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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권리 찾아가며 데이트 했어요

[민박집 러브스토리]-③사랑나무 키우기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9-06-08 17:28:48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가보고 싶다던 남편을 위해 난 마지막 배를 잡기위해 그날 전력질주를 해서 매표를 하고 무전기로 배를 멈춰놓고 탑승했다. ⓒ민솔희 에이블포토로 보기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가보고 싶다던 남편을 위해 난 마지막 배를 잡기위해 그날 전력질주를 해서 매표를 하고 무전기로 배를 멈춰놓고 탑승했다. ⓒ민솔희
#3. 사랑나무 키우기 - 나팔꽃과 기둥

어느 날 부산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름이 다가오던 그 즈음, 광안리 해변에는 이미 시원한 밤바다를 찾아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해변에 파라솔을 치고 박스를 찢어 사주, 궁합 이런 것을 잔뜩 써 놓은 아저씨. 우린 재미 삼아 우리 궁합을 보았다. 남편은 기둥, 아내는 나팔꽃 이란다. 아내는 혼자서는 꽃을 필 수 없지만 기둥을 감고 올라가 나팔꽃을 피울 것이고, 남편은 혼자서는 볼품없는 기둥이지만 나팔꽃과 더불어 멋진 꽃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당신은 할 수 있어. 당신은 잘 해 낼 거야

첫 번째 결혼 생활로 자신감을 잃었던 내게 그는 언제나 힘을 주는 사람이었다. 늘 내게 힘을 주셨던 엄마 같은 사람. ‘당신은 잘할 거야. 당신은 잘 할 수 있어’라며 그는 내게 늘 힘을 주고 긍정을 심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 때 검도장을 접으려 했을 때도 그는 내게 나중에 후회할 지도 모른다며 그만 둘 때 그만 두더라도 다시 한 번 도전을 해 보라고 했다. 이혼녀라는 스스로의 핸디캡으로 그만두는 것이라면 옳지 않다며 진짜 검도를 그만 둬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만 두라고 했다. 그렇게 그는 자칫 감정적으로 저질러 버릴 수도 있는 어떤 선택에 대해서도 내가 좀 더 신중하게 혹은 다방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게 그는 결혼 전에도 후에도 늘 내게 힘을 주는 사람이었다.

검도장을 운영하면서 난 필라테스가 무척이나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충주에는 그것을 가르치는 곳도 없고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는 없었다. 물론 지난 결혼 생활 속에서 전남편은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를 싫어했기 때문에 더더구나 그런 기회는 없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필라테스 지도자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하지만 2시간 거리를 일주일에 한번 이상씩 다녀야만 했다. 그는 내게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그 거리를 운전을 하고 나를 데리고 다녔다. 때로는 꼭두새벽에 출발을 해야 했고 검도장 지도 시간 때문에 점심 먹을 시간도 없어 수업을 마치면 바로 돌아오기도 했다. 가끔 주말에는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교육이 있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는 차에서 노트북으로 자기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 줬다. 그렇게 나는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필라테스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것도 피트니스와 재활 과정까지 모두 말이다.

그가 내게 힘이 되어 준건 그 뿐만이 아니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난 단 한 번도 글을 써 본적이 없었다. 검도장 운영과 육아로 인해 시간이 나질 않았고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습작이라도 할라치면 그것조차도 나무라던 사람과 살다보니 세월이 지났다. 이혼을 하고 나서 얼마든지 내게는 많은 자유가 생겼다. 하지만 글쓰기에 겁을 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챘다. “솔아, 솔희는 잘 할 수 있을 거야. 당신이 글을 얼마나 잘 쓰는데. 다시 시작해봐. 시작이 두려워 그렇지 분명 당신은 다시 예전처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그의 그 말 한마디가 내겐 큰 힘이었다. 그리고 그 길로 글을 써 충주시여성문화제 수필부문에 응모를 했다. 며칠 뒤 문인협회라면서 전화가 왔고 내가 대상에 당선 되었다는 것이었다. 난 그 전화를 받으며 엉엉 울었다. 전화해주신 선생님이 당황할 만큼 말이다. 전화를 끊고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소리 한마디 하고 계속 엉엉 울기만 하는 내게 그는 무슨 일이냐며 당황하는 것이었다. 한동안 말도 않고 계속 울자 큰 일이 생겼다고 느꼈는지 그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그는 나만큼이나 믿기지 않는 듯 “정말? 정말 대상이래?”하며 좋아했고.“녀석, 언제 말도 없이 이렇게 기특한 짓을 한거야! ”라며 그 역시 좋아했다. 그렇게 딸 곁에서 혹은 동생 곁에서 힘을 주고 사랑을 주는 그를 부모님도 형제들도 감사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행, 용기 플러스 사랑

