하면서 그동안의 노고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

한국정부도 서명개방식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참가하여 장애인권리협약의 비준과 성실이행을 약속하며 서명을 한 바 있다.

국제권리협약 중 유일하게 협약의 성안과정에 정부가 참여하였고, 국내 장애인당사자 단체들의 참여로 장애인권리협약의 성안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해온 한국으로서는 서명개방식에 참가하여 서명하고 조속한 비준을 통해 장애인권리협약의 완성에 기여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절차이다. 그러나 서명개방식에서 한국정부는 선택의정서에 대해서는 서명을 하지 않고 협약에 대해서만 서명함으로써 장애인권리협약의 비준과 성실이행을 위한 의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하였다.

이러한 의구심은 장애인단체들의 지속적인 장애인권리협약 비준을 위한 일정 공개와 협약의 검토 과정에 장애인당사자의 참여 보장 촉구에도 불구하고 정부부처 간 협의과정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장애인단체와의 공개토론회 한 번 개최하지 않아 철저하게 장애인당사자들을 배제함으로써 현실로 드러났다. 이에 장애인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와의 면담을 통해 정부가 선택의정서를 포함한 장애인권리협약의 전 조항의 조속한 비준을 촉구하는 권고문을 2007년 10월 발표하였다.

우리는 오늘 다시 한 번 장애인권리협약의 실질적인 완성을 480만 한국장애인, 6억5천만 전 세계장애인과 함께 자축하며 한국정부의 조속한 장애인권리협약과 선택의정서의 비준을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촉구하는 바이다. 이것이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하고 초대 인권이사회의 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모범을 보이는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장애인인권센터, 장애여성네크워크 4월 4일자 성명서 전문)

우리나라의 색깔은 언제 바뀔까요? 검정색은 협약에 서명을 하지 않은 국가, 노란색은 협약에만 서명한 국가, 하늘색은 협약과 선택의정서에 서명한 국가, 청색은 협약만 비준한 국가, 붉은색은 협약과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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