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학도 하기전이니까 한 예닐곱 살 정도 됐을까? 그 때 우리 가족은 주말이 되면 대중목욕탕에 들렀다. 시원한 물에 몸을 불린 후 때를 말끔히 씻고 나면 그리도 개운할 수가 없었다. 어디 집에서 하는 샤워와 비교할 수 있으랴. 그 개운한 느낌과 말끔해진 몸가짐은 지금도 가끔 대중탕이 그리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온 가족이 주말에 모여 외출했는데 대중탕 방문으로 여정을 맺으면 섭하다. 목욕을 마치고 사먹는 밥은 그야말로 꿀맛이고 가끔이나마 들르는 오락실은 나의 동공을 확장시키기에 충분한 놀이 거리였다. 수 십대의 아케이드 게임기가 있는 그곳은 실상 시끄러우나 하나도 시끄럽지 않으며, 아이들로 붐벼 정신이 없으나 그런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오락실은 내겐 그런 곳이었다.

난 어릴 때 오락실 의자에 혼자 앉아있는 것을 두려워해서 주로 부모님의 무릎에 앉아 플레이를 했는데 사실 한 손이 자유롭지 않고 게다가 미취학 아동이니 정교한 플레이가 가능했을 리 없다. 다만 거기 있는 자체가 좋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게임 가운데 반박 못할 하나의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끝판왕’이 존재한다는 것. 끝판왕은 어디에든 있다. 게임 속 등장하는 끝판왕은 굉장히 파워풀하고, 동시에 거대하며 막강한 권력 또한 가지고 있다. 대개는 유저가 컨트롤하는 주인공보다는 세며 ‘도무지 어떻게 이기냐’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결국 끝판왕에게도 허점은 존재하며 허점을 아는 순간 시간은 걸릴지라도 결국 공략이 가능하게 된다. 끝판왕을 이기면 게임은 종료되고 게임 속 스토리는 해피엔딩으로 종결된다.

이렇듯 게임의 끝판왕은 결국 주인공의 끈기 앞에 무릎을 꿇는데 복지의 끝판왕은 그럼 과연 어딜까? 아마 ‘존중(尊重)’이 아닐까? 아니 엄밀히 말하면 존중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무기이고, 그 무기로 ‘무시차별편견’이라는 이름의 끝판왕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여러 곳 여러 방면에서 복지의 방법을 논하고, 정책을 만들어 내지만 결국 그 정책이라 하는 것도 진정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 정책이어야 한다. 존중이 없는 복지는 절대 배려와 이해가 있을 수 없고, 그런 복지의 결론은 속 빈 강정이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복지의 단위를 넓게 측정하기 때문이다. 개인과 개인 간의 존중이 먼저여야 하고 그것이 모이고 모이면 결국 복지의 시작인 셈이다. 진심 어린 존중은 개인의 필요가 떠오르게 하고,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 ‘맞춤형 복지’를 늘 외치면서도 항상 지지부진한 것은 바로 존중의 문제에 있다.

우리 사회가 차별 없이 존중 받는 사회가 되면, 복지의 유토피아 실현도 꿈은 아닐 것이다.

*이 글은 경기도 성남에 사는 독자 안지수님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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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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