제주 바다에 사랑을 듬뿍 날려주고왔던 여행. ⓒ민솔희 에이블포토로 보기 제주 바다에 사랑을 듬뿍 날려주고왔던 여행. ⓒ민솔희
제주여행. 많은 사람들에게 닭살을 느끼게 해주었던 여행이었다. ⓒ민솔희 에이블포토로 보기 제주여행. 많은 사람들에게 닭살을 느끼게 해주었던 여행이었다. ⓒ민솔희
KBS 1박2일 여행지 태백 귀네미 마을. 저나무 아래서 이승기, 강호동 등 야외취침을 했다는. ⓒ민솔희 에이블포토로 보기 KBS 1박2일 여행지 태백 귀네미 마을. 저나무 아래서 이승기, 강호동 등 야외취침을 했다는. ⓒ민솔희
공연을 본적 없는 남편을 위해 서울 점프공연장을 함께 갔을때. ⓒ민솔희 에이블포토로 보기 공연을 본적 없는 남편을 위해 서울 점프공연장을 함께 갔을때. ⓒ민솔희
연애가 시작 되던 즈음의 봄 햇살은 어느 해보다 눈부셨다. 아마 우리 두 사람에게 유독 그리 느껴졌을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장애인 여행가라는 꼬리표를 달 만큼 많은 여행을 했다. 그에 비해 나는 생활에 바쁘다 보니 여행은 거의 못하고 지냈다. 그런 내게 그는 자신이 가보고 좋았던 곳들을 모두 보여주고 싶어 했다. 주말이면 우리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고 숲으로 바다로 떠나곤 했다. 여행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하다. 하지만 어디를 가는가 보다 누구와 함께 하는가가 얼마나 즐거운가를 결정 하는 것 같다. 연애하기 전부터 그가 여행가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그가 여행을 하기에는 많은 난관에 부딪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에게 그와 하는 여행은 호기심이 반이었다. 처음엔 그가 핸드컨트롤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도 신기했을 만큼 난 장애인의 생활 깊은 곳까지는 알지 못했으니까. 그와 여행을 할 때 나는 특별히 걱정을 하거나 신경을 쓸 것이 없었다. 누가 그를 장애인이라고 하리오. 누가 장애인인 그라서 여행을 못할 것이라 하리오.

보통의 사람들은 충주를 벗어나 대전을 가거나 서울을 가는 것도 계획을 세우고 큰일을 치르는 것처럼 다녀오곤 했다. 하지만 그는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대전이나 서울을 다니곤 했다. 보통 데이트는 나를 기준으로 맞추었다. 오후에 검도장을 하다 보니 오전에 가까운 충주댐이나 충주 이곳저곳을 드라이브 하는 것이 우리의 데이트였다. 그리고 주말에는 제대로 여행이다. 충주에는 문화시설이 그다지 많지 않으므로 우리는 여행을 갈 때 영화를 보거나 콘서트는 보거나 하는 계획을 함께 세워 이동을 한다. 자동차 극장에서 큰 이동없이 영화를 보거나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는 요즘 장애인들이 영화관람을 하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미리 전화를 해 예약을 하고 가면 더욱 편하다.

이미 많은 곳을 다녀본 그에게 어떤 곳이 장애인들이 여행하기 좋은 것인지에 대한 정보가 넉넉했으므로 여행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라디오 방송도 6개월 이상 여행지 소개 리포터로 활동했고 각종 잡지에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을 만큼 장애인 여행에는 전문가였다. 한번은 그와 제주도 여행을 갔다. 그런데 그즈음 그는 라디오 생방송이 잡혀 있었다. 미리 준비한 원고를 숙소 주인집 컴퓨터를 빌려 메일로 보내놓고 프린트까지 해서는 렌터카에 올랐다. 여행을 하다 시간이 되면 전화통화로 방송을 하면 되기에 우린 미리 정해둔 곳으로 차를 몰았다. 시간이 거의 되었다 싶어 소음이 없을 만한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원고를 펼쳤다. 순간, 그는 “솔아. 큰일 났다.”밤새 쓴 원고를 노트북에 저장해서 메모리에 옮기는 과정에서 다른 여행지 파일을 저장 했던 것이다. 그때 그의 전화가 울렸다. 방송사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어쩌죠. 제가 원고를 잘못 보내 드린 것 같아요.”그쪽에서도 원고를 받아보고 좀 이상하다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길로 남편은 차를 몰아 숙소로 향했다. 비 내리는 날을 그렇게 좋아하는 우리였지만 그날 내리는 비를 원망하며 굵은 빗줄기를 뚫고 숙소로 달려갔다. “도착하면 솔아, 빨리 뛰어가서 노트북을 들고 오는 거야 알았지?”비를 맞으며 차에서 내리자마자 숙소로 올라가 노트북을 들고 오면서 전원을 넣었다. 그 사이 방송사에서도 두어 차례 준비 되었냐는 전화가 왔고 그는 제시간에 노트북을 연 채로 방송을 할 수 있었다. 방송을 마치고 우린 서로 마주보면 아무 말 없이 껄껄 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마 우리 오늘 일 평생 잊지 못할 거야 그치?” 그때 그 말처럼 함께 한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그 일로 남아 있다.

