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마지막 날이다. 올 한해는 격동의 연속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랜 싸움이 끝에)언론들이 하나 둘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MBC(앰비씨)의 경우는 사장이 바뀌고, 올바른 방송으로 가기 위한 노력들을 보여주고 있다.

MBC가 지난 12월 26일 뉴스데스크에서 “오늘부터 정상 체제로 돌아온 뉴스데스크는 앞으로 공영방송다운 뉴스가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면서 여러분께 찾아가겠습니다. 권력이 아닌 시민의 편에 서는 뉴스가 되도록 MBC 기자들 모두 여러분께 다짐합니다.”라고 밝혔듯이 MBC가 “방송법”제6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방송으로서의 본연의 임무를 위하여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MBC에 개인적인 인연은 깊다. 아니 내 개인의 입장을 넘어 시각과 청각장애인과 MBC에 대한 인연이 깊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MBC의 TV자막방송의 시작으로 수어통역방송 화면해설방송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자막방송이 계기가 되어 장애인영화제가 진행되는 등 한국의 장애인 영화관람 환경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26일 MBC 뉴스데스크. ⓒMBC 캡처

MBC와의 첫 만남은 1997년이다. TV자막방송 실시를 위한 아날로그 방식의 표준을 정할 때이다. 그때 처음 만났던 MBC 관계자는 그저 그랬다. 

IMF로 TV를 만드는 가전업체들이 위기에 몰리고, 경제 상황이 안 좋아 TV자막표준화와 자막방송 추진은 보류되었다. 그 때, 나는 IMF로 어려운 것은 맞지만 장애인의 권리를 보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막표준을 위하여 논의했던 이들에게 TV자막방송을 비롯한 수화통역, 화면해설은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안정적인 자막방송의 실시를 위하여 “방송법”과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법률에 장애인의 시청권을 보장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고, 당시의 방송발전기금에서 장애인의 시청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장애인 운동이라는 것을 잘 몰랐지만 ‘방송권연대’라는 조직도 만들어 구색을 갖춘 활동도 하였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막 시작했을 때였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각계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였다. 언론시민단체도 마찬가지였는데, 언론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한참 불붙기 시작했다.

이러한 목소리에 정부도 1998년 12월 1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자문기구로 ‘방송개혁위원회(이하 방개위)’설치를 결정하고 12월 4일 방개위와 관련한 규정을 공포하였다. 자연히 방송 개혁과 관련한 논의는 방개위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을 어느 정도 내가 알고 있던터라 TV자막방송 실시와 장애인복지법과 방송법에 장애인방송접근 규정 마련을 방개위와 언론시민단체에 요구했다. 

그리고 방개위 출범과 함께 방송사들도 좋지 않은 상황을 맞았다. 당시 KBS도 그렇지만 정치권이 방송을 공적인 구조로 만들어 이용했던 아픔들이 MBC도 있었기 때문이다. MBC의 경우도 과거의 모습을 지우고 방송으로서 공익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손을 대 것 중의 하나가 TV자막방송 실시였다.

당시 공영방송인 KBS는 장애인의 방송접근은 물론 TV자막방송은 나중에도 없던 시기였다. KBS 직원 가운데는 자막방송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경영진들의 자막방송에 대한 이해부족 등으로 함부로 TV의 자막방송을 시작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들을 했을 것이다.

SBS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당시 EBS는 경영의 어려움으로 자막방송 실시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하지만 정치적인 변화를 읽은 MBC는 1998년 12월 2일부터 청각장애인 가구를 중심으로 TV자막 시험방송을 실시하였다.

시험방송에서 나온 문제점을 보완하여 1999년 2월 12일부터 한국 최초로 TV자막방송을 실시하였다. TV자막방송이 실시되던 날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가슴이 뻥하고 터지는 것 같다” 탄성을 질렀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MBC 뉴스데스크. ⓒMBC 캡처

당시 MBC가 실시했던 프로그램은 ‘뉴스데스크’ ‘뽀뽀뽀’, ‘칭찬합시다’, ‘보고 또 보고’ 등이었다. 매주 18시간 정도의 자막방송을 실시했다. 그제야 KBS도 부랴부랴 자막방송을 하고 이어서 SBS도 자막방송을 시작했다. EBS는 2000년부터 TV자막방송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법 개정에 대한 노력으로 1999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이 되었다. 제20조의 정보에의 접근 내용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방송국의 장등 민간사업자에 대하여 뉴스, 국가적 주요사항의 중계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방송프로그램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또는 폐쇄자막 등을 방영하도록 요청할 수 있다.(제2항)”이 추가된 것이다. 2000년에는 방송법도 개정이 되었다.

