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장애인을 위한 의사소통권리지원센터 설립을 청원한 차강석 씨. ⓒ에이블뉴스DB

여러분, 이 글은 좀 긴 숨으로 읽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뇌병변에 의한 언어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청원 게시판을 개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게시판이라도 없었으면 제 뜻을 대통령님께 어떻게 전하겠습니까? 다만, 아쉬운 것은 20만명의 추천이 있거나 사회적 이슈로 떠올라야 대통령님의 뜻이 담긴 답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처럼 사회생활을 거의 할 수 없는 뇌병변에 의한 언어장애인의 글이 어떻게 20만명의 추천을 받거나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겠습니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한자 한자 정성을 다해 입력해 보겠습니다.

언어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고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 주며 개인을 사회에 연결해 주는 인권 중의 최고의 인권입니다. 그리고 언어장애인들도 인권을 갖은 인간입니다. 따라서 언어장애인들에게도 의사소통권리지원센터를 통하여 언어장애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합니다.

저는 올해 52세를 맞이한 차강석입니다. 순 하디 순한 양띠라서 뇌병변에 의한 언어장애를 입고 숱한 억울함을 당해도 “내 탓”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초등학교도 오줌싸개라는 누명을 쓰고 못 다녔지만, 검정고시를 통하여 사이버대학교 두 곳과 방송대를 졸업했고 시로 등단 등 10여번의 수상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저를 저능아 취급을 했습니다. 솔직히, 저도 저를 거울로 보면 아무 생각도 못하는 바보로 보입니다. 실제로, 뇌병변에 의한 사지마비에 언어장애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겨우 컴퓨터에 롤러트랙볼2라는 보조기기를 연결하여 그것을 발마우스 삼아 왼쪽 발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하고 글도 화상키보드로 씁니다.

10여 년 전부터 장애인자립생활이 붐을 이뤄 수많은 장애인들의 대부분 자립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와 같은 뇌병변에 의한 언어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이 문제입니다. 자립생활에 있어서 활동보조인을 필수입니다. 뇌병변에 의한 언어장애인들이 자립생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활동보조인과의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자립생활의 초기에 겪은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뇌병변에 의한 언어장애인들의 특징은 A를 하려고 신경을 쓰면 B, C, D 등 다른 신경들까지 쓸데없이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결국 의도했던 움직임을 못하거나 비장애인들에 비해 몇 배의 힘이 들어갑니다. 이런 것은 말을 할 때도 예외가 아니어서 말을 하려하면 일단 얼굴부터 이상하게 찡그리고 몸이 비틀어집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싫은 것이라고 오해도 많이 합니다.

그런 제가 약 8년 전부터 자립생활을 했습니다. 자립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의사소통인데, 가족을 떠나서는 의사소통이 더욱 절실했습니다. 평소 일상생활 속에서 활동보조인과 의사소통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급한 용변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전 사지마비 장애라 소변통에 소변을 보는데, 저를 처음 보는 활동보조인은 그것을 모르고 저도 말을 못해서 소변이 급해서 소변통을 갖다 달라고 해도 활동보조인이 제 말을 못 알아 들어서 옷에 그대로 본적이 활동보조인이 바뀔 때마다 부지기수로 되풀이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제 자존감은 무너졌습니다.

또 제가 말을 하려고 인상을 어쩔 수 없이 쓰고 몸을 비틀며 힘들게 밥 달라고 말을 하면 반찬을 줍니다. 물 달라고 하면 뭐라고? 뭐라고? 뭐라고? 하며 오히려 제게 인상을 쓰면서 묻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가 포기를 하고 사전에 저에 관한 매뉴얼을 만들어서 활동보조인이 바뀔 때마다 드립니다.

이것 말고도 어려움이 많은데, 이게 대표적인 어려움입니다. 세상과 소통하기 힘듭니다. 정말 힘듭니다. 이것은 자립생활을 하는 뇌병변에 의한 언어장애인들이 대부분 겪는 고통입니다. 따라서 자립생활에 의사소통권리지원은 필수입니다!

그런 제게 AAC라는 것이 다가 왔습니다. 혹시, AAC를 아십니까? AAC란 보완대체의사소통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입니다. 즉 AAC는 낱말카드와 수어 심지어 누구나 휴대폰에 설치한 SNS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다루는 AAC는 앱입니다. 이것은 뇌병변에 의한 언어장애가 심한 장애인이 말하고 싶은 내용을 글을 입력하거나 그림을 고르면 소리를 내 주는 것입니다. AAC가 글자를 모르는 장애 아동과 지적장애인에 맞도록 그림 위주로 되어 있으나 저 같은 글자를 아는 장애인들은 글자를 입력하여 사용합니다.

AAC를, 저는 사지마비라 비장애인들처럼 손으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부가 장치들을 설치해야 비로써 AAC를 쓸 수 있어서 아주 느리게라도 대화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AAC 앱을 조작할 수 있도록 하는 외부기기인 롤러트랙볼2를 장착했고 전동휠체어나 수동휠체어에 AAC를 휴대하고 다니며 사용할 수 있는 거치대도 설치했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더욱 편하게 하기 위해 스피커도 갖췄습니다.

이렇게 여러 과정을 거치는 데 여러 곳에서 도움을 받으며 많은 시행착오를 했고 굉장히 오랜 세월이 걸려서 놀라운 AAC 덕을 보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제가 AAC를 배우고 익혀 AAC와 인권강사의 자질을 발견하고 인권교육 후에 테스트를 거쳐 정식으로 자격증을 취득했고 AAC로 장애인인권과 AAC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가 AAC의 불모지다 보니, 제가 AAC를 조금 잘 안다고 AAC 관련 발표가 있으면 저를 불러 발표케 합니다. AAC가 있어 제가 비로소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우리나라의 뇌병변장애인이 몇 명인 줄 아십니까? 2016년 현재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5만여 명이라고 합니다. 그 중 25세 이상이 23만 4천여 명이고 언어장애인은 약 70%인 16만 4천여 명이라고 합니다. 또 이 중에서 AAC를 사용 가능한 성인 언어장애인의 연령을 25~64세라고 가정을 하면 16만 4천여 명 중에 6만 8천 8백여 명이 나옵니다.

