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예전부터 많은 이들은 장애인을 불가능 프레임에 넣었다. 몸이 불편한 이들을 병신이라 부르며 지냈고 무시했다. 그리고 노동만 못 시켰다 뿐이지 장애인을 노예처럼 여겼다. 무시는 따지고 보면 누구에게나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므로 백 번 이해하면 용납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건 당최 너무하다.

어느 날 길을 걸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휠체어를 타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 명의 할머님께서 다가와서는 나와 동행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어머님이세요?” 순간 우리 일행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할머님의 말을 듣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 할머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 두 분이 너무 다정하게 얘기 나누고 계시기에 그냥 물어봤어요.”

대한민국 어떤 사람도 나를 두고 여자로 보진 않는다. 노파심에서 말한다. 나는 건장한 남자 청년이다.

그렇게 한바탕 ‘황당한 폭풍’이 일고 너털웃음으로 마무리 지을 때 쯤, 또 한 번 기가 막힐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타는 지하철.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내릴 거라 별일 없겠거니 하고 방심(?)했었다. 그런데…

“저기 청년! 말은 잘 하네?!”

이번에도 여지없이 친구에게 이야기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정색하며 “왜 그러시죠?”하고 짜증을 냈다. 그 친구 또한 이런 광경, 한 두 번 마주한 게 아니기에 시크한 말투를 내뱉었던 거다. 자칫 싸움이 날까 싶어 말렸다.

“그렇다. 내가 한 언변 한다.”

마지막으로 역시 길을 걸으며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육안으로 보기에 앞에서 이야기 한 두 분 보다는 젊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헤이, 저기! 앞에서 중얼 거리는데?!”

자 이 세 가지의 경우에서 알 수 있는 점을 나열해 보자

• 사람들의 쓸데없는 오지랖이 밀물처럼 몰려든다.

• 이 사건들을 놓고 보면 난 그들이 본 장애인 중에서는 뛰어난 언변가다.

• 평소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 수준이 얼마나 낮았는가를 알 수 있다.

물론 이 일을 가지고 가타부타 하는 것 자체가 내 인성의 성장이 더뎌서 그럴 수도 있다. 또한 말을 잘한다는데 그것으로 감사하면 안 되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암담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세월이 흐를 만큼 흐르고 발전이 있어왔음에도 인식은 도태되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람들의 그릇된 관심 표현이 자기 살 깎아 먹는 일인 것을 모른다는 점이 크다.

모르면 침묵하라는 말이 있다. 어설프게 ‘척’하는 것은 훗날 다 들통나게 마련이다. 사실 이것은 척도 아니고 관심도 아닌 그저 대놓고 망신 주는 일 뿐이다. 이 상황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개탄해야 하는 것은 굳이 평등이란 잣대로 들춰내지 않아도 될 만큼 하등하다. 요즘 ‘캣 맘’ 때문에 갑론을박이 오간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동물에게 사람처럼 이름을 지어주고 옷을 입혀주며 대화도 하고 심지어는 스킨십도 서슴없이 한다.

필자는 애완동물을 키우진 않지만 그들도 생명체이기 때문에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용납할 수 있다. 헌데 하물며 사람이다. 숨을 쉬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사람인데 조금의 제약이 있다고 하여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말은 잘한다.’는 개념을 어디에 쏟아내는가? 마치 말 못하는 인형이 말을 하는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그런 상황을 보고 어찌 해야 하는가? 말은 잘하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말을 잘하는 것을 알아 준 그분들에게 절이라도 올려야 하는 건가?

고정관념 타파에 관한 논의는 늘 있어 왔다. 그런데 사실 예나 지금이나 더 나아진 건 없다. 언제까지 장애인이 곧 불능의 대명사가 되어야 하는 건지, 곧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하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도 나아질 기미는 안 보인다.

불능의 프레임,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다. 고로 생각하는 존재이며, 생각은 언제나 유연해야 한다. 딱딱하고 지지부진한 생각들이 내 안에 들어 왔을 지라도 필요하다면 어제의 생각을 흘려보내고 새로운 생각들로 채워야 다음으로 전진이 가능하다. 가감 없이 이야기 하고 싶다. 장애인은 불능의 존재가 아니라 조금 불편한 존재다.

그리고 장애인 역시 비장애인들처럼 특출한 재능 하나는 갖고 있다. 필자의 경우 ‘말’인 셈이다. 그러니 어떤 면모로 봐도 보통의 존재이므로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쓸데없는 아는 척으로 대하지 말고 인격 그대로 대해 주길 빈다. 장애인은 잘 하는 게 있으면 안 되는 건가? 그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이 글은 경기도 성남에 사는 독자 안지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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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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