하지만 방송사를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방송법의 경우 법 개정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장애인의 문제를 방송에 넣는 것에 공감했다. 그럼에도 방송사에게 장애인의 시청권을 ‘의무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것에는 반대를 하는 분위기였다. 여건이 되면 하도록 임의(任意)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당시 나는 반발을 했다. 장애계가 방송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할 때라 언론시민단체의 힘을 빌렸다. 언론시민단체에서 많은 지지를 해주었지만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혀 결국 장애인의 방송 지원은 임의조항에 그쳤다.

그럼에도 2000년 방송법의 개정은 많은 의의가 있다.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방송소외계층’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고 장애인의 문제가 방송의 정책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방송기금도 장애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 등 현재 장애인방송의 기초가 그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개정된 방송법에 담긴 장애인 관련 내용은 제33조 방송 심의규정에 “장애인등 방송소외계층의 권익증진에 관한 사항(제2항 제7호)”, 제38조의 방송 기금의 사용에 “장애인등 방송소외계층의 방송접근을 위한 지원(8호)”, 제69조 방송프로그램 편성에서 “지상파방송사업자는 장애인의 시청을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필요한 경우 방송위원회는 기금에서 그 경비의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제7항)”의 내용이다.

그때 나는 한국농아인협회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방송에서 TV자막방송 추진의 영감을 얻어 장애인의 영화 관람사업도 시작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장애인들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거나 비디오의 자막을 통하여 본다는 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1999년부터 한글자막을 넣은 비디오테이프를 만들어 전국의 농아인협회와 복지관에 배포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일반 영화비디오에서부터 다큐멘터리, 해외 입양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소개 영상, EBS수능 방송 등 다양한 내용의 영상에 한글자막을 넣어 배포했다.

그리고 영화 ‘쉬리’가 한국영화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을 1999년 당시, 나는 강재규필름을 찾아가 ‘쉬리’ 필름 1벌을 무료로 대여 받았다. 지금 같아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강재규필름에서 흔쾌히 필름을 대여해 주었다. 그 필름을 택시에 싣고 남산의 언저리의 영화자막 동판 인쇄소(지금은 영화 필름도 사용하지 않고, 그런 인쇄소도 없다)에 가서 자막을 인쇄했다.

2001년 10월 장애인 영화 관람 환경 마련 세미나 포스터. ⓒ김철환

한글자막이 인쇄된 필름을 서울 송파에 있는 여성문화회관에서 상영을 하였다. 당시 관람을 했던 많은 청각장애인들의 반응이 너무나 뜨거웠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2000년 부천영화제의 견학 등을 통하여 장애인영화제를 만들었다.

장애인영화제에서 나는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고자 했다. 영화의 청각장애인용 자막만이 아니라 시각장애인용 화면해설 도입, 청각장애인의 음향 인식을 위한 진동의자 비치, 보청기 사용자를 위한 보청시스템 대여,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영화 좌석 뜯어내기 등이 그것이다.(3회 장애인영화제 이후부터 휠체어 공간을 넉넉하게 확보하기 위하여 대여한 극장의 좌석을 30-40개 정도 뜯어냈다)

미국의 영화사례를 많이 참조했다. 그리고 당시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던 반투명 반사 자막(Rear Window) 방식이나 기술개발 중이었던 안경으로 자막을 보는 형태(Access Glasses)를 도입하고자 했다. 하지만 비용과 기술적인 문제로 도입을 못했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장애인영화제를 시작하고 18년 지난 2017년 지금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하고 정착시키기 위한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은 장애인들의 보편적인 영화 관람에 필수적인 것들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1999년 MBC를 시작으로 한 자막방송이 실시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2000년 장애인영화제가 시작이 되고 방송에서 화면해설도 도입이 되었다. 수어통역방송도 의무화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이 개정되면서 장애인방송 지침도 만들어졌다. 또한 장애인의 영화도 이제 정착단계에 접어들었다.

특히 올해는 장애인방송의 품질을 높이기 위하여 ‘장애인방송 프로그램 제공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장애인영화에서도 중장기적인 정책 방향이 어느 정도 논의가 되고, 자막이나 화면해설의 폐쇄시스템을 도입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장애인의 방송접근과 영화관람, 미흡한 면이 있고,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그럼에도 장애인방송이나 장애인 영화 모두 장애인의 권리라는 것에는 반대를 하지는 않는다. 개선되는 법률이나 정책들도 장애인의 권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방송이나 영화가 장애인의 보편적인 서비스로 정착을 하는 날도 머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를 중심으로 2011년부터 진행했던 장애인 영화관람 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들. ⓒ김철환

개인적으로 MBC를 좋아했었다. MBC가 한국에서 최초로 TV자막방송을 실시하였고, 소외계층에 대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 사이 방송으로서 본분을 망각하고 정치권에 편승하던 MBC를 보면서 가슴이 아픈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 거듭나는 MBC를 보면서 다시 MBC를 좋아하기로 했다.

MBC와 장애인의 방송 그리고 장애인 영화의 관람은 때래야 땔 수 없는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장애인 운동에 눈을 뜨게 된 계기도 1997년 이후 자막방송 실시 운동을 하면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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