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장년이라는 나이로 나누어진 두 세대도 요즘 장애인 비장애인과 비슷한 알고리즘으로 갈등이라는 것을 겪고 있는 듯하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두 집단은 사실 서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아는 대로 행동하는 대부분이 갈등의 불씨가 된다.

만약 시간이 500년이나 천년쯤 전이었다면 그런 세대 차이는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도 '논어', '명심보감', '사자소학'을 읽었고 아버지도 그리고 아들도 그렇게 했다.

선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과거를 준비했고 나의 아들도 그리고 그 다음 세대도 장원급제를 꿈꿨다. 나라의 위기를 대비하여 활을 쏘고 말을 탄 것도 가부장적인 가족의 분위기도 수백년간 변하지 않는 전통이자 불변의 규칙에 가까웠다.

가업을 계승하고 가치를 이어가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내가 해 봐서 아는데..." 혹은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내 나이 되어봐라!"로 시작되는 말씀들은 적중률 100%의 예언자의 말씀과 같았다. 나보다 먼저 태어난 이들의 고민이 미래의 내 고민이었고 그 것들을 의지적으로 맞추려고 할 필요성이 없었다. 그냥 "해 봐서 아는데..."라고 하면 믿고 따르면 되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그 변화의 속도를 너무도 빠르게 높여갔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할아버지와 '새마을 운동'을 경험한 아버지 그리고 '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군부와 맞서 싸운 아들은 근본적인 가치가 달랐다. "해 봐서 아는데..."는 더 이상 아무 의미 없게 되었고 아들세대의 "책 보고 배워서 아는데!!!"도 아버지 세대에겐 통하지 않는 말들일 뿐이었다.

고민의 간극은 이미 양극을 달리는데 아직도 스스로가 알고 있는 다른 세대들의 고민을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갈등의 시작이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경제생활의 기본은 저축이라고 배웠다. 나라에서도 매 년 '저축왕'이라는 이름으로 유명연예인과 정치인들에게 상을 주었다. 초저금리 시대를 사는 요즘 친구들과 그 때의 어른들이 스스로의 가치만을 주장한다면 애초부터 대화는 불가능하다.

출산정책이라는 것도 '힘닿는 데 까지 낳는 것이 국력이다'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거쳐 '잘 낳은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로 변해갔고 지금은 결혼은 선택이거나 미친 짓이라고 믿는 시간이 되었다.

보릿고개를 말하는 어른들에게 "배고프면 빵이나 라면이라도 먹지 그랬어요?"라고 묻던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었고 그 어른들은 무상급식 세대의 아이들에게 이해 받지 못하는 세대가 되어간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읽은 책도 다르고 가치의 지향도 다른 세대들의 생각이 다르고 정치지향이 다른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문제는 이제는 통하지 않는 "해 봐서 아는데!"를 주장하는 어른들과 스스로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다름이 아닌 옳지 않음으로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오만인 것이다.

문제의 해결은 서로를 온전히 모른다고 생각하는 겸손한 인정으로 시작 가능하다.집단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민의 결을 맞추는 의지적 사고가 필요하다.

내가 태어나던 1981년도에 비해 나름 평등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는 남성과 여성의 문제에서 난 그 해법을 찾는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여학생들은 가정을 배웠고 고등학교 졸업시즌이 되면 요리나 바느질 등을 분리된 교실에서 따로 가르쳐 주었다.

조금 더 나이를 더해 가면 신부수업이라는 것을 받았고 직장의 선택도 꿈의 실현보다는 안정적인 가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여성은 고등학교 정도의 배움이면 충분하다는 말에 큰 반감을 가지지 않았었고 집안의 대소사는 남자 어른들끼리 논의하는 장면이 익숙했다.

그에 반해 남학생들은 기술을 배웠고 공부를 잘해야 했고 돈을 잘 벌어야 예쁜 색시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자극받아 더 열심을 다했다. 여자아이들은 소꿉놀이를 가지고 놀고 분홍색 옷을 입어야 하고 남자아이들은 파란 옷을 입고 로봇을 가지고 노는 것이 정상이라고 이야기 했다.

오늘날 이 시점에 이런 것이 전통이고 옳은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그는 순식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성평등의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지만, 남성과 여성은 교육의 수준이 비슷해졌고 성역할의 구분이라는 것도 모호해지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누가 누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역할을 나누는 것이 보편화 되었다. 서로를 인정하게 되었고 존중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고민의 결을 맞추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함께 할 수 있을까?

난 당장은 조금 힘들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비장애인들이 스마트택시나 퀵보드의 공유경제를 고민하는 요즘도 장애인들은 대중교통의 원활한 탑승을 꿈처럼 여긴다. 비장애인에겐 당연한 현실이 장애인들에겐 이상이라고 여겨지는 불평등의 세상이다.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며 창대한 꿈을 꾸는 비장애 대학생들 사이에서 장애대학생들은 강의실의 이동과 교재의 수급을 걱정한다.

고민의 결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다르다.

"너도 내 나이 되봐라" 하는 근거 없는 꼰대와 "아버지가 뭘 안다고 그러셔요?"라고 대드는 버릇 없는 아들의 갈등보다도 어쩌면 더 큰 간극을 가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고민의 결을 맞추는 것이다. 빵 한 조각을 지키기 위해 핵을 계발하는 나라와 자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쟁할 곳을 찾는 강대국이 함께 하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행한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최저시급 10원을 높이기 위한 발버둥과 1억짜리 술도 모자라 약을 먹고 성을 탐하는 뉴스가 공존하는 현실의 세상은 너무도 슬프다.

가장 기본적인 고민의 결들을 맞춰간다면 우리는 많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불과 100여 년 전의 미국 남성들은 수영장에서 웃통을 벗을 수 있게 해달라고 투쟁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패럴림픽은 1988년이 시작이고 불과 7번 밖에 치러지지 않았다.내가 지금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즐기는 것들은 불과 수십 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파격이었던 것이다. 마치 몇 년 전 혁신이라는 이름을 달고 왔던 스마트폰이 이제는 익숙해짐을 넘어서 필수품이 된 것처럼 말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조금 다르게 사는 사람들과 고민의 결을 맞춰보자!

우리는 아버지와 즐겁게 정치이야기를 나누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솔직한 생각을 나누면서 양파보다 삼겹살을 좀 더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난 천 원짜리 쥐어주던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리고 할머니의 팔을 빌려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올림픽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수많은 소수들이 함께하는 진정한 평화의 축제가 될 수 있다.이 모든 것은 의외로 멀지 않은 미래에 가능하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서두르지 않으면 서로의 고민의 간극은 더욱 빠른 속도로 그 차이를 넓혀가고 가능의 영역을 불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

답이 보이는 지금이 서둘러야 할 시간이다.

*이 글은 RI Korea 청년특별위원회 위원장인 한빛맹학교 교사 안승준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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