여행을 하면서 좋은 일만 행복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프고 눈물 나는 일들도 있었다. 한번은 청송에 사는 친구의 초대로 멋진 펜션 에서 하룻밤을 묵고 근처에 있는 주산지를 가기로 했다. 하지만 주차장에서 더는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길이지만 차량 통제가 되어 관리자들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장애인들은 보고 싶은 곳이 있어도 보지 말라는 것입니까?”나는 화가나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렇게 화를 내는 나를 말리는 그는 웃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장애인이지만 이미 오래전, 세상이 장애인들에게 대하는 그런 불이익에 대해 초월을 한 듯 했다. “우리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건의하자. 장애인들도 좋은 것을 볼 권리가 있으니까 차가 갈 수 있게 해주든지 휠체어가 올라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이야.” 우리의 여행은 그랬다. 우선은 여행을 가면 휠체어가 갈 수 있는지 아니면 장애인 차량 출입이 가능한지 그리고 그곳에 장애인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는지 혹은 장애인화장실이 장애인이 사용하기에 불편함은 없는지, 주변에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은 있는지. 그 모든 것을 나는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남편을 닮아 여행을 가든 마트를 가든 장애인 주차장을 둘러보는 등 장애인들 편의 시설에 대한 체크를 하고 관리자에게 이야기를 하고 홈페이지에 건의를 하는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다.

여행은 두려움을 버리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장애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연인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 그것을 버릴 필요가 있다. 작은 용기가 어쩌면 우리에겐 좋은 인연도 만들어주고 좋은 인연을 사랑으로 발전도 시켜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우리의 여행은 취재이다. 대학시절 2년간 학보사 취재기자 활동을 한 나는 그래도 제법 남편의 일에 도움이 많이 된다. 몇 군데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는 남편과의 여행은 즐기고 보는 여행에서 끝나지 않고 사진으로 혹은 정보로 담아 오는 작업까지 이어진다. 그는 나와 여행을 하면서는 자신이 찍을 수 없었던 사진들도 찍을 수 있어 참 좋다고 한다.

남편은 장애인 그러나 남편은 해결사-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연금술사

제주여행-늘 진지한 박군도 민양과 함께 할때는 저렇게 개구장이 어린아이 같다. ⓒ민솔희 에이블포토로 보기 제주여행-늘 진지한 박군도 민양과 함께 할때는 저렇게 개구장이 어린아이 같다. ⓒ민솔희
라디오 방송을 앞두고 제주도 숙소에서 원고를 쓰고 있는 박군. ⓒ민솔희 에이블포토로 보기 라디오 방송을 앞두고 제주도 숙소에서 원고를 쓰고 있는 박군. ⓒ민솔희
‘난 세상에서 지금의 남편처럼 매력적인 남자는 본적이 없다’라고 말을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웃을지도 모른다. 남편과 나를 모르는 사람들의 객관적인 기준에서는 더 그럴 것이다. ‘쟤 웃기는 소리한다. 저보다 나이도 열한 살이나 많고 장애인인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말을 하지’라고 말이다. 그래. 그것이 세상의 일반적인 시선인지도 모른다. 장애인과 결혼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아마 장애인들 중에도 ‘방송용 멘트, 접대용 멘트 일거야’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남편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이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내 남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는 1991년 광산매몰 사고로 장애인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된 이후 한동안 방황을 했다. 그런 그가 지금처럼 웃으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피눈물 나는 그의 노력이 있었으리라. 대전 중앙병원에서 병원 생활을 하던 그는, 무의미한 병원생활과 술로 보내는 시간들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과 함께 병원에 도서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대전 중앙병원 도서관에는 초창기그가 작성한 도서관련 내용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붓글씨 모임을 함께 만들어 취미생활을 나아가 재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이 겪었던 힘겨움을 다른 사람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산재관련 상담일도 조금씩 하기도 했다. 장애인들 몇 분이 함께 자조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뭔가를 하기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제대로 법을 공부해보자는 생각에 대학을 가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그가 대학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십 수 년도 전인 그때 우리나라에는 휠체어를 타고 편하게 다닐 만한 대학이 없었다. 그러던 중 그는 방송통신대학을 생각했다. 그의 지난 일기장을 보면 방송통신대학을 가는 것조차도 조금은 두려워하고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그렇게 그는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를 편입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아버님을 모셔와 자신이 모시고 살아야했고 이혼한 엄마와 갈등을 겪던 사춘기 아들을 데려와 아빠로서의 노릇도 해야만 했던 그. 하지만 그는 10년 동안 아들로서의 도리도 딸과 아들에게 아빠로서의 노릇도 당당히 잘 해냈다. 물론 그런 일들과 손목 인대를 다치거나 발에 화상을 입는 등의 일들은 정상적으로 학업을 수행해 나가기에는 방해요인이었지만 그는 결국 방송통신대를 졸업했다.

