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두 팀이 공평하게 아홉 번씩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는 점이 마음에 들고, 다양한 기록이 있어서 경기가 끝난 후에도 영원히 보존되는 점이 의미 있다.

특히 해설자의 설명만 듣고도 경기 상황을 알 수 있으니 몰입감이 높다. 아버지와 함께 라디오 중계를 들으며 이 종목에 빠져든 지 햇수로 벌써 20년째다.

내가 응원하는 팀인 롯데 자이언츠는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구단이다. 시즌 중에는 매일 저녁 한껏 기대하며 텔레비전을 켠다. 사실 환희보다는 낙담으로 끝나는 날이 더 많지만. 이 외에도 매일 기사를 검색하고, ‘듣는야구’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하는 등 생활 속에서 야구를 즐기며 살고 있다.

야구장에 가서 경기를 관람하는, 일명 직관도 무척 좋아한다. 사실 해설자의 설명에 의존해야 하는 나는 직관을 하면 경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야구장을 즐겨 찾는 이유는 응원 때문이다.

수천 명의 사람이 좋아하는 팀의 승리를 바라며 한마음으로 노래하고 환호하며 때로는 탄식한다. 그렇게 세 시간 남짓 응원을 하고 나면 목은 좀 아파도 일상의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기분이 든다.

솔직히 말해, 응원을 빼면 나는 야구장 가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1년에 한두 번씩은 직관을 하곤 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롯데가 수도권에 올라오는 날짜에 맞추어 세 곳의 경기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첫 직관은 2019년 4월 26일 금요일,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였다. 처음에는 지인과 함께 갈 생각이었지만 같이 갈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무조건 가장 열기가 뜨거운 응원석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같은 팀을 응원하고, 시끄러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거기다 홈팀도 아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어쨌든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포기하려고 할 때, 문득 혼자서 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차피 경기가 시작되면 응원석을 벗어나지 않으니, 모든 과정이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야구를 좋아하는 전맹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질문했다. 그런데 절실하게 찾지 않은 탓인지, 주변에 혼자 직관한 전맹이 없었다. 그래서 가까운 대중교통이나 경기장 출입구의 위치를 확인하고 유명한 먹거리를 검색하는 등 사전 준비를 꼼꼼히 했다.

예매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았다. 예매 사이트의 접근성이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응원석은 경쟁이 치열해 혼자서 원하는 자리를 선점하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홈팀인 두산베어스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했다. 시각장애인이 혼자 가면 안내가 가능한지 문의했더니 매표소에 와서 직접 부탁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미리 방문 시간을 정하면 매표소 직원에게 전달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규정이 없어서 어렵다며 거절했다. 예상치 못했던 바 아니었지만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고 단 0.5초 만에 당한 거절이라, 고작 규정이 없어서라는 궁색한 이유가 굉장히 야속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경기장이 있는 종합운동장까지 갔다. 그리고 지하철역 5번 출구에서 치킨을 파시던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매표소에 도착했다. 처음에 3분쯤 헤맸는데, 알고 보니 30초밖에 안 걸리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발권을 받은 후, 경기장 출입구까지 안내를 부탁했더니 인력이 없어서 힘들단다. 본인은 매표소 담당이고 출입구부터는 경호업체에서 담당한다나?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는 행인을 붙잡고 가까운 출입구까지 안내해달라고 했다. 출입구에 도착해 표를 보여주고, 소지품을 검사하는 직원에게 한 번 더 안내를 요청한 끝에 3루 내야석 담당 경호원을 만날 수 있었다.

경호원의 도움을 받아 과자와 닭강정을 구입하고, 무사히 예매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지하철역까지의 안내를 요청했다. 또한 경기 중에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요구 사항이 엄청 많았는데 너무나도 흔쾌히 응해주셔서 무척 감사했다.

그 후에는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고 신나게 먹고 마시며 경기를 즐겼다. 한쪽 귀로는 해설자의 중계를 듣고 한쪽 귀로는 응원단장의 구호를 들었다. 잠깐 비가 내렸고 생각보다 날씨가 추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큰 점수 차로 지고 있다가 9회에 겨우 몇 점 낸 건 슬펐지만... 아무튼 재미있었다. 경기가 끝난 후,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 지하철역까지 나왔고, 무사히 귀가했다. ‘나 홀로 첫 야구 직관’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사실 기자 한 분이 야구장에 함께 가서 나의 직관을 취재하셨다. 그 기사의 제목은 ‘앞이 안 보이는데 야구 직관이 가능할까요?’였다. 미리 밝히지만, 기자님을 원망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분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동행하셨으니까.

