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장애인들이 모인 장애연금 확보를 위한 결의대회가 개최됐습니다. 하필 날씨도 추웠던 이날, 이들이 모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에이블뉴스

우리는 지금 매우 중요한 역사적 현장에 서 있습니다. 내년 7월부터 장애인연금이 도입될 예정으로 이제야 실질적인 전 국민 연금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열악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계층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이번에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장애인들은 왜 항상 마지막이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수많은 지성인들이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65세 이상 노인의 문제를 자주 언급하면서도 노동시장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문제는 외면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수년전부터 장애인당사자들은 연금의 문제를 이야기해왔지만, 그 누구도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약속해놓고도 외면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꾸준한 문제제기 끝에 장애인연금 도입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장애인연금 도입의 공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MB정부는 장애인연금을 도입해 전 국민 연금 시대를 활짝 연 정부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도입하는데 의의를 두겠다는 생각은 오판입니다. 연금같지 않은 연금은 오히려 MB정부에 독이 될 것입니다. MB정부는 이번 주 열린 역대 최대 규모의 장애인집회에서 그것을 확인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것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MB정부는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꼼꼼히 따져보는 정부안의 실체…거꾸로 가는 장애인정책

잠시, 다시 한번 정부가 도입하려는 장애연금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겠습니다. 일단은 명칭은 장애연금이 아니라 중증장애인연금입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모두 주는 것이 아니라 중증장애를 가져야만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장애인복지법상 1·2급 및 다른 장애가 중복된 3급 지적·자폐성 장애인만 지급 대상입니다.

소득기준도 맞춰져야 하는데, 18세 이상의 중증장애인 중에서 소득인정액이 하위 70%에 해당하는 사람만 지급받게 됩니다. 중증장애인 중에서 소득인정액이 상위 30%에 해당하는 장애인은 지급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초노령연금의 경우도 노인 중에서 소득인정액이 상위 30%에 해당하는 사람은 지급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에서 대상자 선정 기준을 마련한 것입니다.

정부의 계산대로라면 약 32만5,556명이 연금을 받게 됩니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전국의 등록 장애인은 총 224만6,965명인 상황으로 전체 장애인의 약 14% 정도만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장애인 10명 중의 2명도 채 장애연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인데요. 숫자로 하면, 192만1천명의 장애인이 장애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되는 셈입니다. 백분률로 따지만 무려 86%에 이릅니다. 노인의 경우 노인 10명 중 7명이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과연 이것이 바람직한 상황인지 의문이 듭니다.

정부안이 비상식적이라는 것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방안과 비교를 하면 더욱 확연해집니다. 윤석용 의원이 발의한 한나라당안은 65만명(전체 장애인의 약 29%)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박은수 의원이 발의한 민주당안은 136만명(전체 장애인의 약 60%)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대상에서부터 엄청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금액수를 비교하면 차이는 더 벌어집니다. 정부의 방안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는 15만1천원, 차상위계층(최저생계비 120%)은 14만1천원, 차차상위계층(최저생계비 120% 이상인 사람)은 9만1천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존에 받던 장애수당은 지급이 중단됩니다.

한나라당안은 최저임금액의 30%에 해당하는 약 27만8천원을 지급하겠다는 방안입니다.(물론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의 경우 연금액의 40%를 소득으로 잡게 되기 때문에 실질 수령액은 적어집니다.)

민주당안은 중증장애인은 최저임금액의 25% 수준으로 25만원, 경증장애인은 12만5천원을 지급하는 방안입니다.(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의 경우 연금액의 30%를 소득으로 잡게 되기 때문에 실질 수령액은 적어집니다.)

장애수당과 LPG지원 폐지해 장애연금 도입…장애인 14%만 대상

중요한 사실은 정부안은 장애수당 폐지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안과 민주당안은 장애수당은 그대로 지급하는 방안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정부안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기존 장애수당 보다 1~2만원이 늘어나는 수준인데, 지자체에서 추가로 주던 장애수당 3~5만원을 못받게 되기때문에 오히려 소득이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기존에 장애수당을 받지 못하던 장애인 중 일부가 장애연금을 지급받을 수는 있게 됩니다. 굳이 정부안의 의미를 찾으라고 한다면 이 정도 수준입니다. 수차례 지적했지만 이것은 정부가 장애인정책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온 장애인간 형평성 차원에서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게다가 장애인차량 LPG연료 세금인상분 지원사업은 올해 12월 말로 폐지됩니다. 정부가 장애인차량 LPG연료 세금인상분 지원사업의 단계적 폐지를 전제로 한때 장애수당 금액을 인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장애수당이 폐지되고,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있는 현재의 장애인차량 LPG연료 세금인상분 지원사업도 폐지되는 것입니다.

결국 장애수당과 LPG지원사업이 모두 폐지되고, 장애연금이 도입되는 것인데요. 그 장애연금의 모습을 너무 초라할 뿐입니다. 그것도 전체 장애인의 14%에게만 해당되는 일입니다. 지난 월요일 전국의 장애인들이 역대 최대 규모로 집회를 개최할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의 일부 보전?…장애연금 도입 취지 상실

한 가지만 더 짚어봅니다. 2008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로 인한 월평균 추가비용은 15만9천원입니다. 장애로 인해 의료비, 장애인보조기구 구입·유지비 등에 추가로 지출하는 비용입니다. 장애유형별로 보면 간장애가 87만1천원으로 가장 많고, 자폐성장애는 35만4천원, 신장장애는 33만4천원, 안면장애는 31만명, 청각장애는 24만3천원 순입니다.

이것은 장애의 경중을 구분하지 않은 것이고요. 중증장애인의 경우에는 추가비용이 20만8천원입니다. 중증장애인연금의 도입으로 중증장애인의 기본소득 보장과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의 일부를 보전함으로써 저소득층 중증장애인의 생활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정부법안에 적혀 있는데, 이는 명백히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됩니다. 기본소득 보장이라니요? 전 국민이 보고 있는데, 이렇게 허위사실을 얘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나마 양심은 있어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의 일부를 보전한다'고 표현했나 봅니다.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의 보전'이라는 표현도 못 쓰는 법안을 만들어낸 것이 현재의 MB정부입니다.

철학도 논리도 없이 '예산 부족' 핑계 뿐…논쟁도 못하는 지경

왜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요? 접근법이 잘못 됐기 때문입니다. 장애연금에 지급할 수 있는 예산을 정해놓고, 그것에 의해서 지급 대상과 지급 액수를 재단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해소라는 애초 취지는 온데간데 없고, 장애인의 소득보장이라는 취지도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장애연금을 도입하는데 의의를 둔다'는 명분없는 명분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철학도 논리도 없이 말입니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과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지난 6일 서울시 장애인 유권자의 정치성향 및 의식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총 53%의 장애인이 이명박 정부가 국정 운영을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희망하는 공약은 장애인연금제도의 확대를 1위(42.7%)로 꼽았습니다.

기초노령연금의 도입과 마찬가지로 장애연금의 도입은 국가의 중대사입니다. 그래서 MB정부는 이제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장애연금을 도입해 전 국민 연금시대를 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인지, 장애연금의 도입을 망쳐 전 국민 연금시대의 도입을 회피한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인지 선택을 해야합니다.

늘 정치인과 관료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라 예산이 부족하니 어떡하느냐고 말입니다. 이 말이면 만사형통일 것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아무런 철학도 논리도 없이 말입니다. 최소한의 공부도, 관심도 없습니다. 이러니 장애연금 도입을 놓고서는 논쟁이나 토론조차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장애연금의 도입이 공부할만한, 관심을 가질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할말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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