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협의 한 대의원이 투표소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이번 선거는 높은 관심 속에 치러졌지만,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에이블뉴스

이번 주 장애인계 최대 이슈는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제6대 중앙회장선거였습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명백합니다. 선거일이 다가오자 에이블뉴스에는 누가 당선 가능성이 높으냐는 전화가 빗발쳤고, 선거 당일 현장에는 투표결과에 궁금했는지 장애인계 인사들이 대거 방문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지장협의 새 역사가 쓰이는 현장에 있다는 긴장감에 설레기도 했습니다. 현장 소식이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사진과 함께 간단하게 소식을 전하고 나서, 30분 후면 개표 결과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빠른 보도를 위해서 당선자 이름과 당선 인사말만 빼놓은 당선 기사를 준비하고 있던 찰라였습니다.

당선 기사 준비하고 있는데 '꽝' 터져

국제회의장 바로 옆에 있던 개표소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황급히 달려간 개표소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일부는 개표소 안에까지 들어가 공개 개표를 요구하며 항의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경찰의 중재가 시작됐고 곧 진정이 되는가 싶더니 투표용지를 손에 쥐고 한 인사가 투표소장을 나서려했고 이를 막기 위해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몇몇의 대의원들이 부정선거표가 발견됐다고 큰소리로 외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 확대됐습니다. 신순우 선거관리위원장이 단상으로 몇몇의 대의원들에 의해서 끌려 올라왔고, 부정이 있는 기호 1번 김정록 후보의 자격을 박탈하고 기호 3번 하영택 후보의 당선을 선포하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선거관리위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개표를 할 수 없다며 ‘개표 중단’을 선언했고, 앞자리에 모여 있던 대의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습니다.

대의원들의 강압적인 분위기가 계속되자 신순우 선거관리위원장은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을 수 없다며 사퇴를 선언하고 단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후 선거관리위원장을 대신하겠다고 나선 윤수일 부회장은 부정선거가 밝혀진 김정록 후보는 회장 자격이 없다며 깨끗한 하영택 후보를 만장일치로 추대하자고 제안했고, 그 자리에 있던 대의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이후 대의원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저도 짐을 챙겨 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몇 분후면 지장협의 선거가 아름답게 마무리될 것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되면 지장협의 성숙한 선거문화가 장애인계에 큰 귀감이 됐다는 기사를 준비해야지 마음먹었는데, 결국 이렇게 일이 터지고 만 것입니다.

어제의 사태를 두고 현재 한국지체장애인협회 홈페이지(www.kappd.or.kr)와 에이블뉴스 나도한마디 게시판에서는 뜨거운 논란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에 대한 장애인계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 이번 선거에 쏠려있는 장애인계의 관심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모여서 논의하지 않는 이상 해결책 없어

에이블뉴스는 사설을 통해서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습니다. 김정록, 박명호, 하영택씨 등 세 후보와 선거관리위원회, 이사회 등이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뒤, 공식적인 입장을 조속히 밝혀 혼란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사태가 발생한지 만 하루가 넘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어떤 공식적인 입장 발표는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지장협은 명실공히 국내 최대의 장애인단체입니다. 지체장애인은 전 장애인의 절반이 넘습니다. 따라서 지장협의 리더는 곧 장애인계의 리더입니다. 지장협의 변화는, 곧 장애인계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사태는 이미 발생했고, 이제는 더 이상 사태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수습하느냐에 집중할 때입니다. 책임있는 분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장애인계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는 점을 새겨주시기 바랍니다.

장애인시설의 인권침해, 또 다시 드러나

한편 지난주 알콩달콩 결혼스토리를 기고해 큰 관심을 받았던 조우리씨가 이번에는 장애인시설에서의 경험을 고발해 주목을 끌었습니다. 특히 장애인시설 종사자들이 장애인 생활인들을 재워놓고 술을 마시다 성관계를 갖고, 임신까지 하게 됐다는 사실을 전해 큰 충격을 던져줬습니다. 장애인시설에서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대한 차별 대우가 심각하다는 뼈아픈 지적도 있었습니다. 에이블뉴스는 장애인시설에서 당한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한 기고를 환영합니다. 더 많은 독자분들의 고발이 이어지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때 마침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서울시내 장애인생활시설 38곳의 전수조사 결과를 밝혔습니다. 장애인 생활인들의 57%가 시설에서 떠나고 싶다는 응답이 나왔고, 주거 및 활동보조 등의 지원이 있다면 70.3%까지 퇴소 희망자가 늘어났다는 결과였습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시의 책임 있는 후속 조치가 필요하고, 이미 약속한 면담에 임하라고 주문을 잊지 않았습니다.

경찰에게 박카스병 하나를 던졌다는 이유로 지적장애인 2급 지모씨가 구속 수사를 받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알려져 장애인들을 분노케 했습니다. 촛불집회 1주년 당시, 명동 시내에 있던 지씨는 주변 사람들이 경찰들에 의해 연행되자 방어 차원에서 박카스병을 던졌는데 경찰서에 끌려가 조력자의 지원 없이 조사를 받았습니다. 장애인단체들은 서울지방검찰청을 찾아 사법부가 장애인차별금지법 26조를 위반했다고 지적하고, 지적장애인을 정치범으로 구속하는 나라는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없다며 지씨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했습니다.

이렇게 한 주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좋은 소식만 갖고 찾아뵐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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