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시청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장애인 마크가 있습니다. 선진국으로 가는 문에는 장애인마크가 필요한 것입니다. ⓒ에이블뉴스

멀리 영국에서 주간브리핑을 씁니다. 먼저 하소연부터 하려고 합니다. 영국은 분명 우리보다 선진국이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면이 우리보다 앞서는 것은 아닌 것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환경은 매우 열악합니다. 호텔에서 시간당 1만6천원이 넘는 인터넷라인을 사용하고 있는데, 기사 하나를 전송하는데도 한국보다 수십배의 시간을 소요해야하는 실정입니다. 보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기사거리들이 많이 있는데, 마음껏 전해드리지 못한 부분이 매우 아쉽습니다. 돌아가서 나머지 기사들을 차근차근 올리려합니다.

국내에서는 이번 주에도 탈시설 자립생활 운동을 활발하게 진행됐습니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나온 8인의 중증장애인들은 서울시를 상대로 자립생활 대책을 요구하는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설에 사는, 아니 골방에 갇혀 사는 장애인들을 위해 대신해서 거리로 나온 이들입니다. 서울시를 비롯한 관계당국은 생존권을 내걸고 거리로 나온 이들을 위해 조속한 대책을 마련해야할 것입니다.

7월부터 돌입하는 장애인장기요양서비스 시범사업의 성패은 바로 자립생활 패러다임을 어떻게 적절하게 반영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장애인계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요양보험에 장애인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시범사업의 한 방안에 대해 장애인계는 분명하게 거부의 뜻을 밝혔습니다. 이는 학계와 많은 전문가들도 같은 생각입니다.

20여개의 장애인 및 시민단체가 함께 하고 있는 장애인 사회서비스 권리확보와 공공성 쟁취를 위한 공동행동은 지난 9일 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복지부는 기만적 장애인장기요양보장제도 시범사업을 철회하라”고 재차 촉구했습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복지부는 전체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해야하겠습니다.

직업을 얻는 것만큼 훌륭한 자립생활은 없을 것입니다. 중증장애인이 직업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아주 기초적인 제도가 바로 근로지원인서비스입니다. 현재 국회에는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법안이 계류 중인 상황에서 국회 내에서 근로지원인서비스 도입방안을 모색하는 세미나가 열려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노동부 관계자로부터 내년에는 근로지원인서비스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확답까지 받아 큰 성과를 냈습니다.

장애인의 취업상담에서 사후지도까지 장애인 취업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시 장애인일자리통합지원센터가 지난 9일 오후 개소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고요,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과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은 지난 11일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서초평화빌딩 5층 성당에서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 설립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올해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협약 체결에 장애인들의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영국방문단은 교통안전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로드 피스부터 영국의 장애인 고용을 책임지고 있는 렘플로이공사, 영국의 장애인 전국네트워크인 레이다 등을 방문하며 선진 장애인정책의 흐름을 배웠습니다. 특히 킹스턴 카운슬이라는 영국의 지자체에서 벌이고 있는 교통안전 캠페인을 살펴보았습니다. 런던시청 등 영국의 공공기관, 대영박물관 등 주요 관광지의 장애인 편의를 직접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짧은 기간동안 영국을 경험하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영국이 한국과 다른 점은 사회보장체계라는 점입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약자, 싱글맘, 실업자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생계 및 생활 보장을 깔고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국가의료서비스에 의해 무상의료를 실현하고 있는 점, 각종 연금과 수당을 통해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있는 점 등은 우리가 분명 배워야할 것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기초적인 토대 위에서 장애인정책이 진행되다보니 장애인정책이 보다 탄력적이고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정책이라는 것은 여러 다른 정책들과 보완관계 속에서 펼쳐져야 큰 힘을 발휘하는 듯 합니다. 우리는 뒤죽박죽 정책이 진행되다보니 좋은 정책도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애보다 능력을 먼저 보는 사회가 바로 영국이었습니다. 장애 때문에 할 수 없는 부분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있지만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구호이지만, 현실에 다가와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영국은 현실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며칠간의 일천한 경험으로 확신을 갖기에는 아직 이르겠죠.

영국도 장애인이 접근하지 못하는 시설이 많이 있었고, 접근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이용하는데 불편이 따라는 곳도 많이 있었습니다. 현재 방문단이 묶고 있는 호텔의 경우도 아주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이어서 그런지 장애인의 접근이 그리 쉬운 편이 아닙니다. 선진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상에 빠질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장애인을 인간으로 바라보고 대우하는 것들이 몸에 배여있는 사람들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느긋한 듯 하면서도 자신의 일에 열정적으로 파고드는 장애인단체 활동가들, 그리고 공무원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 조금, 아직은 불편한 시설의 문제는 곧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제 영국방문단은 오늘(13일) 대중교통을 체험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치게 됩니다.(현지 시각으로 주간브리핑을 쓰고 있는 시간은 13일 새벽입니다. 섬머타임의 적용으로 현재 8시간의 시차가 납니다.) 그러면 다시 12시간을 날아 고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짧은 기간의 영국 체험이 오랜 여운을 남길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의 장애인정책 추진에도, 몇명 되지는 않지만 영국방문단의 경험들이 잘 반영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소 기자는 이만 물러갑니다. 고국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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