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서정슬 시인.ⓒ방귀희

7월 26일 일요일 아침에 조용히 전해진 부고 문자가 서정슬 시인의 죽음을 알렸다. 솔직히 그리 놀라운 사건은 아니다. 시인은 벌써 10년 전부터 무덤 속에 있었다.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는 것은 시인에게 죽음이었으니 말이다.

서정슬 시인은 작가로서 가장 영광된 새싹문학상(1982)과 청구문학상(1995)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어느 불행한 탄생의 노래>, <꽃달력>, <얘야, 내가 도와줄게>,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밤이 없다면>, <하늘 보며 땅 보며>, <나는 빗방울 너는 꽃씨> 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초등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동시 「눈 온 날」, 초등학교 5학년 음악교과서에 동시 「오월에」, 초등학교 6학년 국어교과서에 동시 「장마 뒤」, 중학교 2학년 음악교과서에 동시 「가을편지」가 수록되었다.

이 정도 경력이면 서정슬이란 이름과 함께 얼굴이 떠올라야 하는데 사람들은 서정슬이 누구인지 모른다. 바로 그녀가 갖고 있는 치명적인 조건인 뇌성마비 때문이다.

서정슬 시인은 장애인이란 단어조차 없던 1946년에 태어났다. 난산으로 태어난 아기는 뇌성마비라는 유리병에 갇히고 말았다. 시인의 가정은 부유한 편이었으나 다른 형제들이 누리는 모든 혜택에서 제외가 되었다.

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고 집을 떠나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시인은 혼자서 한글을 깨치고, 혼자서 동시를 쓰며 혼자 힘으로 한국을 빛내는 동시작가가 된 것이다.

서정슬 시인과 함께 25년 전 우리나라 유일의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만들었다. 솟대문학 발기인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던 시인은 <솟대문학>의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그 긴 세월을 함께 했건만 그토록 기다리던 <솟대문학> 100호를 앞두고 시인은 하늘나라로 소풍을 갔다.

중증의 뇌성마비장애 속에서 70년을 산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뇌성마비로 제멋대로 움직이는 몸과 뇌성마비로 생긴 언어장애 때문에 시원하게 말 한 마디 내뱉지도 못하고 원숭이 구경하듯이 쳐다보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온갖 차별 속에서 70년을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서정슬은 큰일을 한 것인데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한국을 대표하는 동시작가이니 얼마나 훌륭한가.

이토록 훌륭한 시인의 장례절차가 단 하루에 끝나 서정슬 시인을 기릴 수 없음이 안타까워 <솟대문학>에서 그녀의 대표작과 요양원으로 떠나기 전에 써둔 미발표작들을 모아 발간한 『나는 빗방울 너는 꽃씨』를 독자들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이메일 sdmh1991@naver.com으로 신청하는 280명에게 서정슬 시인의 시집 <나는 빗방울 너는 꽃씨>를 우송하는 것으로 시인의 하늘나라 소풍길을 가볍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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