또한 어린 시절 상처로 인해 늘 불안해보였던 아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시작한 심리상담 공부가 그의 인생을 많이 바꿔 놓았다. 그는 이야기 한다. 중도 장애인들이 장애인이 되는 순간, 아직 우리 사회는 신체재활만을 중요시 한다고. 하지만 장애를 맞이할 때 가장 힘겨운 것은 내부에 있다고. 어쩌면 신체재활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당사자와 가족들의 심리재활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게 그는 심리관련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상담관련 강의를 다니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나눠주고 있다.

또한 그는 장애인 당사자인 자신이 사회복지를 해보겠다며 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 장애인복지학과에 입학을 한다. 충주에서 천안까지 매주 한 번씩, 2년을 꼬박 다니며 학교를 마쳤지만 주변 여건으로 논문 제출이 늦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논문이 늦어졌고 나와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논문을 마친 그는 결국 본인의 노력으로 마무리한 논문조차도 ‘당신이 곁에서 도움이 많이 됐어. 당신 없었다면 이번에도 논문을 마치지 못했고 아마 영원히 포기 해버렸을 거야’라며 자신의 공을 상대에게 돌릴 줄 아는 넓은 가슴도 가지고 있다.

국도주변에 사고 난 차량을 전시해 놓은 것처럼, 장애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산업현장의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서 열 마디 백 마디 안전강의보다 효과가 있다며 ‘여러분들은 절대 다치지 마세요’를 외치고 다니며 산업안전강의 활동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장애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조차도 힘들었을 텐데 오히려 그것을 보여줌으로서 더 많은 장애인이 발생하는 것을 막으려는 그의 생각이 참 존경스러웠다. 간혹 장애로 인해 가족들과 힘들었던 이야기, 특히 어머님 이야기와 딸 이야기를 할 때면 근로자들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힌다. 수십 번 들었을 나도, 수백 번 되뇌었을 그도 그 이야기에 늘 눈물을 흘리고 만다.

뿐만 아니라 남편은 장애인들에게 체육활동은 비장애인들의 취미활동과는 또 다른 의미라며 시체육회가 없는 충주에도 장애인체육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뜻 맞는 분들과 몇 년을 고생했다. 그 결과 작년에 비영리사단법인으로 체육회를 만들게 됐다. 사실 남편은 운동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친구들은 운동장에서 공놀이 할 때 그보다는 나무그늘에서 책읽기를 좋아했던 만큼 본인이 체육활동을 잘은 못해도 누군가 편하게 활동 할 수 있도록 행정 처리를 하는 것은 아주 잘 하는 것 같다.

남편은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하는 일을 지지 해주고 두려워하는 내게 용기를 주는 그런 사람. 하지만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만 잘 해줘서가 아니었다. 비록 장애를 가진 그였지만 그는 단 한번도 ‘난 장애인이니까 뭐든지 사람들이 도와줄 거야. 난 도움을 받아야 돼’라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나도 내가 장애인과 산다는 것을 잊고 살고 있을 만큼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은 스스로 하려 한다. 그리고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특히 아픔을 공감하는 같은 장애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공부를 하고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런 그를 어떻게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나무 키우기-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요

