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1월 26일 오후 청와대에서 포럼 참석차 방한 중인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을 만나 OECD에서 저술한 한국 관련 연구 책자를 전달받고 있다. ⓒ 연합뉴스

마침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고가 나왔다. OECD 앙헬 구리아(Angel Gurria) 사무총장은 BBC와 한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pandemic,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쇼크 영향이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하며 전 세계 경제가 회복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들 G20 국가들의 경제 예측을 경제활동이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감소했다 재반등하는 V자형일 것이라고 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U자형 곡선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나마 올바른 결정을 내리면 L자형이 나타나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어둡고 긴 터널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바이러스에 급습 당한 인류 사회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더 큰 위기는 OECD의 경고 대로 세계 경제 위기가 도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류 문명 사회 전반으로 확산한다는 데 있다. 대다수 역병이 그러했듯이 코로나19 역시 사회 재난으로 문명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남게 될 것이다.

팬데믹으로 세계 각국이 자국민의 이동을 통제하면서 사람이 다니지 않아 거리가 한산한 도시공동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인적이 끊긴 도시 거리엔 평소 볼 수 없었던 야생동물들이 잇따라 출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심지어 태국 롭부리(Lopburi)에서는 영화 <혹성 탈출>이 연상될 정도로 도심 한가운데에서 원숭이 수백 마리가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미생물 바이러스에 급습당한 호모 데우스

미래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의 야심작이 <호모 데우스>였던가. 거기서 하라리는 21세기 인간이 경제성장 덕분에 기아와 역병, 전쟁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짐승 수준의 생존 투쟁에서 인류를 건져 올린 다음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라고 설파하며 인류가 궁극적으로 '불멸', '행복', '신성'을 꿈꿀 것이라고 예측한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푸른별 지구의 지배자로 등극한 인류는 지금의 지질시대를 지구 생명체가 함께하는 홀로세(Holocene)가 아닌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로 호칭을 변경하면서까지 기고만장이다.

그러던 인류가 쥐라기 거대공룡도 아닌 세균보다 작은 미생물 바이러스에 꼼짝없이 치명타를 입고 있다. 생태계의 파괴자 인류를 향한 지구생태계의 보복인가.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처럼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기 위해 끝없이 높게 쌓아 올리다가 단숨에 기가 꺾인 꼴이다.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부리며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울타리 안 세상과 울타리 밖 세상으로 갈라져 버린 불평등한 계급사회, 대다수는 울타리 밖에서 헤매고 있는 역병보다 더 기괴한 작금의 세상에 코로나19라는 이름의 바이러스가 다시 찾아왔다. 내게는 파괴된 생태계의 경고만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준엄한 경고처럼 느껴진다.

국립중앙의료원 의료진이 촬영한 청도대남병원 내부 모습 ⓒ 국립중앙의료원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사회, 예방 차원에서 사회적 면역력 높여야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첫 집단 희생자가 청도 대남병원 폐쇄병동의 정신장애인들이었던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집단수용 폐쇄병동이라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먼 곳, 가장 깊숙한 곳에 갇혀 있었던 그들부터 바이러스가 찾아내 희생을 시킨 것으로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취약점이 어디인지를 여실히 드러내 준 까닭이다.

국가란 무엇이며 사회공동체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헌법은 국가의 가장 큰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울림을 전문에서 마지막 조항까지 거듭거듭 전해주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제10조와 '①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는 제34조는 보다 세밀하게 그것을 짚고 있다. 모든 국민들에게 이러한 헌법적 가치는 온전히 실현되고 있는가.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모두에게 바이러스 박멸이나 방역작업에만 몰두하지 말고 지구상 어느 국가보다 양극화 현상이 심각한 우리 사회의 재구조화에 나서기를 촉구하고 있다. 지구촌 시대를 흔히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사회'(society living with virus)라 부르는데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2014년 에볼라, 2015년 메르스 등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감염병 발생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국가방역체계 확립을 비롯해 공공의료 시스템 강화와 같은 단기적인 대책과 더불어 장기적인 예방 차원에서 장애인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을 보듬으며 사회적 면역력을 꾸준히 증강해가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은 메르스 사태로 축적한 경험 때문인지 코로나19 사태 위기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의료 현장에서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인 의사, 간호사, 병원 직원들의 노고에 경의와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코로나19 사태 과정에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겪었던 새로운 경험 역시 앞으로 우리나라의 사회적 면역력을 높이는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소설 페스트 보다 더한 소설 같은 현실 알베르트 카뮈의 소설 < 페스트 >를 읽은 것은 문학소년기 때였다. 그런 소설 속의 세계가 근 반세기를 지나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오히려 현실이 소설적이다. ⓒ tvN

카뮈의 <페스트> 그 절실한 위기극복의 연대의식

코로나19 사태도 결국은 종료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바이러스는 가난한 순서대로 밖으로 불러냈다.

바이러스는 전후방을 가리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안전망 얇은 곳을 파고들었다.

바이러스는 허약한 시스템을 감염시켰다.

바이러스는 '고립된 가난'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바이러스는 '제도의 공백지대'를 찾아냈다.

바이러스는 이 세계의 서열을 확인시켰다.

3월 23일 보도된 한겨레 기사 <생계가 다급할수록.. '재난의 맨앞자리'에 불려나왔다>의 서브타이틀 묶음이다.

알다시피 바이러스는 자체 생존능력이 없기에 기생할 숙주가 필요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될 취약한 숙주가 존재하는 한 바이러스는 계속 맹위를 떨칠 것이다.

재난긴급구호자금 투입이나 재난기본소득 지급 같은 처방도 필요하지만, 바이러스가 침투할 곳이 이토록 많은 허점투성이의 이 위험사회를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으로 공동체의 면역체계를 튼튼히 해 나가도록 해야 하는 이유다.

알베르트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읽은 것은 문학소년기 때였다. 그런 소설 속의 세계가 근 반세기를 지나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오히려 현실이 더 소설적이다.

오늘도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환자 현황판에는 코로나19 관련 수치들이 올라와 있다.

'3월 30일 0시 기준 확진환자 9661명, 완치(격리해제) 5228명, 치료 중(격리 중) 4275명, 사망 158명'

이 수치는 결코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 우리 이웃의 삶과 죽음의 실존적 기록이다. 그러기에 나의 것이기도 하다. 카뮈가 말한 위기 극복을 위한 연대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이글은 정중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맹 수석부회장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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