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선진국의 초창기 장애인복지정책은 장애인들에게 자기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고려하지 않았다. 시설중심으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했던 시기라서 장애인들이 자기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생각해야 하는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70연대 미국에서 시작된 장애인자립생활을 지원하는 것이 장애인복지정책의 중심이 되고부터, 장애인들의 자기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이 강조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장애인들은 장애인복지정책의 수혜 받은 대상자에서 장애인복지정책에 영향 주는 당사자가 되었다.

이러한 변하는 장애인복지정책에 개인별 맞춤식서비스를 요구했고 1996년 영국에서 현금지원이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장애인복지정책 행정가들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은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서비스와 재화들을 구입 할 수 있는 현금을 지원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금지급제도를 보다 더 당사자인 장애인들에게 권한을 넘어 준 것이 2003년부터 시작된 개인예산제도이다.

개인예산제도는 이전에 현금지원제도와 다르게 장애인들이 직접 자신들에게 필요한 예산 세워서, 지방정부에 청구해서 현금지급을 받는 제도이다. 또한 지금 받을 현금을 자신이 전체 관리 할 것인지, 기관에다 현금 관리를 맡길 것인지, 또는 이 두 가지 방법을 병행 할 것인지도 선택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장애인들에게 예산편성과 예산 관리형태권까지 넘겨주는 매우 진보적인 제도이다. 영국과 독일을 비롯한 유렵국가들에는 개인예산제도를 장애인복지정책의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와서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예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 할 때 약속한 장애인등급제가 폐지되면 그 대안들 중 하나가 개인예산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예산제도 도입에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최고의 명약(名藥)도 복용하는 환자에 따라 효과가 있거나 없게 되고, 때론 독약(毒藥)도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

개인예산제도가 장애인들의 자기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높이고 자존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제도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개인예산제도로 높아질 장애인들의 자기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수용 할 수 없는, 우리나라 사회 환경에서는 개인예산제도도 장애인복지정책의 질을 떨어지게 하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유렵국가들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 있다. 장애인들이 외식이나 레저와 여행도 원할 때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장애인들이 여행과 레저를 하는 것을 물론이고 외식도 한번 하기도 힘든 사회 환경이다. 예전보다 우리나라 사회 환경이 장애인들에게 많이 개방적으로 개선되어 있고, 앞으로도 더욱 접근성이 용이하게 개방 될 것이지만 개인예산제도를 도입하기에는 부족한 사회 환경이다.

이러한 사회 환경에서 장애인들이 지급 받은 현금을 스스로 사용처를 계획하고 지출해야 해야 되는 개인예산제도가 도입되면, 오히려 장애인들의 자기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이 줄어들 위험성이 있다.

개인예산제도의 종주국인 영국에서도 확인 할 수 있지만 지방정부마다 차이 나는 재정능력 때문에 복지편차가 심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서울만 제외하고 대부분 지방들은 재정능력이 좋지 않다. 재정자립도가 형편없는 지방정부들도 있다.

이에 따라 지방마다 개인예산제도에 투입 할 수 있는 지원금이 차이가 날 것이고, 장애인들이 구입 할 수 있는 사회복지서비스와 재화들의 질과 종류의 차이 날 수밖에 없다. 현재도 각 지방마다 장애인복지가 차이 나는 현 시점에서 개인예산제도를 성급하게 도입하면 지역마다 장애인들에게 돌아가는 복지수준이 더욱 심하게 차이 날 것이다.

개인예산제도 도입으로 지역별로 장애인들에게 지원되는 복지수준이 차이 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장애인들에게 개인예산제도에 대한 정보들을 제공해야 하는 관계 공무원들이 빠른 시간 안에 개인예산제도에 대해 학습이 되는지가 문제이다.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익숙한 우리공무원들이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방식이 개인예산제도에 대한 정보를 장애인들에게 제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개인예산제도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자신들의 삶에 활용 할 수 없을 것이고, 개인예산제도는 문서상에만 존재하는 장식용 법률이 될 것이다.

장애인들이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이 활동지원제도이다.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활동보조인들을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세워서 양성해야 장애인들이 자유로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기 위해 받아야 하는 교육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그런데 개인예산제도가 도입되면 활동보조인을 양성하는 커리큘럼이 허술해질 수도 있다. 장애인들의 개인적인 역량이나 특수 관계를 중심으로 활동보조인들을 모집해서 교육 시키다가 보면 체계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지가 어렵고, 활동보조인이 가져야 하는 자세와 기술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다. 거기에 따라 장애인들과 활동보조인 사이에 갈등이 증가되고 삶에 대한 만족도 떨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 했던 문제들과 성격이 다른 문제들도 있다. 필자는 중증 뇌병변장애인이다. 한 사람의 장애인으로 고백적인 이야기이지만, 장애인들 중에는 개인예산제도에 따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자신이 한 달 동안 생활하는데 필요한 예산 세우고 지방정부에 청구해서 지급 받은 예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예산 세울 때 그대로 사용하고 영수증 챙겨서 보고서와 함께 제출하는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많을 것이다.

장애인들이 지능이 떨어져서 개인예산제도 도입에 따르는 역할 수행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수행 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장애인들은 직업 활동을 하면서 그와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지만, 직업 활동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들은 그와 같은 경험을 할 기회가 없다. 그래서 개인예산제도 도입초기에 장애인들은 큰 혼란을 경험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현행 지원되고 있는 활동보조인 지원비를 용돈처럼 생각해,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나누어 흐지부지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한 대책도 없이 개인예산제도가 도입되면 더 많은 공적 자금을 개개인들이 유용할 우려도 있다.

개인예산제도는 지금까지 개발된 장애인복지정책 가운데 최고의 정책이라도 할 수 있다. 장애인들이 각자가 자신들이 필요한 예산을 세워 지방정부에서 지급 받아 관리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애인복지정책을 비롯한 모든 사회복지정책에서 최고의 가치인 대상자들에게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예산제도의 당사자인 장애인들이 임파워먼트(Empowerment)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이 조성되고, 지역마다 편차가 날 수 밖에 없는 지원금의 격차에 대책, 제도 이해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또한 제도 도입으로 인해 장애인들에게 생겨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훈련이 되어야 하며, 지급 받은 자금을 목적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장애인들의 인식 개선도 필요 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한 후에 개인예산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 개인예산제도는 우리나라 장애인복지정책을 퇴보시키는 독약(毒藥)이 될 것이다.

*이 글은 전주에 사는 장애인 활동가 강민호 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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