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척수장애인협회는 지난 2014년 11월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중도 중증장애인의 일상의 삶 복귀 프로그램"(Back To The Community)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퇴원을 앞둔 척수장애인이 ‘일상홈’ 이라는 아파트 주거공간에 입소, 4주간의 프로그램을 통해 준비된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1차년도 1기~8기(8명), 2차년도 1~3기(3명)를 배출했고 4기가 현재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이번에 퇴소한 3기 입소자 이후정씨가 일상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소감을 보내왔다.

이후정씨가 일상홈 3기 입소식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재활병원에서 알게 된 동생(1기)이 처음 일상홈을 추천했을 때는 두려운 마음이 더 컸다. 몇 년간의 병원생활을 하며 가족의 도움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 동생(1기)의 엄마가 3년여 간의 병원생활보다 4주간의 일상홈 생활로 배운 게 훨씬 많다는 말에 나는 퇴원 후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용기를 내서 일상홈에 입소했다.

입소해서 밥하기, 빨래, 청소, 쓰레기 버리기, 장보기 등 장애를 입기 전에는 일상이었던 모든 일들이 너무 힘든 훈련 같았다.

휠체어를 타고 누구의 도움 없이 모든 일을 혼자 하니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처음 일주일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아무것도 못하고 쓰러져 잠들기 바빴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때는 체육대회 다음날처럼 온몸이 아팠다.

일주일 동안은 이 모든 것을 혼자하며 독립해서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내가 계획한 일정이었지만 처음에는 몸이 힘들어서 끌려 다니기 바빴는데 하루하루 지나면서 일정을 즐기고 또 기다리게 되었다.

이후정씨가 일상홈에서 ‘일상생활훈련’ 중 청소를 하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예전에 너무 좋아했지만 휠체어를 타고 갈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못했었던 쇼핑도 맘껏 하고 영화 뮤지컬을 보면서 문화생활도 했다.

날씨가 좋은날 에버랜드에 가서 예쁜 꽃들을 보며 봄을 만끽하고 취미로 배워보고 싶었던 향초 만들기 가죽 공예도 해보았다. 국립재활원에 입원했을 때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셨던 휠체어 펜싱도 배웠는데 너무 즐거웠던 경험이었다.

잦은 수술과 오랜 투병생활 끝에 장애를 입으면서 힘들고 지쳐서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었다. 서울, 경기지역에서 학교를 나오고 직장생활을 했기에 일상홈에 입소해서 연락을 끊었던 친구들을 만나는 게 참여하는 동안 가장 큰 계획이었다.

3년여 만에 만난 친구들은 그간의 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똑같은 친숙한 예전에 내 친구들 그대로였다. 친구들 또한 내가 휠체어를 탔다 뿐이지 변함없는 친구 그 자체였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걱정을 많이 했다며 이렇게 연락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친구들을 만나 보니 못난 자격지심에 연락을 하지 않았던 내가 부끄러웠다. 걱정하고 기다려준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고 그런 친구들이 곁에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휠체어 펜싱 체험(사진 좌)과 쇼핑(사진 우)을 하고 있는 이후정씨.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입소 후 2주간 주말에는 일정이 없으니 하루 종일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데, 셋째 주 주말에는 날씨가 좋은 주말에 집에 있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코치와 함께 테크노마트에 가서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들어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이 변한 나를 느낄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타면서 부모님이나 동생들 없이는 나가지도 않던 내가 스스로 혼자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나가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이 쳐다보고 무시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상처받기 싫어서 나가지 않고 회피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자꾸 나가다보니 내가 오히려 사람들이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문을 열어주고 엘리베이터를 양보해주고 음식점을 가면 의자를 빼주는 등 너무 당연하게 도와주는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사람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 더욱 밖으로 나가 활동하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더 좋게 만들어야겠다는 맘이 커졌다.

4주간의 일정중 약을 타러 국립재활원에 갔다. 입원했을 때 봤던 간호사 선생님들 치료사 선생님들 모두 엄마 없이 혼자 왔다는 것만으로도 놀라고 칭찬해 주셨다.

일상홈을 통해 이렇게 발전했다고 말해 드렸더니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환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어 하셔서 알려드리고 오는데 뿌듯했다.

나에게 일상홈은 장애를 입고 좌절도 했지만 다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준 너무 고마운

경험이었다.

앞으로 주변에 일상으로의 복귀를 두려워하는 척수장애인이 있다면 일상홈 입소를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그리고 중도 중증장애인의 일상생활 복귀 프로그램이 시범사업에 그치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많은 척수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복귀를 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 글은 이후정씨가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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