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여성장애인 홈헬퍼지원 사업’ 전면 수정을 요구한 장애여성자립생활센터 파란.ⓒ에이블뉴스DB

나는 올해 48살이 되었다. 나의 장애 이야기를 조금하자면, 초등학교 때부터 척수염을 앓았고 신경마비가 와서 중학교 2학년 중퇴의 학력으로 21살까지 재가 장애인으로 살았다.

재가 장애인이란 일 년에 집 밖을 한두 번 나갈까 말까 할 정도로 외출이 없는 장애인을 말한다. 외출하더라도 주기적이고 주도적인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하루를 주로 집에서 보내며 사회 참여에 원활하지 못한 장애인이다.

우리 엄마는 부잣집의 막내딸이었지만 모든 재산은 남자 형제에게만 상속되었고, 가난한 아버지와 결혼하여 우리는 가난을 물려받았다. 가난한 집이 그러하듯 의료·교육 환경은 열악하여 나의 장애는 잘 치료되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존 하는 삶이 이어졌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나는 왜 집에만 있나?’ 하는 의문을 안고, 텔레비전과 음악, 자연, 책을 친구 삼아 지내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늘 사람이 그립고 친구가 그리웠다. 사람은 사회 안에서 살며 인간됨을 완성하는데, 나의 사춘기는 친구다운 친구 한명 만들지 못한 채 흘러갔다. 그러던 중 장애인단체의 회원 방문을 받아 운전을 배웠고, 차를 몰고 다니며 사회와 교류하고 꿈을 키워 22살의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연애를 통해 장애가 있는 내 몸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지 경험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만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하고 본능적으로 성관계에 대한 열망이 일었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 없이 시도하면서 나는 가슴 아픈 수치심을 맛보았다.

척수장애인이 성관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방광을 비우는 일이다. 그런 교육이나 지원을 받아 본 적 없이 장애가 있는 몸으로 사랑을 할 때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의식과 욕망의 실현체인 몸이, 개인적·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때 장애를 가진 몸에 대한 이해가 없을 경우 몸의 통로가 제대로 가동 할 수 없다. 장애로 인한 실패의 아픔을 겪은 충격으로 자살을 기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자연 안에서 깨달은 나는, 나처럼 상처받은 장애여성들을 위한 인권 운동을 해야겠다는 의지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독학으로 대학교 문을 두드려 드디어 제주도에서 서울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가난의 근본, 자본과 노동에 관한 공부를 하며 숭실대학교를 상대로 중증장애인 교육권 투쟁도 이어갔다.

3년여간의 소송에서 승소하여, 힘들고 어려웠지만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가 장애인에게도 있다는 판결에 기뻐하며, 존엄한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사회적 변화를 꾀하려 노력하였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가 있는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존재도 부정당하기 일쑤이다. 나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생물학적 여성성을 의심 받았고, 심지어 고착화된 성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여성이란 이유로 결혼제도 진입과 임신·출산도 부정당했다.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이 무참히 짓밣히는 질문들 앞에서 좌절하기도 했다. ’그 몸으로 임신 할 수있니?’ ’생리는 하니?‘ 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더 아이를 낳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았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것은, 장애 여성에게는 단순히 엄마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넘어 큰 삶의 선택이자 기회이며 실현이 어려운 소망을 깨고 싶은 도전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금기의 영역처럼 존재하는 장애 여성에게 대한 편견을 깨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 셋을 낳아 키우고 있다. 살면서 참 잘한 선택이고 행복한 선택이다.

그러나 아이 셋을 키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엄마의 피와 살과 영혼이 담긴 삶을 통째로 아이를 키우는데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피눈물 나는 삶의 현장이다.

장애가 있는 몸은 갓 태어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일에서부터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그지없지만 육아는 90퍼센트 이상이 육체노동이다.

육아의 현장에서 나의 장애가 더욱 심한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육체라는 도구가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자아실현의 통로이나, 장애가 있는 엄마는 아이를 맘껏 안거나, 업을 수가 없다. 아이를 업지 못한다는 것은, 수시로 아이를 안아주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육아의 결과로 나타나는가?

넘어진 아이를 두 손으로 안지 못하고, 놀이터에서 우는 아이의 안전을 지키려다가 전동휠체어가 구르고,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하는데 아이와 함께 타고 갈 구급차가 없다. 아이는 아프다고 목놓아 울고 엄마는 그걸 보고도 함께 병원에 가지 못하는 현실이 과연 옳은가.

장애 엄마의 장애가 장애로 다가오는 것이 인간으로서 존엄함을 유지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인가.

장애인도 사람이다. 사람은 자연스러운 본능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아를 실현 하고자 한다면 존엄함이 유지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장애부모의 입장에서 사회적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장애를 개인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바라보는게 아니라 사회가 함께 이해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 엄마의 모성권은 양육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실현 가능한 것이다.

비장애인의 모성권 개념에 추가적으로 반드시 들어가서 확대된 모성권 범주의 실현이 필요한 것이다. 육체노동이 90퍼센트가 넘는 육아를 장애 엄마가 홀로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를 최소화 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고, 그것은 동정이나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현재 비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아이돌보미 제도는 장애 부모에게 진입 기회만 제공하고 있고, 장애부모의 특수성을 반영한 시간확대, 자부담 폐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장애 부모가 아이를 양육할 때는 반드시 사회권적 양육 받을 권리가 실현되기 위해 한걸음 나아간 장애 부모 입장의 제도적 지원과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장애인 활동지원제도에도 아이가 태어나는 6개월간은 양육 활동 지원이 가능하나 그 이후에는 전무한 상황이다.

각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양육 관련 서비스도 낮은 수혜율과 시간을 보이고 있다.

장애 엄마가 바라는 것은 딱하나이다. 내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부정적인 장애가 있는 엄마가 아니라, 그냥 현상으로서 장애가 있는 엄마이고 싶고, 최대한 아이를 잘 키우고 행복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양육 받을 권리가 장애인의 특수성을 반영한 보편적 권리로 실현되어야 한다.

장애 부모와 그 자녀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편견과 사회적 시선의 개선도 필요하다. 그냥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어울려 사는 존재로 돌아봐 주어야 한다.

*이 글은 서울장애여성인권연대 대표이자, 장애여성자립생활센터 파란 센터장인 박지주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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