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도 절반 이상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느끼는 것은 삶이란 마치 도둑과 추격자 같아서 있는 대로 약을 올리는 세월이라는 도둑과 그 도둑을 잡기 위해 헛수고를 하는 사람의 대결구도 같다. 그러나 늘 그렇듯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 세월 도둑의 승리다. 혹시라도 ‘난 세월을 잡았어요.’하는 분이 있다면 필자에게 연락을 주시면 좋겠다.

2016년에는 유달리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소위 ‘열풍(熱風)’이라 불릴만한 것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드라마 <태양의 후예> 열풍을 꼽고 싶다. 사실 <태후>의 열풍은 누구도 쉬이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력은 물론이고, 신선한 대사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었다. 흠이라면 과도한 PPL(Product PLacement, 간접광고)이랄까? 아무튼….

드라마의 영향으로 대중은 실제 배우에게뿐만 아니라 극 중 인물에게 과몰입하는 이상 현상도 있었다. 그는 유시진 대위 (송중기 분)다. 정말이지 노소(老少)를 가리지 않고 모든 여성이 ‘유 대위 앓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태양의 후예>는 대사 역시 범상치 않은데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최고라고 느껴지는 대사는 아마도

드라마 <태양의 후예> 스틸 컷.ⓒ KBS

‘그 어려운 걸 또 해냅니다. 내가….'

이 대사가 아닐까 싶다. 생(生)과 사(死)의 기로에 놓이게 될 일을 해야만 할 때 유 대위는 연인 강모연(송혜교 분)에게 <백화점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연인의 생사를 자신이 알고 있다고 해서 도움이야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각오는 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모연의 말 때문이다.

두 사람의 절절함에도 가야만 하는 백화점에서, 유 대위는 진짜 마지막 쇼핑이 될 위험에 놓인다. 그리고 극은 유 대위의 죽음이 진실인 것처럼 몰고 간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유시진과 강모연은 눈물의 재회를 하게 된다. 그때 유시진이 강모연에게 한 말이 바로 ‘그 어려운 걸 또 해냅니다. 내가….’인 것이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서인지 그의 어조는 한결 더 여유롭게 느껴졌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난 장애인의 삶을 떠올렸다.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보다 더 극적인 게 어딨겠냐마는 그에 버금가는 엄중함이 있다면 다름 아닌 ‘장애인의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장애인의 삶은 매일이 불가능과의 혈투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글의 서두에서 세월 도둑이 사람을 늘 이긴다 했는데 이 싸움 역시 승부는 정해졌다. 어디인지 모를 신체의 데미지 때문에 얻은 불능과 마주해야 하지만 불능이 아닌 듯 살아가야 한다.

처한 환경을 용납하고, 이가 안 되면 잇몸으로라도 버텨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없는 상처와 아픔을 겪지만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 마치 권투경기에서 상대에게 강펀치를 그대로 얻어맞았음에도 비틀대며 다시 일어서는 깡다구가 묘사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이러니 감히 죽음의 위기를 투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늘 이런 식으로 살다 보니 때론 스스로가 제약이 있다는 걸 잊을 때가 있는 듯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장애와 비장애를 가리지 않고 제한적 존재다. 가끔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의지. 즉, ‘미친 깡다구’로 충만해 있을지라도 실패와 좌절은 충분히 삶 가운데서 마주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신체적 차이로 나타나는 갭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도 사람이고 또 신체의 자유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그 점을 감안하면 모두가 굳이 ‘그 어려운 걸 해내려고’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오히려 좌절의 강을 건너는 아무개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의지는 200%지만 연일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달빛을 벗 삼아 하루가 멀다 하고 주야(酒夜)를 보내고 있을 많은 분들께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열심은 좋은 겁니다. 계속해서 두드리세요. 그리고 그 도전에 고스란히 녹아드세요. 그러나 그 결과가 설사 실패라 해도 좌절하지 마세요. 단언컨대 성과 중심의 사회는 잘못됐습니다. 이것밖에 못하냐는 세상의 비아냥은 틀렸어요. 때로는 당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쉬어가세요. 그리고 당신께서 하려는 일이 무엇이든 그 어려운 걸 단번에 해내려고 애쓰지 마세요. 매번 해내기만 하는 능력자는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이 글은 경기도 성남에 사는 독자 안지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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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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