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미희 시인의 ‘친밀한 타인’, 장애인 개인예산제의 불씨 되길 이미지.ⓒ일러스트 연두

친밀한 타인

설미희

눈을 떴다

온 우주에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몸만 둥둥 떠 있다

유일하게 감각이 살아 있는

이 잔인한 귀도 눈을 뜬다

지금은

남의 손이 아니면

소변조차도 뽑아낼 수 없는 몸뚱아리

알람 소리에

감정 없는 기계적인 메마른 손길이

아랫도리에 관을 꽂는다

바우처 카드 720시간

늙은 여자가

친절하게 바코드를 찍는다

연명을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해서

소변 줄을 꽂아 주고 있을까

집 안 가득

소변 줄을 타고

아직 살아 있다는

존재의 냄새가 난다

이 시는 중증의 장애인과 활동지원사의 관계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화자는 하루 24 시간 돌봄이 필요하고 타인은 나이가 많은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다.

사람은 죽은 듯이 잠에 빠져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면 눈을 뜬다. 화자는 눈을 뜬 순간 움직여지지 않은 몸이 인식되어 한없이 무력해진다. 눈과 함께 귀도 떠져서 세상 이야기들이 귓속으로 들어오는데 화자는 그런 일상에서 배제된 삶이기에 보고 듣는 일이 잔인한 고문이다.

화자는 이렇게 매일이 고통스러운데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기계에 의존해서 일어난 활동지원사는 화자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이 은밀한 곳을 함부로 드러내게 하여 소변줄을 끼운다. 그리곤 바우처를 찍는다. 그것은 돈을 버는 행위이다. 그녀도 살기 위해 역겨운 소변줄 꽂기를 하는 것이다. 화자는 소변줄에서 새어나온 찌린내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장애인과 활동지원인의 사이는 친밀한 관계이다. 목욕도 시키고, 화장실도 함께 들어간다. 가족이 아닌 남에게 몸을 보여준다면 친밀한 사이임에 분명하지만 활동지원인은 그것이 직업인 타인이라는 것이다.

이 시는 2022년 구상솟대문학상 수상작으로 설미희시인은 2009년 장애인콜택시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로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여 필력을 인정받았다. 설미희작가는 장애 때문에 장애인 소재 글을 쓰는 것을 거부하는 대신 오히려 장애에 대한 경험으로 이렇게 장애인의 현실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어(詩語)로 전달하고 있다.

구상솟대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맹문재 교수는‘설미희 시인의 시 쓰기는 단순한 취미나 재능의 표현이 아니라 생을 영위하고자 하는 절박한 바람이면서 구체적인 행동이기에 폐부를 찌른다’고 극찬하였다.

장애인예술에서 장애인문학이 가장 소외를 받고 있어서 안타깝다. 하지만 장애인문학이야 말로 장애인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활동보조인이 친밀한 타인이 된 것은 바로 바우처 찍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서비스 대상자로 생각하기보다는 바우처찍기의 수단으로 여긴다. 노동에 대한 댓가를 제3자가 주게 되면 이용자를 고용인으로 생각하지 않기에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에게 급여를 직접 주는 윤석열정부 공약인 개인예산제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설미희의 시‘친밀한 타인’이 개인예산제의 작은 불씨가 되리라 믿는다.

*이 글은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방귀희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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