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영 회장님, 안녕하신지요? 사단법인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 박인용 이사입니다. 저희 부모회는 ‘아이들의 희망, 부모의 힘으로’만들자는 취지로 2003년에 시작하여 근년에 서울시청에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허가받고 올해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로 창립하여 장애인 자녀와 가족들을 지원하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2년전 성탄절을 앞두고 연세대 재활학교 천막농성장에서 회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었지요. 저희 부모회는 연세재활학교 학부모들과 함께 졸업하면 갈 곳이 없었던 장애학생들에게 중등과정을 만들어주기 위해 연세대를 상대로 한달 넘게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지요. 그때 지지 방문차 오신 회장님과 얘기하면서 같은 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많은 공감을 나눴고, 대학 사제였던 인연을 말씀드리자 더욱 반가워 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모든 장애인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저 역시 장애를 가진 제 딸아이가 어린이집과 유치원 문턱에서부터 차별당하고 갈 곳이 없는 절망적인 경험을 뼈저리고 느껴 부모운동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실은 장애 아이를 양육하는 제 아내를 비롯한 어머니들의 탈출구 없는 고통을 조금씩 알게 된 것이지요. 이게 내 가족 만이 아니라 모든 장애인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가장으로서의 책임보다도 아이의 먼 미래를 위해 부모 활동가로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02년부터 장애인교육권 운동에 참여하면서 많은 장애인 부모들을 만났는데, 그분들의 공통된 의견은 어느 누구도 우리 장애인 자녀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주거나 올바른 정책을 세워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 자녀들, 특히 지적 장애인들의 권리가 회복되지 않은 현실에서 많은 장애인 부모들이 자녀의 권리를 위해 함께 연대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도 여러 장애인 부모단체가 있었고 선배 부모들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큰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장애인 가족이 가진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가진 부모운동을 실천에 옮기는 분들을 별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뜻있는 선배 부모들이 계셨었지만 부모운동은 아직도 열악하기만 했습니다. 많은 고민을 하다가 아이들의 교육권리와 복지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정책운동을 실현하는 새로운 부모운동을 주장하게 되었고, 서울지역에서 새로운 부모회를 만들고 특수교사단체, 장애인 당사자 단체들과 함께 ‘장애인교육권연대’를 만들어 공동대표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장애인교육권연대를 중심으로 한 장애인 부모들의 줄기찬 노력으로 2007년 장애인교육법이 새로이 제정되는 성과를 낳았고 ‘전국장애인부모연대’라는 새로운 부모조직이 탄생하였습니다. 저는 장애인교육권연대 활동에 참여하면서 그 부모운동 사례를 분석한 학위 논문을 쓰기도 했는데 복지 청원운동이 아닌 지적 장애인의 권리모델에 기초한 보다 진일보한 부모운동이라고 긍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회장님이 대표를 맡고 계신 한국장애인부모회에서 새로 출범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사단법인 허가를 반대하는 운동을 공개적으로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교육권연대 운동을 불법적인 것으로 주장하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자에 대한 비난을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가 더욱 안타까운 건 사회통합(inclusion)을 가장 중요시하는 장애인 부모들이 같은 장애인 부모단체를 경쟁자로 여기고 비난을 넘어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면, 누가 우리 자녀들을 위해 사회통합에 나서려고 하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장애인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로서 가장 서글프며 비통한 심정이 드는 건 장애인 부모단체가 서로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일때, 과연 우리 자녀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입니다. 다른 단체, 다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라면 약자중의 약자인 우리 장애인 자녀들이 설 자리가 어디에 있으며, 생명으로 존중받을 한 가닥의 기회라도 과연 있을까요?

이만영 회장님, '장애인 자녀들이 사회통합으로 나아가고 자립으로 나아갈 기회를 가로 막는 이들이 바로 부모 자신들이다' 라는 따가운 지적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래서 부모운동은 깊은 성찰을 통해 발전하며 새로운 부모운동의 모습을 보여주는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운동을 시작할 즈음부터 주변에서 장애인 부모들은 제 자식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요, 관청으로부터 받은 사업을 수행하는 기득권집단이라는 무고한 오해를 받아왔는데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저희 부모들은 많은 노력들을 해야 했습니다.

