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수백 수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곳으로 출근한다. 보이스오버(아이폰에서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음성기능)의 음성이 동료들에게 전혀 어색하거나 신경써야 하는 성가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그 곳, 바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하고 있는 국내 유일 애플 직영 스토어(애플 가로수길)이다.

어느새 내가 이 곳에서 멋진 동료들과 함께 한지도 1년이 다되어 간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 곳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많이들 궁금해 하는 것 같다. 아마도 처음 내가 이 곳에 올 때 가졌던 걱정과 같은 마음에서일 것이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장애인 고객들만 상대하거나, 별도의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이 곳에서 비장애인 직원들과 똑같은 일을 한다. 애플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다양한 제품들을 고객들에게 소개하고 추천하고 제품을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문제가 있어서 방문한 고객들의 제품에서 보여지는 문제 중에서 간단하고 바로 해결이 가능한 것들은 신속하게 처리한다.

사람을 어려워하고, 혼자 놀기 좋아하는 내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애플 제품 사용에서 오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경험들을 웃으며 공유하다 보면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나'하고 놀랄 정도로 신기하고 보람을 느낀다.

물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쳐가는 수백명의 사람들은 내가 시각장애인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말 없이 눈 앞으로 자신의 용무가 적힌 화면 상태를 드리밀거나, 신기한 것을 보는듯 "안 보이시는거 맞아요?"라고 묻기도 하고, 대화 도중 갑자기 사라져 나를 독백남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퍽 난감한 경험이다.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들면 언제든 흥쾌히 나에게 달려와 주는 동료들이 있어서 늘 밝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문득 1년 전 일기장을 펼쳐보니 이 곳에서 함께 하게 된 그 설레임과 가슴 벅찬 감동들이 다시 떠올랐다. 믿어지지도 않았고 함께 할 수 있어서 눈물나게 고마운 동료들이라고 그렇게 적어놨던 그들 역시 나처럼 애플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아서 이 곳을 선택 했을까.

나는 어린시절 부터 컴퓨터와 기기 다루는 것에 강한 끌림을 느꼈던 듯 하다. 사람처럼 말을 하는 컴퓨터는 나를 미지의 세계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그때부터 컴퓨터와 친하게된 나는 게임을 했고, 모뎀으로 온라인 머드를 하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배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컴퓨터가 단순 기기가 아니라 내 하루 일과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은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느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첫 휴대전화를 갖게 되었다. 아쉽게도 나는 혼자서는 문자를 읽을수도 전화번호를 검색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상대방의 컬러링을 외워, 문자가 온 번호에 통화 버튼을 눌러 통화연결음의 앞부분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문자를 읽어달라고 하는 것이 일상이였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된 후에는 상황이 조금 좋아져, 인터넷이나 컴퓨터에 설치하는 보조 프로그램으로 문자 내용을 확인하고 전화번호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으나 기기를 바꿀 때마다 혼자서 알람을 설정하거나 벨소리를 바꾸는 것은 음성이 지원되지 않아 여전히 어려운 과제였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이 핸드폰에 대부분의 기능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믿으며 살았다.

내가 아이폰을 알게 된 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난것과 다름이 없었다.그 동안 폴더폰이 아닌 스마트폰이라 불리던 그것은 긴 문자를 읽지 않았고, 하위 메뉴에 진입하면 도무지 내용을 알수 없었던 나에게 아이폰과의 만남은 너무나도 큰 충격이였다.

이미 탑재된 작은 기능만을 사용하고 큰 작업은 컴퓨터로 하던 것이 당연하던 그 때 아이폰은 사람들이 직접 제작한 앱을 서로 공유하고 설치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마치 손 안의 컴퓨터처럼...

'터치로 된 폰을 시각장애인이 사용할수 있을까?' 하는 사람들의 물음표를 비웃듯 그렇게 멋지게 등장한 아이폰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다.

나에게 '애플' 도전이란 나는 기업이 시각장애인 등 일부 소비자들의 니즈를 고려하여, 고민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노력을 했던, 철학을 가진 회사에서 내 모든 것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아 애플에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되었다.

수십개의 녹음테이프와, 가방이 찢어질 것 같이 무거운 수십 권의 점자책으로부터 세상을 변화시킨 '점자컴퓨터'를 만든 회사에 도전했던 것처럼 지금 나는 이 곳(애플)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에 좋은 에너지와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함께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제품을 구입하는 이유가 목적이나 기능이 필요해서라 볼 수 있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우리가 삶의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위해서가 아닐까?

나는 제품이 단순 기능을 넘어 사용자가 실질적으로 사소한 불편함 없이 얼마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가 제품의 가치를 돋보이게 한다고 믿는다.

'가치'란 목소리가 적은 소비자들까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철학이 담긴 세상이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소수의 사용자까지도 포용 가능한 철학있는 제품, 기능을 기대한다.

*이글은 국내 유일 애플 직영스토어에서 근무 중인 장영운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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