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편견. 실은 편견이 나쁜 건 아니다. 사람의 존재가 유한하고, 능력의 한계가 있음을 감안할 때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취지에서는 오히려 지극히 당연하고 용납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이런 편견이 결국 ‘개인의 다름’으로 보지 않고 ‘집단적 다름’으로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혈액형의 경우를 보자. A형은 지극히 소심하고 고집적이며 판단하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가 A형이므로 A형에 한해 예를 든다. 이것이 근거 있는지, 어디서부터 왔는지 그 여부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설령 그것이 맞다 하더라도 개인으로 봤을 때는 분명히 다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사람의 편견은 어쩌면 지나치게 집단화를 시키는데서 시작될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그 다름을 고지식하게 정형화하고, 끝내는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런 편견은 자유로운 소통을 저해시켜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는 독소와도 같다.

장애와 장애인의 대한 편견도 이와 같다. 상대적으로 소수자 집단에 속하는 장애인들은 일반적 모습도 다르고 생활 방식과 패턴 등이 다르다. 그러나 그 차이 때문에 참 많이 외면 받는다. “휠체어를 타니 힘들겠지? 아마 우울을 많이 느낄 거야.” “장애인이니까 모든 부분에서 어눌할 거야.” “저 사람은 경험이 부족할 거야.”

이런 편견들. 자 비장애인들이 수없이 생각했을 법한 것들이다. 헌데 그 고정관념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반영되었는가? 혹시 자신의 그런 생각 때문에 대화할 시도조차 안 했다면. 그런데 본인의 생각과는 전혀 딴판의 모습을 가진 자라고 한다면. 이 경우는 소통을 지속할 창구를 스스로 닫아 버린 셈이다. (물론 가정이지만 말이다.)

혹시 주위에 아는 사람들 중 외부활동을 잘 안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두고 왜 안하느냐고 혼자서 중얼거리며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환경과 직접 대면해 이유를 알아보거나 혹은 그게 어렵다면, 먼저 만나자고 해 본 적은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소통의 부재는 이처럼 깊게 뿌리 내린 고정관념 즉, 내 안의 편견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편견은 떠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뇌리에 편견이 들어가려 할 때, 마음을 조금만 틀어 응원의 말로 바꾸는 건 어떨까?

이런 말이 있다. 이웃집에 사는 어린아이들의 뛰어 노는 발자국 소리가 귀에 거슬려 못 살겠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이사를 가는 것이고, 둘째는 그 아이들이 사는 집에 놀러가 함께 놀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얼굴이 익숙한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는 그래도 좀 나으니까…. 이런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장애인이 무섭고, 두려우며 또한 나와 멀리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진다면 먼저 다가가 함께하라. 그것이 지독한 편견의 독소를 제거하는 지름길이다.

*이 글은 경기도 성남에 사는 독자 안지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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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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