기사의 제목이 이렇게 정해졌다면 정말 전맹 혼자 직관이 가능할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겠지. 신기했다, 이게 기사거리가 될 수 있구나! 이는 비장애인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장애인에게는 높은 장벽으로 인식된다는 뜻일 터. 씁쓸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야구장에 총 다섯 번 갔다. 그중 두 번은 혼자, 두 번은 비장애인과 함께, 나머지 한 번은 전맹 한 사람과 함께 갔다. 야구장을 여러 번 방문하면서 담당 직원의 친절도에 따라 내가 받는 서비스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경기도에 위치한 모 구장의 경우는 안내센터까지만 가면 발권부터 좌석을 찾는 모든 과정에 직원이 동행해 주었다. 심지어 경기가 끝나고 택시가 잡히지 않아 20분간 기다릴 때도 경호업체 직원이 끝까지 대기해 주었다. 정말, 죄송할 정도로 친절했다.

반면 서울을 홈으로 쓰는 모 구단의 경우는 경기장에 입장하여 경호원을 만나기는 했는데 먹거리를 사거나 화장실에 가기 위해 동행을 요청했을 때 싫은 티를 팍팍 내거나 거부했다. 전화번호를 받아 두었지만, 경기 중 두 번 걸었던 나의 전화에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 그때는 옆자리에서 응원하던 사람에게 부탁하여 지하철역까지 나와야 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어떤 구단은 시각장애인에게 친절하고 또 다른 구단은 불친절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몇 번이나 가봤다고, 그거야말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이런 차이는 구단별로 일정한 고객 응대 지침이 없기 때문에 생긴다. 그런데 지침이 없는 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이다.

낯선 곳에 가서 부탁하는 일이 서툴거나 ‘다들 바쁜데 나까지 부탁을 하기엔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전맹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고객으로서의 대가를 지불했는데도 서비스 제공 여부가 개인의 임기응변이나 친절한 직원을 만나는 운에 달려 있다면 납득이 되는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지침이라고 해서 거창해 보이는데, 절대로 어렵지 않다. 지하철을 생각해 보자. 나는 지하철과 목적지가 가깝기만 하다면 못 가는 곳이 전혀 없다. 역사에 전화를 걸어서 요청하면 역무원이나 사회복무요원이 승하차와 환승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적어도 수도권과 대전, 대구, 부산은 그렇다. 광주 지하철은 타본 적이 없지만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국의 지하철역에서 가능한데, 몇 안 되는 야구장이라고 어려울 건 무엇이란 말인가. 구단이 경호업체에 업무를 전달할 때 시각장애인에 대해 언급만 해주면 된다. 5분 정도의 안내보행 실습이 추가되면 더 좋다. 만약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별로 실효성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가 자주 가면 된다.

흔히 수준 높은 복지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복지 서비스가 비싼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전맹끼리 야구를 직관하는 정도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는 공연장이나 영화관도 마찬가지이다. 장애인이 가격을 지불한 고객으로 대접받는 순간, 문화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장벽은 많은 부분 허물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이 끊임없이 요구하고 문을 두드리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나는 올해도 야구장에 종종 갈 것이다. 경기 일정을 확인한 후 보고 싶은 경기를 이미 다 정해 놓았다. 혼자서도 가고, 다른 전맹과도 갈 것이다. 작년에는 한 명이 최대였는데, 올해는 세 명 쯤 같이 가고 싶다. 야구를 좋아하는 전맹들이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난 2017년, 한화 이글스 구단은 야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135개의 야구 용어를 수록한 ‘야구 수어 사전’을 출간했다. 영화 ‘글러브’의 모델이 되었던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 등 전국에서 야구를 즐기는 청각장애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아는가? 많은 시각장애인이 야구장에 가면 수어 야구 사전처럼 구단이 먼저 나서서 매뉴얼을 만들어줄지. 그런 날이 오면 전맹이 야구를 직관하는 일은 너무나도 흔해서 더는 기사로서의 가치가 없어질 것이다. 변화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이 글은 오랜 롯데 팬이자, 신목중학교 교사인 안제영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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