한국산재의료원 UCC공모전 시상식때. ⓒ민솔희 에이블포토로 보기 한국산재의료원 UCC공모전 시상식때. ⓒ민솔희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결혼 생활을 하며 우리는 함께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남편의 권유로 심리상담 공부도 함께 하게 되었다. 강의를 듣고 오는 날 저녁은 늘 남편과 마주앉아 맛난 음식 하나에 맥주 한잔을 따르고 그날 강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불만이 되거나 상처가 되는 일, 혹은 각자 지난 과거의 상처들을 이야기하며 그때 왜 그런 반응 하게 되는지 이야기하며 그렇게 조금씩 상처들을 치유해 나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부싸움을 해도 남편과 미니홈피나 카페를 통해 글로 서운한 점을 이야기하고 그것에 대해 심리적으로 접근해서 이해하다 보니 격한 부부싸움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남편이 산업안전강의를 하거나 상담프로그램 관련 강의를 갈 때도 난 그와 동행한다. 그의 멋진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행운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내게도 목적이 있는 동행이다. 이혼 전 방송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를 편입했지만 중도포기.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남편의 지지 속에 다시 시작한 공부이다. 남편과 연인이 되기 전, 휠체어배드민턴 팀 시절, 그의 권유로 시작한 장애인체육회 후원의 밤 동영상 제작이 인연이 되어 난 동영상촬영과 제작 공부에 더 열을 올렸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체육회 행사나 남편의 활동을 촬영하고 편집하며 독학으로 미디어영상 공부를 해나가는 시간이 참 즐거웠다. 지난해에는 남편의 권유로 한국산재의료원 UCC공모전에서 입선을 하기도 했다. 늘 혼자 다니던 남편도 이제는 나와 다니는 그 시간이 행복하다고 한다.

지난 2월, 우리 집에 경사가 생겼다. 남편은 사회복지사 1급 시험에 한 번에 합격을 했고 남편은 대학원 졸업을, 그리고 딸아이는 대학졸업을, 나 역시 방송대 미디어영상학과 편입 과정을 마치고 졸업을 했다. 그때 난 그에게 휠체어 앉은 그의 키만한 화분을 선물했다. 우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잘 모른다. 남편은 혼자 살 때 그렇게 화분을 키워보고 싶었단다. 하지만 분갈이를 할 수도 들고 다닐 수도 물을 줄 수도 없는 현실에 부딪혀 포기했다고 한다. 우리 집을 장만하고 나와 함께 살면서 나는 화분을 하나하나 구입했다. 남편과 함께 흙을 사다가 분을 골라 심어두면 남편은 잠자기 전에도 분무기로 스프레이를 했고 아침에 일어나면 눈뜨자마자 휠체어에 올라 화분들부터 찾았다. 지금 보면 옆에 있는 아내보다 화분들을 더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도 자주 물을 주다보니 물러서 죽어가는 화분들이 보이 길래 “물 너무 자주 주는 거 아니에?”소리 한마디 했다고 삐치는 바람에 주거니 받거니 며칠을 다툰 적이 있을 정도이니 더 말해야 뭐하리. 하지만 난 안다. 그가 그렇게 화분에 애착을 갖는 그 마음을. 그는 그렇게 화분 하나하나에 물을 주는 것이 아닌 장애로 인해 하지 못해 억울했던 지난 시간들에 선물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지금 우리 베란다에는 한라봉과 진지향. 금귤, 머틀립 오렌지 나무 등이 있다. 다른 화초들도 많지만 요즘 남편은 유실수 키우기에 재미를 붙였다. 올 초에 우리 집에 온 이 녀석들은 직접 우리가 심은 것들이다. 집안 가득 향이 나는 꽃도 피우고 어린 열매를 맺어 지금은 토실토실해져 가고 있다. 잠시 후, 남편이 일어나면 분명 그 녀석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베란다로 나가 한참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오늘은 군대 간 아들이 휴가를 나온다. 동생이 온다며 어제 미리 도착한 딸아이와 남편은 아직도 꿈속에 있다. 새벽이 밝아오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난 제법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저녁에는, 내게는 무척이나 큰 두 아이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무엇을 먹고 어떤 시간을 보낼까 생각하니 벌써부터 들뜬다. 큰 방황 없이 아빠의 옆자리에 나를 받아 준 두 아이와 가족들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 전개하려 한다.

사랑나무 키우기-베란다에서 남편에게 행복을 주고 있는 진지향(귤) 나무. 오늘 아침 모습. ⓒ민솔희 에이블포토로 보기 사랑나무 키우기-베란다에서 남편에게 행복을 주고 있는 진지향(귤) 나무. 오늘 아침 모습. ⓒ민솔희
민박집 러브스토리4-[결혼이야기]-------------다음편에 연재됩니다.

*'민박집 러브스토리'는 민솔희씨와 박종균씨의 러브스토리를 줄여서 만든 말입니다. 에이블뉴스는 민솔희씨와 박종균씨가 직접 쓰는 민박집 러브스토리를 총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기고/민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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