나아가 기존의 부모단체의 역할에 문제제기를 하고도 싶었지만, 장애인 부모들의 분쟁으로 비춰질까봐 조심하면서 공개적인 토론의 자리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기존 부모단체가 가진 보수적인 성격을 부정하지 않았던 것은 나름대로의 전통과 보수성을 인정할 때 진보와 보수가 균형있게 공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안타깝게도 한국장애인부모회 이만영 회장님 이름으로 특수학교 부모회장들에게 “극소수의 부모들로 구성된 장애인부모연대가 한 지역에 결성된다면 부모간의 마찰은 물론 지역주민들에게 장애인 부모들이 나쁘게 인식될 우려가 있으므로 법인허가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해 달라”고 공문을 보낸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 대해 “순수한 장애인부모단체가 아니다. 불법 단체이므로 법인설립 허가를 반대한다” 는 의견서를 정부와 언론기관에 제출하고, “부모연대 상임대표가 한국장애인부모회 지회장을 사칭해 명예를 손상시켰다”고 주장한 뉴스를 들었습니다. 지회와 분쟁이 있었다면 법적인 해결을 하면 그만인데, 왜 새로이 출범한 부모단체에 대한 비난가 부정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이만영 회장님, 두 개의 부모단체가 공존하지 못해 마찰하게 되고 지자체 사업을 받으려고 이전투구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은 참된 부모운동을 지향하는 저희 입장에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외국 경우에도 지역에 산재한 수백 개의 장애인 부모단체가 각자 자기 역할을 하면서 상호연대를 도모하여 여러 개의 연대조직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장애인부모회라는 한 개의 부모조직 만이 법인으로 존재해야한다는 이유가 없고, 저희 장애인 부모운동이 어떤 사업을 받으려는데 있지 않고 올바른 장애인 정책을 세우는 것이라면, 백지장도 맞들면 낫듯이 여러 단체가 힘을 합하면 더 훌륭한 정책운동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컨대 저희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는 비영리사단법인으로서 귀 법인 서울지회와 교류하고 있으며, 지회장님과도 여러번 통화한 적이 있습니다. 귀 법인 서울지회에서 올해 시행한 장애아동가족 양육지원사업에 대해 저희 법인 회원들에게 홍보해드리겠다고 협력을 제안하기도 했고, 서울지회장님께서는 저희가 장애인교육법 제정을 위한 농성운동을 할 때 지지방문을 와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귀 부모회 선배 부모님들과 교류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저희 회원들이 다수 속해있는 특수학교 부모회장들에게 보낸 공문은 저희 회원 활동과 장애인 부모들간의 협력을 훼손하는 내용이므로 즉시 철회해주시기를 진심으로 요청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부모회 등 16개 지역부모회가 참여하고 있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장애인교육권이라는 미명하에 불법을 저지른 불법단체라는 비난은 너무나도 지나치고 저희 법인 회원을 비롯한 전국의 장애인 부모들에 대한 모욕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교육권연대는 귀 부모회가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인권상위원회’로부터 2004년 장애인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하루 아침에 장애인교육권 운동을 불법운동이라고 주장한다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것인지요.

저는 2년전 성탄절 즈음, 연세대 재활학교 천막농성장에서 회장님을 만나 공감을 나누었던 그 부모의 마음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중증 장애아이를 돌보기 조차도 힘겨운 어머니들이 차가운 천막농성장에서 눈물을 삼키며 밤을 지샐 때, 그분들을 그저 불법집단에 불과하다고 매도하는 사람이나 보도를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때 연세대 교정 사유지를 허락없이 불법으로 점유한 농성장에 지지 방문 오셔서 격려금을 내놓고 가신 이만영 회장님의 마음이 장애 자녀를 둔 모든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자녀들을 대신해 오죽했으면 장애아동 어머니들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아이를 맡겨놓고 농성을 마다하지 않을까요? 복지안전망이 부실해 우리 자녀들의 미래가 없기에,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불법적인 존재로 취급받기에 조금이라도 희망을 되찾아 주려고 법을 어기는 모험까지 감수합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희망 조차 잃어버린 부모들은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절망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부모들이 장애인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희망을 부여잡으려고 부르짖는 것이지, 결코 ‘데모 만능주의’ 는 아닐 것입니다. 저 같은 부모활동가들은 장애인교육법을 제정하기 까지 3년 동안 절반 이상을 농성장에서 살아야 했지만, 우리 자녀들에게 돌아오는 권리는 아직도 미약하기만 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지적 장애인의 부모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장애인교육권연대와 장애인부모연대에 대해 색깔만 보고 부정하지 마시고 서로 인정하여 우리 자녀들이 원하는 사회통합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모들이 부르는 장애인 차별철폐의 노래는 내 자식 만이 아니라 중증의 성인 장애인들과도 함께 연대하고자 부르는 노래임을 헤아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직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정도이지만, 모든 장애인 차별을 철폐하고 올바른 정책과 사회변화를 위해 모든 장애운동 진영이 함께 노력해야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희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극소수의 장애인 부모가 아니라 전국 시도에서 실질적인 활동을 하며 참여하는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민주적으로 대표자를 선출한 공익 단체입니다. 저희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를 비롯해 다수 시도 지부가 이미 법인격을 갖추고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한지 오래이므로 부모단체 간 상호 존중과 대표자에 대한 존중이 절실하다고 봅니다. 나아가 새가 두 개의 날개로 아름답게 비상하듯이 더 나은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지역에서 부모 단체가 서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회장님, 저는 지금도 사랑하는 딸아이로부터 더욱 분발하고 싸워서 자신의 미래를 마련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지적 장애인 자녀를 위해 부모가 나서지 않는다면 정말 돌들이라도 소리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에 귀 부모회 임원으로부터 상호 간담회를 제안받은 적이 있습니다만, 저의 부족한 소견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만나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여 자리가 마련되면 부모운동을 주제로 공개적인 토론을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 주심에 감사드리며 추운 날씨 회장님과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오. 아울러 한국장애인부모회 여러 부모 회원님들께도 성탄과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이 글은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 이사 박인용씨가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을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연락을 주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드립니다.

발달장애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 활동가입니다. 아이들 돌보고 살림도 챙기는 주부이기도 합니다. 2003년 부모활동가로서 장애인교육권연대,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를 조직하였고, 장애인활동가들과 함께 진보정당 장애인위원회를 건설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애어린이 희망찾기>, 위드뉴스 <새로운 부모운동을 위한 전국순회> 라는 연재 글을 썼고, 2007년 한신대에서 <한국사회 장애인 부모운동 연구> 이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현재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정책국장과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조례운동본부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부모운동과 가족지원,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해방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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