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언론을 자부한다면 장애인의 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멈추고 이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였어야 합니다. ⓒ에이블뉴스

제29회 장애인의 날이 지나갔습니다. 지난주 ‘올해 장애인의 날의 화두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졌는데요. 역시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것이 세상인 듯 합니다. ‘탈 시설과 자립생활’이 될 것이라는 저의 분석은 어긋났습니다. 바로 ‘MB의 눈물’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장애 어린이들의 영혼의 노래에 그만 울어버렸는데요, 이 대통령은 제29회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인 홀트일산요양원을 찾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눈물샘을 터트린 합창단은 '영혼의 소리로'인데요, 27명의 장애인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자 박재용 씨의 지휘로 여자 어린이의 독창곡 '똑바로 걷고 싶어요'가 연주됐는데, 김윤옥 여사가 먼저 울음을 터트렸고, 눈물을 참던 이 대통령도 결국 굵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국내 주요 언론이 보도하면서, 장애인의 날에 크게 이슈가 됐는데요. 정작 장애인당사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라며 크게 반발했습니다. 악어의 눈물이라는 것은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삼키면서 나오는 무조건 반사적인 현상입니다.

장애인들의 비판이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요? 과연 그럴까요? 장애인 당사자들이 이렇게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장애인차별금지법 행정인력 증원 무산 ▲반인권적 인권위원 임명 ▲국가인권위 21.2% 인력 감축 ▲장애인권익증진과 폐지 ▲장애인차별금지법 무력화 ▲LPG 면세 공약 외면 등 이명박 정권 1년 동안의 일관된 흐름 때문입니다.

특히 이 중 ‘장애인권익증진과 폐지’는 장애인의 날 다음 날인 21일 오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결정된 것입니다. 장애인계의 커다란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국대과제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장애인권익증진과에서 일하는 공무원의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재활지원과에 흡수 통합시켜버렸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주부부서의 위상을 이 정도로 생각하니 장애인들이 그 눈물의 진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비가 쏟아진 지난 20일 제29회 장애인의 날에 대규모 시위를 벌였던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이명박 대통령이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며 흘린 눈물은 장애인을 1년 364일 차별하다가 단 하루, 그것도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흘린 눈물이었다”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일상적으로 장애인을 차별하면서 한편에선 '눈물 흘리는 쇼'를 하지 말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이명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중증장애인들의 합창에 위로를 받았다면, 중증장애인들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생존권적인 정책 요구에 성실히 답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증장애인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위해 투쟁하다 구속된 중증장애인 동지들을 즉각 풀어줄 것을 촉구한다.”

그렇습니다. 장애인의 날에 중증장애인활동가 2명이 연행되는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서울 흥인지문 앞 도로에서 달려오는 차들을 맨몸으로 막고 ‘장애인생존권 말살하는 이명박 정권을 규탄한다'라고 외쳤던 이들이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경찰에 연행됐고, 그동안 투쟁의 과정에서 부과된 벌금을 내지 못해 서울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대통령은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존재인가요? 장애인의 날, 서울역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공약을 지키라고 외치는 장애인들이 있었습니다. 장애인 차량 면세유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 소속 회원들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를 앞두고 다시 장애인 차량 LPG 감면을 해 주겠다고 장애인의 표를 몰아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우리는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애인은 약자이므로 미물이라 약속 따위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무시해버릴 존재한 말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의 진심은 무엇일까요?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일 장애인의 날에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기념식에 영상메시지를 보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지 않는 성숙한 사회가 바로 선진 인류 국가"라며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할 것 없이 누구나 행복하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따뜻한 나라를 만드는데 우리 모두 힘을 모으자"고 당부했습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는 바로 장애인들이 사회가 만든 감옥인 시설에서 생활하지 않은 권리, 지역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말잔치는 필요 없습니다.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보여줄 때입니다. 그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길은 올해 장애인의 날 최고 이슈가 됐었어야할 ‘탈 시설과 자립생활’에 대해 실현 가능한 대책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탈 시설과 자립생활’이 ‘MB의 눈물’ 때문에 장애인의 날 이슈에서 밀린 것은 언론의 천박함 때문이기도 합니다. 많은 언론은 ‘MB의 눈물’에 현혹되고 말았습니다. 365일 울고 있는 장애인들에는 관심 갖지 않았던 그들이기에 이면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갈수록 장애인뉴스는 많아지고 있지만, 정작 장애인들이 원하는 뉴스는 찾아내기 힘든 이유 제대로 알았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4월 20일자 주요일간지 일일 모니터 브리핑의 일부를 옮겨드립니다.

2. <중앙>, 또 낯 뜨거운 ‘대통령 홍보’

20일 중앙일보는 1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경기도 홀트일산요양원을 방문해 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진을 크게 실었다.

이 사진에서 중앙일보는 캡션 제목을 <울어버린 대통령… 오늘 장애인의 날>로 붙였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경기도 고양시 홀트일산요양원을 방문해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의 노래를 들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발음이 잘 안 되는 장애아들이 애써 노래를 부르자 김 여사가 먼저 눈물을 흘렸고, 이 대통령도 마침내 눈물을 보였다. 이 합창단은 중외제약 등 여러 기업의 후원을 받아 6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리는 국제합창대회에 참가한다”는 캡션을 달았다.

장애인 차별의 현실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장애인의 날 메시지에서 자랑처럼 언급했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이 발효되고 있지만 여전히 차별의 현실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오후 인천 부평구 갈산종합복지관 앞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순회상담 행사를 가졌는데요. 이날 총 100여명이 인권 상담도 받고, 정식으로 진정서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몇 가지 소개하고 주간브리핑을 마칩니다.

휴대전화를 신규로 신청하러 S통신사 대리점을 찾아간 뇌병변장애 1급 L씨가 있었는데요. ‘장애인은 보호자가 없으면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L씨는 “언어장애도 없고, 의사소통도 문제가 없는데 이렇게 대우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J씨는 동네에 있는 현금지급기가 너무 높아서 혼자서 사용하기 힘든 점에 대해 진정서를 작성했는데요. L씨는 “은행 직원이나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자니 비밀번호가 노출돼서 피해가 우려 된다”며 현금지급기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장애인차별이라고 진정서에 적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시설에서 나온 K씨는 새로 살게 된 곳에 전입신고를 하고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신청했으나 관공서에서 행정 처리를 늦게 하는 바람에 한 달 동안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했다고 진정서를 작성했습니다.

K씨는 “동사무소에서 시설에서 살 때 주민등록증 이름과 복지카드 이름이 달라, 이 문제를 처리하는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답변했지만 그러한 행정 처리를 하는데 한 달이 걸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인권위 조사를 의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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