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호 드림필드 준공식에서 시각장애인에게 축구화를 선물하는 히딩크 감독. ⓒ박종태

차근차근 시각장애인축구 인프라 구축하는 히딩크 감독

거스 히딩크 러시아축구대표팀 감독이 시각장애인축구장인 히딩크 드림필드(Hiddink Dream Field) 3호와 4호의 준공식에 참석하러 곧 방한합니다. 처음 시각장애인축구장이 지어질 때는 단순한 이벤트성인줄 알았는데 하나둘씩 시각장애인축구장 개수가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에이블뉴스가 히딩크 감독이 어떻게 시각장애인축구장을 짓게 됐는지 추적해봤더니 축구를 사랑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축구장을 지어주고 싶었던 한 사회복지사의 제안으로 드림필드 사업이 시작했다고 합니다. 히딩크 감독은 시각장애인축구장을 짓는 것이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 최소 월드컵경기가 열렸던 도시나 각 도에 1개씩 시각장애인축구장을 지으라고 당부했습니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 4강과 7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세웠지만 시각장애인 축구는 세계 최하위 수준입니다. 처음으로 출전했던 2004년 아테네장애인올림픽에서 최하위를 기록했고, 지난해 열렸던 제13회 베이징장애인올림픽에서도 단 1승도 기록하지 못하고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세계의 높은 벽을 절감하고 있는 시각장애인축구입니다.

시각장애인축구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인프라 때문입니다. 히딩크 감독이 시각장애인축구장을 짓기 전 우리나라에는 송파시각장애인축구장과 수원시각장애인축구장이 시각장애인축구장의 전부였습니다. 이제 히딩크 감독이 지은 시각장애인축구장이 더 많아진 것입니다. 히딩크의 마법이 시작됐으니 다음 장애인올림픽에서는 새로운 신화가 써질 수도 있겠습니다.

이쯤되면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축구를 하는지 궁금증이 생기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몇 차례 에이블뉴스에서 보도하기는 했는데, 시각장애인 축구는 소리로 하는 축구입니다. 특수 제작한 축구공은 구를 때마다 소리가 납니다. 수비지역에서는 골키퍼가, 하프라인에서는 팀 감독이, 공격지역에서는 골대 뒤의 가이드가 소리와 박수 등을 통해 주변 선수와 골대의 위치를 확인시켜줍니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전속력으로 돌진하기 때문에 일반 축구보다 더 격렬하고 부상 위험도 높습니다. 소리에만 의존해 드리블을 하고, 또 패스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축구보다 더 높은 조직력이 요구됩니다. 시각장애인축구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능력에 대한 경이로움까지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시각장애인의 축구는 하나의 예술입니다.

축구의 나라 영국에서 배우는 장애인정책

지난 13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83세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장 옆에 마련된 엠뷸런스에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 ⓒ에이블뉴스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는 예전에는 차범근이었지만 최근에는 단연 박지성입니다. 저는 최근 박지성이 활약하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있는 영국에 다녀왔습니다. 선진국 영국의 장애인복지시스템을 배우고 돌아왔는데요. 영국은 축구만 잘하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장애인 천국’이라고도 말할 순 없지만, 선진국이 된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영국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몇 가지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단연 사회보장시스템입니다. 교통안전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로드 피스와 킹스턴 카운슬에서 교통안전부서 책임자로 있는 공무원 제임스 파커씨와 만남을 통해서 든든한 의료보장체계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경우 교통사고가 나면 어렵게 받은 보상금으로 치료비도 다 못 대는 것이 현실입니다. 치료를 다 마치지 못해 장애가 가중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국은 달랐습니다. 치료비가 얼마가 됐든 국가가 책임집니다. 무상의료체계가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돈에 의해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일은 최소한 없다는 것입니다.

장애가 됐든, 아니면 다른 이유이든 일을 할 수 없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주택과 기초생활비를 보장하고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부러웠습니다. 특히 장애인이 일자리를 구했지만 파트타임으로 충분한 생활비를 벌지 못한다면 그 나머지는 정부에서 지원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돈을 벌면 버는 만큼 지원이 바로 끊기는 우리의 시스템과 달랐습니다. 우리의 시스템은 장애인이 수급권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인데, 영국의 시스템은 장애인도 일할 맛이 나게 하는 시스템입니다.

두 번째는 공무원을 제대로 일하게 만드는 시스템입니다. 장애인단체들이 경험하는 벽 중의 하나가 바로 공무원입니다. 우리의 시스템은 공무원이 자신의 일에 대해 신념을 갖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1~2년, 2~3년 만에 하던 일에서 손을 놓고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순환보직시스템입니다. 장애인문제는 특히 어려운 것이 많은데, 이렇게 되면 제대로 일이 될 리가 없습니다.

신선한 아이디어와 강력한 추진력으로 방문단을 놀라게 했던 킹스턴 카운슬의 공무원 제임스 파커씨는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1982년부터 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오랫동안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전문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념을 갖고, 평생을 일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오래전부터 요구해왔던 것입니다. 영국에서 좋은 사례를 만나고 올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세 번째는 최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전 세계적인 체인이 있는 스타벅스라는 커피숍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런던의 대표적인 관광지 코벤트 가든 앞에 있는 그 커피숍에는 작은 턱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외부 창문에는 휠체어 마크가 붙어있었고, 장애인을 환영한다는 글귀도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누르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호출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영국은 오래된 도시라서 턱과 계단이 있는 건물이 많았습니다. 계단과 턱을 없애는 것은 영국에서도 큰 문제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영국의 지하철에는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하철 노선도에 휠체어 마크를 통해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역사와 그렇지 않은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턱과 계단을 없애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그것이 힘들다면 차선책이라도 찾아야합니다. 최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장애인정책은 이러한 마인드를 갖고 해야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해답은 찾아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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