그럼 6만 8천8백여 명이 왜 중요할까요? 올해 복지부에서 실시 예정인 “장애아를 위한 AAC 기기활용 중재 서비스사업”의 연령이 24세까지로 제한되어 있어서 이 6만 8천 8백여 명은 의사소통권리지원들을 어떤 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6만 8천 8백여 명은 가슴 속은 농익은 간장 항아리처럼 속은 꽉 차고 먹기 좋게 됐는데 퍼낼 그릇이 없어 그대로 썩고 말 것입니다.

이 6만 8천 8백여 명의 언어장애인도 국민이고 인간이여서 헌법 제10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보장된 인권을 누려야 합니다!

제가 서두에서 “언어는 최고의 인권”이라고 했고, 이 말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언어장애인 6만 8천 8백여 명은 인권을 빼앗기고 말을 못해 취업과 연애도 못하여 결국 가정도 이룰 수 없어 홀로 집안과 시설에서 아무런 쓸모없이 먼지처럼 살다 죽어야 합니까?

언어장애인 6만 8천 8백여 명에게도 인권을 돌려주는 길은 의사소통권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그 길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청각장애인들(27만여 명, 25~64세 8만 1천여 명. 통계청)을 위한 수화통역센터가 전국 170(480명 당 1곳)여 곳에 설립돼 있는 것처럼, 의사소통권리지원센터도 각 지역에 140(480명 당 1곳)여 곳을 설립하는 것뿐입니다.

의사소통권리지원센터를 하루속히 설립하여 여기에서 의사소통 앱 교육자와 언어치료사 그리고 보조공학사 등을 상주케 해서 언제든지 언어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을 지원해야 합니다. 특히, 의사소통권리지원센터에서는 AAC 교육과 당사자 자조모임, 의사소통에 필요한 상담과 평가, 교육과 장비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AAC를 자주 접하고 관련 교육을 하다 보니 “의사소통은 권리”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분명히 우리나라의 법과 우리나라도 비준한 UN 법에서도 의사소통은 권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3조(정보접근ㆍ의사소통에서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의무) 1항을 봐도 의사소통보조기기를 국가에서 제공하도록 명문화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가입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제21조, “표현과 의견 및 정보 접근의 자유”에서도 의사소통보조기기(AAC)를 국가에서 제공하도록 명문화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법률이 제정되어 있는데, 그동안 정부조차 법을 안 지키고 시행령과 시행규칙 그리고 조례 제정 등에는 무관심했습니다. 이것은 대통령과 국가공무원의 직무유기와 태만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지요? 지금이라도 빨리 국가적 차원에서 의사소통권리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법치주의 국가입니다!

제가 뇌병변에 의한 사지마비에 언어장애가 있어도, AAC 덕분에 2016 국제보완대체학회(ISAAC)의 컨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 캐나다에 다녀왔습니다.

캐나다에서는 학령기와 성인기에 맞추어 AAC 지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학령기에는 어린 학생들이 AAC를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지원하며 특히 그들이 속한 학급의 담당 교사가 월 1회 AAC 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성인기에도 AAC 지원은 계속되는데, 비단 뇌병변에 의한 언어장애인 뿐 아니라 사고나 질병 등으로 인해 중도장애인이 된 사람들도 폭넓게 지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AAC 지원을 신청하면, 다양한 AAC 중 어떤 것이 가장 대상자에게 적합할지 적용하고 이후 이를 교육시키고 모니터링 하는 방식으로 지원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애주기별로 AAC 시스템이 지원된다고 합니다. 이 생애주기별 지원은 비단 캐나다뿐만 아니고 OECD 회원국에서는 대부분이 그렇다고 합니다.

다행히 서울시에서는 지난 3년 동안 시청 앞과 서울시 의회 앞에서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의사소통권리 후속 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과 1인 시위를 하여, 2017년 12월 20일에 드디어 서울시의회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진철 의원님이 서울특별시 장애인 의사소통 권리 증진에 관한 조례를 발의하셔서 통과됐습니다! 그래서 서울시에서는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의사소통권리지원센터를 설립과 사업들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은 제4차 산업혁명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가전제품부터 무인 자동차까지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는 무인 자가 비행기도 생산될 것입니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시대”가 곧 올 것입니다. 그것들의 중심에는 “언어”가 있습니다. 가전제품과 무인 자동차 등은 말로 작동하는 것이라 언어장애인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4차 산업혁명 덕으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편리한 시대의 첨단기기들을 의사소통권리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또 언어장애인들도 4차 산업혁명을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AAC 앱 개발과 보조도구 등을 개발로 이어지는 과정들이 4차 산업혁명의 일환입니다.

AAC는 단순한 보조기기가 아니라 표현의 또 다른 방식입니다. 언어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은 AAC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기가 있다는 것 자체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더 많은 언어장애인이 AAC를 통해 장애와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국민들의 관심, 정부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시지 말고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의사소통권리지원센터를 조속히 설립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을 직접 뵙고 싶습니다.

*에이블뉴스 독자 차강석 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차강석 님은 사지마비에 언어장애가 있는 뇌병변장애인으로 장애인인권과 AAC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언어장애인들을 위한 의사소통권리지원센터를 설립해 주십시오.”란 제목으로 청원, 진행 중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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