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삼성테스코 직원들에게 이승한 회장에게 전해달라며 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빵을 전달하고 있다. 과연 이 회장은 그 빵을 먹었을까? ⓒ에이블뉴스

이승한 홈플러스 그룹 회장이 장애인 차별 논란을 겪고 있습니다. 기업형 슈퍼(SSM)에 반대하는 중소상공인을 비유한 발언이 문제가 됐는데요. 그 발언을 옮겨보면 “장애인이 맛없는 빵을 만든다면, 중요한 것은 빵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빵을 만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어지는 발언이 있는데요. “소상공인들이 '맛없는 빵'을 만들고 있는데 이를 우리에게도 강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애인과 소상공인을 싸잡아 비하하는 이번 발언의 파장은 컸습니다. 장애인단체들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장애인이 만든 빵이 맛없다는 근거는 어디서 나온 망언이냐”고 강하게 항의했고요. 특히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은 중소상인 단체들과 함께 서울 역삼동 삼성테스코 본사까지 찾아가 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빵을 삼성테스코 직원들에게 건네며 직접 한 번 먹어보라고 항의했습니다.

에이블뉴스도 직접 장애인들의 일터를 찾았습니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 위치한 수제쿠키전문점 까르페디엠에 가봤는데요. 정신장애인 20명이 정성스럽게 쿠키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는데, 아직 가야할 길은 멀었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이들에겐 맛있는 쿠키를 만드는 것보다 장애인이 만든 제품은 맛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것이 더욱 어려워 보였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정가영 기자가 사온 쿠키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왜 이승한 회장은 느닷없이 ‘장애인의 맛없는 빵’을 이야기한 것일까요? 논란이 확산되자 홈플러스 측에서 보내온 해명을 잠시 옮겨봅니다. “이 회장이 다니는 교회에서는 장애인이 운영할 빵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다. 맛있는 빵을 만들어야 더 많은 사람이 빵을 구입해 장애인 수익도 늘어난다는 관점에서 빵공장에 홈플러스 그룹 제빵회사의 전문가와 기술을 지원하는 방안을 도우려 했다. 이 회장은 빵공장 사례로 진정한 기여의 방식을 이야기 하려 했을 뿐인데 지극히 짧은 제한시간에 충분한 설명 없이 앞뒤부분만 얘기하여 생긴 오해다.”

이 해명을 보면서 ‘아, 회장님이 그래서 그런 발언을 했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에이블뉴스는 홈플러스측의 장애인 고용률은 어떨까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평소 장애인을 얼마나 고용하고 있는지를 보면, 홈플러스측에서 보내온 해명의 진위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취재에 들었지만 홈플러스측의 장애인고용률 자료를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은 “자료가 없다”, “회사영업정보 침해가 될 수도 있다”는 등의 답변을 들어야했습니다.

하지만 에이블뉴스는 결국 그 자료를 찾아냈습니다. 한나라당 제5정조위원장인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신상진 의원이 23일 국감에서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의 장애인고용 실태를 알리는 자료를 발표했는데요. 홈플러스측의 장애인고용률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홈플러스 테스코의 장애인고용률은 0.78%. 상시근로자 5,918명 중에서 장애인 근로자는 46명에 불과했습니다. 삼성테스코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장애인고용률이 0.85%였는데, 상시근로자 1만4,983명 중에서 장애인근로자 127명에 불과했습니다. 참고적으로 법에서 정한 의무고용률은 2%이고, 2008년 말 현재 민간부문 장애인 근로자는 89,664명, 고용률은 1.72%로 집계돼 있습니다. 홈플러스 테스코와 삼성테스코는 법에서 정한 비율도 어기고 있고, 다른 기업들의 평균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인 것입니다.

이승한 회장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승한 회장이 삼성테스코 대표이사에 취임한 것은 1999년, 홈플러스 그룹 회장에 취임한 것은 2008년이었습니다. 시간이 없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의지가 없었던 것일까요? 같은 교회 장애인들을 위해서 홈플러스 그룹 제빵회사의 전문가와 기술을 지원하려고 했다지만, 정작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서 장애인을 제대로 고용하지 않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고용개발원의 한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요. 이번 조사는 200인 이상 미고용사업체의 장애인 미고용 원인을 분석한 것인데요. 장애인고용 저조기업과 우수기업을 면접을 통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저조기업 경우 '장애인'을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과 동일시하고 장애인은 대부분 회사직무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판단하는 관리자가 다수 존재했고요. 이에 반해 우수기업은 장애인 채용을 위해 재택근무 직종을 개발하거나 외주업무를 전환해 장애인을 대규모로 직접 고용하는 등 적극성을 보였습니다. 홈플러스 그룹은 과연 어떠한 적극성을 보여주었나요? 우리에게.

이승한 회장은 아직도 공식 사과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홈플러스 홈페이지를 찾아가봤지만 여전히 사과문은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사과를 했다는 기사도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사과를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하나 있었는데요. 문제의 발언이 나온 것은 지난 16일, 장애인단체의 첫 성명이 나온 것이 19일입니다. 역시 시간이 부족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사과할 마음이 없는 것일까요?

‘회장님의 망언’은 국감에서도 이슈가 됐습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민주당 박은수 의원은 23일 복지부 종합국감에서 “우리나라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대기업 CEO가 공개석상에서 장애인 차별발언을 해놓고도 잘못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 장애인 인권 후진국”이라며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졌음에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박 의원은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에게 "이승한 회장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전 장관도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와 관련 박 의원은 “복지부 및 기관 상당수가 장애인차별금지법 교육을 시행하지 않고 있으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복지부는 1년에 한번 이상 장애인차별금지법 교육을 시행하고 시행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에이블뉴스 독자 의견 중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어 옮겨봅니다. 글쓴이는 ‘위원장’이고, 글의 제목은 ‘홈플러스회장 처벌 방법’입니다. 홈플러스 회장만 모른 '장애인의 맛있는 빵' 기사에 달린 의견입니다.

“16년 전 대학에서 재활학을 배우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약간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요. 미국의 한 유명한 대학총장이 장애학생의 고발로 법정에 서게 된 내용입니다. 장애학생은 대학 캠퍼스 시설이 장애인이 이동하기에 너무 힘들고 편의시설이 전혀 없어 시정조치를 위해 학장을 고발한 사건이죠! 정확한 판결이 기억나지 않지만 판사는 학장에서 1달 동안 휠체어를 타고 캠퍼스를 다니도록 벌칙을 내렸답니다. 홈플러스 회장님에게 까르페디엄 제과점에서 맛있는 빵을 만드는 사회봉사명령을 20시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면 어떨까요? 너무나 큰 실수에 솜방망이 처벌일 수도 있지만 장애인식개선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저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데 동의합니다만, 본인 스스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장애인들이 얘기하는 것을 진정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실천으로 옮기려면 장애인들 곁에서 직접 느껴봐야할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진심이 담긴 공식 사과도 하고, 장애인 채용 계획도 발표해주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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