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노력해도 이뤄지지 않을 일을 가리켜서 흔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들 하죠.

비록 제 삶의 여정이 그 어디에 명함을 내밀어도 될 만큼 길진 않지만, 그와는 별개로 이 말이 절실히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선 어찌 보면 당연하게 보일 법한 이런 이치를 완전히 뒤집는 주장도 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바위는 죽은 것이지만,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

즉, 생명은 물리적 크고 작음을 떠나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 주장은 현실이 아닌 영화 한 편에 실린 대사이지만 그 울림은 현실에 버금갑니다.

그러나 정말로 연약한 계란이 바위를 이길 수 있을까? 권력자는 약자에게 한없는 갑질을 선사하고 더불어 모욕 또한 첨부합니다. 그뿐 아니라 보통의 일상을 사는 이들 또한 그렇지요. 피부색으로 차별하고 性의 다름으로 차별하며, 듣는 것과 보는 것, 또 걸음으로도 차별합니다.

당연한 것들을 누리고 살지 못하는 이들의 심정.

신파 찍는 것 같아서 토로하긴 싫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든 이들이 앞다퉈 피하고 싶어 할만한 출퇴근길의 지옥철과 헬 버스의 풍경. 여기저기 뒤엉켜 1mm라도 더 몸을 싣기 위해 스스로가 구겨진 종이처럼 되기를 서슴지 않지요. 행여 시각 장애인들은 어떨까요? 철저히 감각과 소리로만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공포일 것입니다.

몸이 불편한 분들은 어떨까요? 다리 하나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몸을 이끌고 세상 밖으로 나오면 눈 앞에는 식겁할 만한 정도의 요철들이 가득하고, 행여 화장실 한 번 가려하면 용변을 보라는 건지 마라는 건지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시설들.

천 가지, 만 가지 언어로 굳이 더 언급하지 않아도 여러 케이스로 인해 불편함을 겪는 이들에게 세상은 참으로 냉소적인 것은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이 내거는 슬로건은 함께 사는 세상. 그리고 자립을 종용하는 여러 흔적들.

이것들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것 같습니다.

강인하게 크라는 독려의 의미라면 이해와 감사로 모든 것을 감내하겠지만 모든 것을 겪어보지 않은 채 그저 저 멀리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그럴싸한 말로 쏟아내는 것이라면 지양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또 촌철살인의 백 마디보다 침묵 어린 깊은 허그가 동반되기를 바랍니다.

해서, 끝내는 크고 거대하며 차디찬 바위와도 같은 세상에 맞서 뜨거운 열정으로 역동하는 계란… 아니 생명체가 승리할 수 있도록 늘 기도해 주십시오.

*이 글은 경기도 성남에 사는 독자 안지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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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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