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막 시작된 1월6일, 우리는 한 노동자의 슬픈 소식을 접했다. 장애인활동보조인으로, 신문배달로 과로에 시달리던 노동자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살기 위해 선택했던 노동이 끝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돌봄지부(이하 돌봄지부) 다사리분회장인 故윤희왕 님과 전국활동보조인노동조합(이하 활보노조)의 짧은 인연은 2017년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을 동결하기로 한 기획재정부를 규탄하는 공동기자회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16년 9월 8일, 세종정부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돌봄지부, 활보노조,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돌봄협동조합협의회가 공동주최한 기자회견에 윤희왕 님은 돌봄지부 다사리분회장으로 조합원들과 함께 참여했다.

“모든 사람은 희망을 갖고 사는데 활동보조인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작년에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일당 받고 일했는데, 2017년에도 수가를 동결한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 이런 상황에서 활동보조인들이 묵묵히 일을 계속해야 하는 겁니까? 저는 활동보조를 정말 사랑이라 생각했던 모든 활동보조인들에게 정말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故윤희왕 님은 활동보조인으로서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9월 20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법·근로기준법 위반 교사죄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장관 고발 기자회견’에 참석해서도 역시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정부로부터 최저임금도 못 받고 범죄자 마냥 괴롭힘 당하면서도 우리는 언젠가 우리의 노동권이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그런데 활동지원 수가가 동결되면서 우리는 어떤 희망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지 답답한 심정입니다.”

‘모든 사람이 희망을 갖고’ 살기 때문에 윤희왕 님의 ‘희망’은 어쩌면 평범한 모든 사람이 갖는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삶을 죽은 후에 접하며, 그에게 노동의 희망이 얼마나 간절한 소망이었는가를 생각한다.

농아인이었던 가난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노동자로서의 고된 삶을 시작한 그에게 ‘노동의 희망’은 가장 척박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가 없는 세상, 그리고 활동보조인이 노동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 이 두 가지 소망을 이루기 위해 넘어야만 하는 정부의 벽은 너무나 완고하기만 했을 것이다.

그의 두 소망이 만나는 곳이 장애인활동지원 현장이다. 오마이뉴스에 실린 김남균 시민기자의 기사에 의하면, 윤희왕 님은 활동보조인으로 한 달에 100만원 남짓한 임금을 받으며 일해 왔다. 당연히 그것만으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 새벽에 신문배달을 하면서 부족한 수입을 메웠고, 상황이 더 힘들어지면 파트타임 일도 했다고 기자는 말한다.

슬프게도 이런 상황은 故윤희왕 님의 특별한 사연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활동보조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서 요양보호사로, 식당일로, 화장품판매원으로, 갖가지 노동을 병행하는 활동보조인들을 수없이 만난다. 혹여라도 활동보조만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300시간, 400시간의 무리한 노동을 해야 하고, 그렇게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수급을 할 거라는 의심을 받고 노동감시를 당해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장애인활동지원예산’이 단일사업으로는 규모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예산의 증액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고, 보건복지부는 기재부를 핑계로 손을 놓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장애인활동지원 현장에서 불법이 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하고 방관하고 있다. 이렇게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에서 활보노조는 돌봄지부 조합원인 그를 만났다. 아마 그 시간에 그에게 필요한 것은 짧고 달콤한 한숨의 잠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단순하고 소박한 꿈조차도 너무나 큰 소망이게 만드는 잔인하고 냉정한 정부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토록 절실한 휴식을 포기하고 투쟁의 현장에 나설 수밖에 없는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윤희왕 님의 ‘희망’은 2017년에도 너무나 먼 꿈이다. 정부는 최저임금마저 지킬 수 없는 짜디짠 수가를 책정하였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저지른 온갖 비리를 위해 국가예산을 책정해 온 기획재정부가 반성은커녕 여전히 예산을 들먹이며 노동착취를 자행하고 있고, 보건복지부는 노동관계법을 위반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오히려 우리 노동자들에게 하소연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2017년 활동보조인들 앞에 놓여 있다.

박근혜가 탄핵을 당해 대통령 자격을 정지당했다고 해도 우리 활동보조서비스 노동자들의 현실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의 노동권을 악착같이 박탈해 온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구속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우리의 희망은 활동보조인 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투쟁하고 싸워 우리의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희망, 삶의 질,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는 투쟁을 이어나갈 것을 약속하고, 연대하는 모든 동지들과 이 투쟁을 끝까지 지켜나가고 싶습니다.”

故윤희왕 님의 소망을 이루는 것은 오로지 남은 노동자들의 몫이다. “연대하는 모든 동지들과 이 투쟁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것”이 그의 죽음을 기리는 태도이며, 노동자의 ‘희망’을 지키는 방법일 것이다.

윤희왕 동지, 이제 투쟁은 남은 사람들에게 맡기고 노동이 희망인 세상에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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